
희뿌연 은색 달빛이 푸르러 까만 숲 어둠에 스며들고, 산야를 하얗게 뒤덮은 아카시아 꽃잎이 소리 없이 산들바람에 떨어져 녹아든 달빛 위로 떨어지는 오월의 밤 자정 넘어, 산개구리소리 요란하고 멀리 소쩍새 울음소리 밤의 고요 속으로 구슬피 퍼질 때면, 새록 가슴 저린 슬픔에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애달픔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숲길을 거닐며 슬픔을 달래던 내 슬픈 5월은 갔다.
신록이 푸르러지고 장미, 아카시아....온갖 꽃들이 만발하는 5월은 1년 12달 중 왕(King)이라 5월의 여왕(May Queen)을 뽑아 짝을 만들어 준다는 그 5월이 나에게는 가장 슬프디 슬픈 달이다. 5월이면 49세의 젊은 연세에 9남매를 남기고 비명에 돌아가신 어머님과, 돌아가신 어머님을 애타게 그리워하며 어머님 여의고 30여년을 쓸쓸히 사시다가 어머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며 돌아가신 아버님.......
어머님이 돌아가신 그 날 밤도 개구리 울음 소리 요란하고 소쩍새는 구슬피 밤의 적막을 깨워 울고, 어스름 상현달빛에 아카시아꽃도 허옇게 산을 덮었다. 70넘어 노년 10여년을 3개월씩 4동생들 집을 전전하며 사시던 아버님은 장남인 나와 살아보고 싶다시더니.....
외국을 떠돌다 돌아왔을 때는 쇠약해지셔서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에 머무셔서, 내가 모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효도어린 말씀 한 번 드리지 못한 아버님은 아주 쇠약한 상태에서도 어머님 돌아가신 후의 당신의 잘못에 대한 어머님의 용서도 구하시며.... 어머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시다 내 슬픈
5월에 돌아가셨다.
5월이면 어머님과 아버님을 여인 슬픔과 애틋한 아쉬움과 자식으로서 저지른 불효에 어김없이 불면증이 도지고 슬픔과 아쉬움과 안타까움과 후회를 억제치 못하고 몽유병 환자처럼 인적 없는 어둠 짙은 산길을 자정 넘어 걸으면서 가슴 저린 슬픔을 달래곤 하지만, 지는 아카시아꽃잎도 두견새와 산개구리 울음소리도 나의 슬픔을 달래지 못하고 더 슬프게 가슴을 때리는 5월이다. 나의 불면과 슬픔과 회한의 5월은 올해도 소리 없이 떨어지던 아카시아 꽃잎과 함께 갔다. 내 슬픈 오월이....
공군장교로 4년 5개월의 긴 군복무를 마치고 첫 아이 돌을 맞으며 학교 교사로의 복직을 포기한 체 어머님이 원하시는 대로 8명 동생들 학비를 위해 좀 더 나은 월급을 바라고 종합상사에 갓 입사하고 몇 개월 지나지 않은 1978년 5월 18일(음력 4월 12일) - 감기 몸살에 불편한 몸으로 어머님은 동네 사람이 입후보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투표하러 가셨다가 돌아오는 길에 술 취한 고향 친구가 모는 경운기에 동네 사람들과 타셨다가, 경운기가 전복되는 사고에 함께 탄 동네 사람들은 가벼운 상처만 입었지만... - 어머님은 현장에서 운명하셨다.


"모친 위독 급 귀향"
전보를 받고 허겁지겁 고향 집에 도착했을 때 항상 환한 얼굴로 반갑게 맞아주시던 어머님은 이미 차디찬 시신으로 누워계셨다.
한 마디 유언도 없이.....초등학교 입학 전 여동생을 비롯하여 초-중-고-대학에 다니는 어린 동생들 7명과 그때 갓 결혼하여 100일도 안 된 바로 밑에 동생 부부와 돌아가시기 전 보내신 학비 걱정, 아픈 자식 수술 걱정, 첫 손자 건강 걱정이 담긴 몇 장의 편지를 유서(유언)처럼 남기시고.....어머님은 그렇게 돌아가셨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아버님은 자주 술에 취하시고, 술이 취하시면 근동 사람들과 싸우시다가 상처를 입혀 치료비와 합의금도 몇 번을 물어주었다. 또한 마음 다잡아 먹고 조용히 지내신다고 재혼도 하셨지만, 아버님은 어머님을 그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마음을 잡지 못하시고 헤어지셨다. 70 넘어 고령엔 고향에 논, 밭, 임야를 누가 판다면 앞 뒤 안 가리시고 계약부터 하고, 동생들에게 중도금과 잔금을 내라고 하며 땅에 대한 욕심은 부리셨다.
어쩔 수 없이 여유 있는 동생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돈은 땅에 묻어야 한다!”며 아버님이 계약한 땅을 사 모으게 되었다. 지금은 세종시가 되어 경제적인 가치나 자산증식이 불가능해보이던 고향 벽촌의 논과 밭과 산이 더없이 잘된 투자가 되어 “아버님이 유산은 안 물려주셨어도 땅을 억지로 사도록 하여 자식들을 도왔다.”고 형제들이 모이면 옛날 그 시절 아버님을 기억한다.
그런 아버님께도 나는 항상 불평과 핀잔만 했으며, 말년에 10여년을 동생들이 모실 때도 나는 해외를 떠도느라 모실 기회가 없었고,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서둘렀지만 황금연휴(2009. 5.2일은 토요일 석가탄신일이었고, 화요일은 어린이 날이라 5월 4일 월요일을 대부분 휴일로 하여 2-3-4-5일 4일을 연휴로 했다.)라 길이 막혀 수차례 빨리 오라는 동생들의 독촉 전화를 받고도 도중에 운명하셨다는 전화를 받아 아버님의 임종을 보지 못한 불효자가 되었다. 어머님을 일찍 사별하고 외롭게 지내시던 아버님 그 고독하고 쓸쓸한 마음을 짐작도 못하고 핀잔과 불평만 늘어놓던 불효자라 후회막급이다.
음력으로 어머님은 4월12일(1978년 5월 18일) 49세로, 아버님은 4월8일(2009년 5월 2일) 84세로 돌아가셔 평소 아버님 말씀대로 충북 청원군 선산에 함께 모시고, 같은 달 부모님 제사는 같은 날 모셔도 된다하여 4월8일(석가탄신일)에 부모님의 제사를 함께 모신다. 돌아가신 뒤 묘에 절대로 석물(비석이나 상석)은 하지 말라는 아버님 말씀 따라 묘비석이나 상석도 없이 합장을 했다. 매년 벌초 때나 한식 때 형제들이 함께 산소에 모이면, 죽으면 강가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따른 말 안 듣는 청개구리들은 아닌가? 하고 묘석에 대한 얘기도 하지만.....

부모님의 죽음은 슬픔과 아쉬움과 암담함 그리고 후회로 지워지지 않는 평생의 멍으로 나의 가슴에 남아 매년 5월엔 슬픔과 회한과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밤길을 거닐며 남몰래 눈물을 흘리곤 한다. 소쩍새와 개구리 울음소리, 빨간 장미와 흰 달빛과 함께 떨어지는 아카시아꽃잎, 숲 속의 칠흑 같은 5월 심야의 어둠.....모든 것들이 슬픔과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더 할 뿐, 나의 슬프고 애닯은 마음을 달래주지는 못한다. 그 슬픈 나의 5월은 올해도 은색 달빛에 떨어지는 하얀 아카시아 꽃잎과 함께 갔다.
원문 : http://blog.daum.net/hwhp/10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