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네팔의 地震사태를 보면서 患亂과 災難을 생각해 본다.
그것이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다행이겠으나
그것에는 國境이 없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災殃이다.
우선 환란과 재난의 뜻을 생각해 본다.
비슷하면서 다른 말이다.
患亂은 인문학적이고 災難은 자연과학적인 것으로
둘을 합치면 災殃이 된다.
환란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재난만을 다루기로 한다.
현대는 씨스템 사회이다.
옛날에는 넓게 그러니까 편만(遍滿)하게 살았는데
인구가 많아지고 인간의 知能과 知性이 높아지면서
高度의 文物이 발달하였다.
씨스템은 모여야 그 기능이 向上된다.
단순차원에서 高度의 차원으로 발전하면 그 생산성은 급격히 높아진다.
인간은 그것을 享有하며 高次元의 삶을 살아간다.
인간의 住居형태는 급속도로 集積되어 아파트먼트가 大勢다.
이제는 누구도 단독주택을 새로이 짓고 살지 않는다.
나도 살아보니 아파트가 여러 모로 편리하고 쾌적하다.
그래서 남은 생애도 여기에 安住하고 싶다.
네팔의 强震과 더불어 히말라야의 地形이 바뀐다고 한다.
에베레스트 산이 주저 앉아 높이기 낮아졌다고 한다.
한반도의 백두산도 마찬가지다.
백두산 最高峰의 높이도 낮아졌고
주변 온천수의 온도가 69도에세 최근 83도까지 올랐다고 한다.
그러니까 백두산은 화산폭발의 徵兆가 最高로 오른 것이다.
이것들은 자연재해이고,
대표적인 人工災難이 두 가지가 있다.
러시아 체르노빌과 일본 후쿠시마 原電 폭발사고이다.
우리나라도 원전 受惠國 중에 하나다.
먼 산의 불구경이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 원자력은 그 위험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이용률이 높아
위험을 甘受하고 그것을 收容하고 있다.
前提조건은 이것이다.
高度의 안전관리로 위험을 最小化하는 것이다.
그런 줄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곳이 伏魔殿이다.
각종 非理의 원산지이고 그 관리상태가 끔찍스럽기 짝이 없다.
만일에 東海로 쓰나미가 몰려온다고 가정을 하면
나는 머리 속이 하얗게 그리고 텅 비는 느낌이 온다.
다시 아파트로 돌아온다.
북한의 평양은 철저하게 인공도시다.
그래서 格에 맞지 않는 고층아파트가 많다.
요즘 그곳에선 이런 웃지 못할 사건이 벌어진다고 한다.
그곳 고층아파트 아래로 지나갈 때는 항상 위를 조심하라고 한다.
위로부터 분뇨(糞尿)를 싼 종이뭉치가 떨어진다고 한다.
이게 무슨 해괴망측(駭怪罔測)한 일인가?
事緣은 이렇다.
북한은 항시 전력부족과 더불어 用水부족에도 시달린다.
최근에는 더욱 그 정도가 심하다고 한다.
그래서 아파트에 늘상 停電과 斷水는 새삼스런 일이 아니라고 한다.
食水도 문제지만 더욱 어려운 건 下水다.
화장실 변기를 생각하면 그 느낌이 바로 온다.
그래서 북한은 하늘로부터 이것이 떨어지는 것이다.
2011년 9.15 '循環(순환)停電' 사태를 나는 직접 몸으로 겪었다.
豫告도 없이 아파트가 정전이 되었는데
밖을 내다보니 청주대운동장 야구장에선 照明을 켜고
프로야구가 관중의 함성을 울리며 열리고 있었다.
우선 청주 全域의 정전이 아니므로 안심은 되었으나
불과 8시간여의 정전은 공포의 前단계까지 느낌으로 다가왔다.
불 꺼진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할 일이 없으므로 想像의 나래는 무한대로 펼쳐졌다.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란 것이 있다.
바로 화장실이다.
다른 것은 非常수단으로 해결의 실마리가 있는데
이곳은 아무리 궁리를 해 봐도 對策이 없는 것이다.
그때 그래서 이것의 해결이 없는 아파트 생활은
原始생활보다도 못하다는 생애(生涯)의 大發見이 있었다.
그러니까 아파트는 물론 편리하지만
위기상황이 닥쳐오면 그 自體가 재앙이 된다는 事實이다.
그런 例는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무척 많다.
은행 전산망이 다운 되면 그 불편을 우리는 자주 겪는다.
십여년 前 중부지방에 40㎝ 정도의 눈이 내렸다.
日常의 불편은 말 할 것도 없었지만
경부고속도로에 차량이 3일간 속절 없이 도로에서 멈췄다.
一部는 차를 놓고 탈출하였고 헬기로 빵을 空輸하는 작전을 펼쳤다.
생각을 확장하여 不幸을 예상한다면 이렇다.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는 각종 씨스템의 복합 展示場이다.
그곳에 全 인구의 4분의 1일이 몰려 산다.
이것은 좋게 말하면 幸福도시지만
만약에 북한이 쏜 핵폭탄 하나가 그곳에 터지면
그곳은 바로 地獄이 된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핵폭탄으로 죽는 인구가 아니다.
그 피해 규모는 어느 동네 하나 정도이겠지만
그 餘波로 인한 씨스템 붕괴는 一波萬波로 번져
서울 전체를 비롯한 수도권과 경기도가 위험에 빠진다.
그리고 남한 全域이 재앙의 여파를 감당해야 하는
총체적 危機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발전하면 재난이 환란을 불러와
物的 피해는 물론 국민은 극심한 패닉증세로 삶이 파괴된다.
나는 그런 재난과 환란이 내 생애에 없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나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어느 날 갑짜기 도둑 같이 달려 올 수가 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對備策을 생각해 보았다.
일단은 씨스템으로 향유하는 利得을 포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래서 인간에게 '편만(遍滿)'하게 살라고 했다.
(창9: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遍滿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遍滿하다-널리 충만하다
나의 계획은 이렇다.
일단은 都心을 떠나 시골로 내려가 定着한다.
요즘은 그것을 歸村, 歸農이라고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편만'이다.
가능한한 씨스템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최대한 自給自足의 생활패턴으로 살아간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앞에서 말한 "用水의 독립"이다.
그러니까 上水와 下水를 單獨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앞에서 상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이것은 나쁘게 말하면 일종의 逃避이며 利己心이다.
그래서 나는 시골생활의 방편인 副業으로 농사를 지을 생각이며
그것에 필요한 시설물을 많이 짓고자 한다.
그러니까 농사용 하우스와 倉庫 등을 여유 있게 짓는다.
그 목적은 이것이다.
국가적 재앙이 닥쳤을 때
나는 그 시설물을 公開하고 公有하기로 한다.
많이 불편하겠지만 그것으로 延命만 해도 多幸이다.
그렇다면 對象이 누구이냐가 궁금하다.
사람은 살면서 이렇게 저렇게 身世를 진 恩人이 있다.
나는 그에게 받은 은혜를 이것으로 갚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상이 되려면 평소에 나에게 잘하면 된다.
그냥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一理가 충분한 얘기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