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교육은 엄청난 비용을 투자하면서도 학교교육의 효과나 교육의 목표달성은 만족할 만한 상태가 아닌 것 같다. 학교교육은 인성과 윤리도덕의 교육을 포기한 지는 오래되었고, 지식전달 교육은 단지 입학시험, 입사시험, 고시의 수단이지, 전혀 인격수양이나 윤리/도덕성의 함양이나 국가관이나 철학적인 사고능력의 훈련도 아니며, 실용적인 기술이나 직업 교육도 아니다. 고기잡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 아닌, 고기 잡는 구경을 시키면서 설명만 듣는 그런 교육이다. 따라서 학교 교육은 입시나 고사나 입사시험이 끝나고 나면 아무런 효용가치가 없는 무용지물이 된다.

엄청난 교육비용을 지불하고서도 남는 것은 하나도 없는 그런 교육이다. 특히 이런 현상은 인문계 교육에서 더욱 두르러진 현상이다. 이런 학국교육의 맹점과 급소를 개선하지 않는 한 비용에 비하여 효용성이 하나도 없는 교육은 계속될 것이다. 입학, 입사, 고시의 판별력으로 등수나 정하기 위한 교육이 과연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가? 벽돌과 건자재를 모아서 집을 짓도록 하는 교육이 아니라 규격화된 벽돌을 누가 많이 모으냐는 주입식 암기식 집단획일화 (Uniformization)교육으로 하루빨리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초등학교 3(4?)학년 국어교과서 문익점의 목화전래에 대한 글을 공부했다. 고려 공민왕 때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원나라가 철저하게 금수조치를 하고 단속하던 목화씨를 몰래 붓통에 숨겨서 돌아와 목화재배가 시작됐다는 내용이었고, 그의 후손들에 의해서 제사기인 물레와 제직기인 베틀도 발명되어 일반 백성들이 무명옷을 입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난 도저히 교과서 내용을 믿을 수가 없었고 꾸며낸 얘기라 생각하여 선생님께 손을 들고 질문을 드렸다.
“선생님! 그럼 문익점 전에는 우리 조상들은 뭘 입고 살았나요? 발가벗고 원시인처럼 살았나요?”
“너~ 왜 공부시간에 쓸데없는 질문이야? 이리 나와서 손바닥 벌려!”
그날 난 손바닥을 대나무뿌리로 만든 막대기로 열대나 맞아 손이 퉁퉁부어서 3일간이나 숟갈질도 힘든 고통을 겪었고,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야 임마! 어떻게 발가벗고 사니...히히히~”라면서 자기들은 모두 아는 체 .....
중학교 역사시간에는 종아리를 회초리로.... 고등학교 역사시간에는 엉덩이를 몽둥이로......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으면서 쓸데없는 질문이라고 때렸고, 급우들은 놀려댔다. 이 의문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나의 수수께끼인데..... 혹은 백제 때 목화가 전래됐다 해도 "그럼 그전에는?“라는 똑같은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문익점의 목화전래의 역사는 허위인가? 문익점의 목화 전래의 역사는 한국역사를 짓뭉게기 위한 악의적인 인위적 역사는 아닌가? 문익점의 목화전래와 물레 베틀의 역사를 인정하면 우리는 고려말 이전에는 원시인처럼 발가벗거나 나뭇잎 동물의 가죽이나 털로 옷을 입은 원시인이 되지 않는가? 그런데도 획일화/집단화의 한국교육은 의문과 질문을 막은 체 아무도 모르는 무지인들을 양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문익점의 목화전래와 물레 베틀의 역사를 인정하고 그 이전의 역사를 논할 수 있는가?
한국의 교육이 사상누각이며 꽃병에 꽂은 꽃과 같은 생명력없는 시험의 판별력을 위한 교육이 아닌가?
중학교 때 나는 천주교 성당 신부님께 정중히 여쭈었다.

“하느님께 기도는 드리고, 아침마다 묵주기도도 올리는데.....
솔직히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확실한 개념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어떤 존재요”?
“응~ 세상 모든 것은 만든 사람이나 조상이 있어야 존재하지?
넌 너희부모가 있고, 할아버지가 계시고....
이렇게 올라가다 보면 최종적으로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 존재하고 그분이 하느님이시다.”
“그럼 하느님은 누가 만드셨나요?”
“하느님은 누가 만든 분이 아니고,
최종 최고의 존재로 스스로 존재하는 야훼며 여호와며
스스로 존재하는 그 분을 하느님이라 한다.
그 분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다.”
“만든 사람이나 조상이 있어야 존재한다고 시작하고서...
하느님은 스스로 존재한다고 하시면.... 앞뒤가 안 맞잖아요?”
“그럼 어쩌겠니?
그냥 스스로 존재하시며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라 믿어라.
믿는 것은 우리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믿어야 하며, 자꾸 의문을 가지고 따지면 믿음이 아니다. 알겠냐?”
이것이 내가 어릴 때부터 믿는 하느님에 대한 정의다.
그러나 아직도 의문은 완전하게 풀리지 않고 있으니.......
기독교나 개신교에서는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덮은 체 사도신경으로 무조건의 복종을 강요하고,
주기도문으로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을 강요하며 맹목적인 신앙을 투터운 믿음이라 세뇌한다.
이런 현상은 학교에서 뿐만 아니고,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도 흔하다.
“그냥 대충 넘어가!”
“따지긴 뭘 따져!”
“좋은 게 좋은 거야!”
“자꾸 따지면 골치만 아파!”
“전통/전례에 준해서 근본적인 의미나 진위를 따지지 말고 그냥 믿어!"
.............이런 것이 우리 교육의 결과며 병폐며 맹점이며 급소다.
적어도 학교에서 교육시엔 정사/ 진위/ 선악/ 미추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추구하고 사물의 핵심을 생각하고 연구하는 자세가 앞으로 교육의 방향이며, 지향 추구해야할 목표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인류의 문화와 교육은
원시 개인화(Primitive Induvidualization) < 집단 획일화(Uniformization) < 개성화(Characterization)으로 발전되어 왔는데, 한국교육은 아직도 집단획일화(Uniformization)에 머물러 있으면서 새로운 생각 창조적인 인간을 배제시키는 규격화 집단화 획일화를 고수하고 있다.
이 집단획일화(Uniformization)교육이 한국교육의 최대의 병폐며 맹점이며
제일 큰 문제점으로 개성화(Characterization)를 방해하는 교육의 치명적인 급소며 맹점이다.
한국의 교육은 지금까지의 개인의 개성적이고 창조적인 사고와
의문들을 짓뭉게는 비생생적인 집단획일화(Uniformization)의 교육을 청산하고....
자유로운 사고와 개성적이고 창조적이며 능동적인 사유를 보장하고 북돋우는
창조적 개성화( Creative Characterization)로 전 교육방향을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
첨단을 달리면서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하는 선진 대한민국의 교육은 창조적인 개성화 교육이어야만 한다. 미지를 개척하는 최초며 창조적인 지혜는 기존의 것들을 모방하는 지식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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