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포기하고 살던 나는 사업실패로 자살까지 생각했던 가장 힘든 시기 아들을 얻게 되었다. 늦둥이에다 혼자 크는 아이 버릇 없이 키우면 안된다는 생각에 위 아래를 엄하게 가르친다며 어른에게 반말하는 경우는 사정없이 회초리를 들었다. 아들에게 바라는 것은 건강하게 크고, 예의 바르며,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사는 것이 전부이다.
초등학생에게 공부를 이야기해본들 잔소리일 뿐이고, 자기 팔자 자기가 사는 것이라 닥달해본들 될 것이 아니 되고, 아니 될 것이 되는 것이 아닌 것이 세상의 이치라 큰 욕심 없이 키워왔다.
벌써 아이는 훌쩍 자라 벌써 초등학교 고학년이다. 벌써 친구와 어울려 다니느라 부모는 뒷전이다. 직장생활에 술에 쩔어 들어오는 아버지와 공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품안의 자식이라고 어릴때야 부모 밖에 모르고 컸고,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모두에게 여간 힘든일이 아니었다. 주말이 바쁜 직업인 집사람을 대신하여 대부분 아버지와 같이 주말을 지내다보니 특별하게 할 것이 없었다. 행사장이나 축제를 다녀본들 판에 박힌 것들이고, 도서관을 다녀보기도 했지만 어린아이에게 책보는 것에 실증부터 가르치는 것 같아 그것도 그만 두었다.
늦게 낳은 아들이고, 연식차이가 많이 나다보니 생각하는 것도 시간이 갈수록 커질 것은 자명하다. 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진보우익이 가장 옳다고 생각하니 그것만이라도 공감해 주면 좋겠지만 자식이 내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폐나 끼치지 않고 컸으면 좋겠다. 늦둥이 아들과 오랫동안 공감할 것을 찾다 3년째 캠핑을 다닌다. 중학교를 입학하고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면 친구와 더 많은 시간을 가지려 할 것이고 그때까지 캠핑을 부자가 다닐 것 같지는 않다.
잘 정비된 오토 캠핑장에 다녀 보았지만 저녁내내 고기 구워먹다 가는 사람들 뿐이고, 특별한 것이 없어 인가가 없는 저수지, 계곡 등에서 노지캠핑만 다니게 되었다. 직접 밥도 해먹고 찌개도 같이 끓이고, 모닥불 피울 나무도 마련하고, 텐트 및 장비 정리 하는 것도 역할을 분담한다. 밤낚시도 하고, 나물도 뜯고, 약초도 캐는 등 이제는 둘만의 개성있는 캠핑을 즐긴다.
3일의 황금연휴기간이라 어디든 가야겠고, 한참 고심하다 남한강변으로 가기로 했다. 때마침 누치가 산란을 위하여 여울살을 타고 오를 시기라 낚시를 챙겨 갔다. 보통 50-60cm는 보통인 대물들이 여울살을 가르는 광경은 장관이다.
텐트를 치고 장마에 떠내려온 마른 나무를 구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여 하룻밤 묵을 공간을 만들고, 쌀을 씻고, 찌개를 끓여 준비를 하고 본격적으로 낚시에 나섰다. 오늘 모닥불 당번은 아들이 하기로 했고, 산불조심 기간이지만 강변에 불날 일도 없어 모닥불을 아들에게 맡겼다. 불을 피우는 것은 위험하여 내가 도맡아 하던 일을 처음으로 아들에게 맡긴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강변을 돌아 다녀 강물에 떠내려온 나무를 잔뜩 구하면서 신이 났다.
릴낚시를 여울살에 던져 몇 번의 릴링 끝에 대물이 한 마리 낚였다. 첫 조과 치고는 성공적이었다. 아들에게 릴 던지는 법과 챔질, 릴링 등을 가르쳐 보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이다. 릴낚시의 참맛은 캐스팅(낚시 바늘을 물에 던지는 것)이다. 경쾌하게 바람소리를 가르며, 낚시줄이 포물선을 그리고 바늘이 물에 빠질 때의 상쾌함은 어떤 낚시보다 압권이다. 캐스팅 후 아들에게 낚시대를 주고 릴링을 가르치며 한동안 낚시 삼매경 중 낚시대 끝이 급격하게 휘어지고, 릴에 강력한 압력이 걸렸다. 대물이라는 직감이 왔고 낚시대를 빼앗으려다, 아들과 같이 낚시대와 릴을 잡고 릴링을 같이 했다. 뜰채가 필요할 것 같았지만 물 밖으로 뒷걸음 치며 누치를 끌어내기로 했다. 아들과 같이 천천히 뒷걸음치며 물 밖으로 나와 서서히 끌어당기니 수면에 누치 몸통이 보인다. 여울살을 가르며 조금씩 끌려오는 누치의 힘이 장난이 아니다. 누치의 강력한 힘과 싸우며 물 밖으로 간신히 끌어내니 보통 큰놈이 아니다.
처음 잡아본 큰 고기에 아들은 기뻐 폴작 폴작 뛰고 난리도 아니다. 사진 찍어 엄마에게 전송하고, 친구에게 전송하고 자랑에 여념이 없다. 약 두시간 정도 낚시를 하고나니 대물 세 마리가 잡혔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어머니는 부처님 오신날 몇일째 자원봉사인데 아들은 방생을 못할 망정 물고기나 잡고 있으니 어머니가 쌓은 선업을 아들이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어차피 끓여 먹지도 못할 것이고 집에 가지고 가야 쓸데 없는 것 잡아 왔다고 바가지나 긁힐 것이고, 언제나 그랬듯 오늘도 아들과 상의하여 방생하기로 결정했다. 작년 마지막 낚시캠핑에서 깡통낚시로 65cm 대물 잉어를 잡았고 방생하였다. 올해 첫 출조에서 대물 세 마리나 잡았으니 올해는 낚시캠핑에 주력해야 할까보다.
아들은 잡은 물고기에 대한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한 시간 후에 방생하자고 했다. 한시간 동안 누치와 같이 놀던 아들은 방생 준비를 하고, 누치풀장 돌담을 허물기 시작했다. 한 마리 한 마리 빠져나가는 누치에게 괴롭혀서 미안하다고 깍뜻한 인사를 하였다.
해는 뉘엇 뉘엇지고 있고, 밤을 보낼 준비를 했다. 아들나이보다 2배도 헐씬 넘는 연륜을 가진 석유버너에 불을 지폈다. 젊은날 산에미쳐 살던 내가 가장 아꼈던 라이언 석유버너이다. 아직도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캠핑장비이다. 세월은 속일 수 없는지 에어펌프 가죽바킹이 닳아 에어압력 높이려면 꽤 많이 펌핑을 해야 한다. 가죽바킹 좀 구하려 해도 단종된지 20년이 넘는데 구할 방법이 없다. 요즘 나오는 쓰기편한 최신형 휘발유 버너나 가스버너가 넘쳐 나지만 화력에 있어 석유버너를 따라올 것이 없다.
오늘 저녁메뉴는 밤과 김치찌개, 미국산 등심 모닥불 바비큐이다. 캠핌을 떠나면서 수입쇠고기 전문점에서 만원어치 미국산 등심을 사니 푸짐하다. 광우병 파동 등 파란만장한 사연을 가진 미국산 쇠고기지만 가격 대비 맛은 훌륭하다. 보통 삼겹살을 사갔지만 아들이 쇠고기 먹고 싶다고 해서 샀다. 한우를 샀으면 좋겠지만 주머니 사정이 녹록하지 않다. 삼겹살 보다 싼 미국산 등심으로 아들에게 생색낼 수 있어 좋다.
술을 많이 좋아하지만 아들과의 캠핑에서 술타령할 수 없어 캠핑을 갈 때는 오로지 정종 4홉 한병만 산다. 불지피는 것을 도와준 후 모닥불 관리를 시키니 그간 보고 배운 것이 있었는지 모닥불 관리가 제법이다. 잔가지부터 불을 피우고 점점 굵은 나무를 올리고 모닥불이 약할 것 같으면 중간 중간 잔가지를 넣어 불길이 사그라들지 않게 하며 적당한 화력을 조절하는 것을 보고 역시 조기교육은 효과가 크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중석쇠에 등심을 올려 앞뒤로 노릇 노릇 구워가며 따끈하게 데운 정종으로 내장을 소독하니 더할 것이 없는 저녁이다. 낚시하느라 힘을 많이 썼는지 아들은 몇공기 밥을 뚝딱 해치운다.
불은 인간의 본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마력이 있다. 인간이 발견한 가장 위대한 것은 불의 발견이라 했다. 경외감과 숭배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불을 통제함으로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그래서 불은 인간의 본능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 같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애국가를 대신하는 대한민국의 본성을 깨울 불은 언제 타오르려나. 우울한 소식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