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일행 셋이(원래는 2명이 정원) 탄 카누가 보트맨 두 청년에 의해
폭포가 있는 상류를 향해 바윗틈을 곡예하듯 헤집고 올라 간다.
계곡 양벽이 거의 90도 수직인 걸로 보나,암질로 보나,오래 전 지진에 의해 갈라져 형성된
계곡임에 틀림 없었다.하늘만 빼꼼이 내다 보일 뿐 주위가 온통 원시림이다.상류로 올라가는
도중 계곡 양쪽 벽으로 크고 작은 폭포가 마치 병풍을 걸어 놓은 듯 열 개도 넘게 나왔다.
뒤에서 미는 보트맨이 카누가 바윗틈을 빠져 나갈 때 마다 "손조심","손조심"하며 한국말로
주위를 환기시켰다.카누가 좌우뚱거리기 때문에 배 양쪽을 손으로 잡고 있다가 바위와 배
사이에 손가락이 끼는 사고가 종종 일어났었나 보다.
계곡 폭이 점점 좁아지는 걸로 보아 거의 종착지점에 다다른 것 같다. 한 시간여의 사투 끝에
드디어 팍상한(Paksanjan) 폭포에 도착했다.우선 첫 인상은 제주도의 천지연 폭포를 연상케
했다.천지연 폭포가 1단 폭포인데 비해 이 폭포는 2단 폭포로써 정면에서는 2단만 보이고
1단은 바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폭포 앞에서 뗏목으로 갈아 타고 폭포수 밑으로 들어가
폭포수를 뒤집어 쓰며 여름 내 쌓인 피로를 한 방에 날려 버렸다.뗏목에서 내리며 보니
모두가 물에 빠진 생쥐 꼴인데,아차,쎌폰이며 지갑이 몽땅 물에 젖어 버렸다.
내려 올 땐 속도도 빠르고 한결 여유가 있어 보트맨 두 청년과 대화를 나누며 내려왔다.
뒤에 탄 청년은 나이가 열 아홉인데,15세 때 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그래서인지
그 청년의 손은 시골 농부의 손보다도 훨씬 거칠어 보였다.보트맨 생활을 하며 바위를
붙잡고 싸운 흔적이었다.
16세기 마젤란의 필리핀 점령 이후 스페인 사람들이 경관이 수려한 이곳에 몰려 오면서
부터 이 카누타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지금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이 카누타기를
즐기지만,그 당시에는 식민지인들을 소나 말 부리듯하며 이 놀이를 즐겼다 한다.어쨋든
그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와 지금은 최고의 관광상품이 된 것이다.
출발지점에 되돌아온 후 아들 같은 열 아홉 청년의 거칠었던 숨소리(바위틈 사이로 보트를
밀며 올라갈 때)가 마음에 걸려 팁을 듬뿍주고 보트에서 내리며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 청년이 환히 웃으며 서투른 한국말로 "감사합니다"하며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