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으로 지난 16일, 강릉 동인병원에 입원했었습니다. 오늘, 20일 퇴원하고 말았습니다.
원래 수술을 받으러 입원했지만 암이 사방으로 전이되어 있어서 불가피하게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10개월, 혹은 1년 간 항암치료를 받는데, 그렇게 치료를 받아도 수명은 1년 6개월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가족회의가 벌어졌고 저는 망설임 없이 퇴원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베트남에서 부상당하고 진해해군병원으로 후송되어 2년여에 걸쳐 부상부위를 입원치료 했던 때로부터 거의 50여년 만에 입원했던 병원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항암치료를 받게 되면 몸 상태가 엉망이 되어 누군가의 간호가 없으면 견디지 못한다던데, 그런 치료기간을 빼고 6개월 더 살자고 입원상태로 나머지 삶을 허비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민간요법으로 항암에 좋다는 음식을 섭취하면서 꾸준히 운동을 해 주는 것이 나의 삶을 살면서도 보람찬 생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입니다.
저는 전쟁터에서 죽음을 많이 경험했고 전우들이 전사한 것으로 알고 있었을 만큼 저 자신도 생과 사를 오가는 부상을 당했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인생은 덤이라고 생각하며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었는데, 고엽제 피해를 받아 당뇨병이 걸렸고 역시 고엽제 피해로 인해 암까지 걸린 것입니다.
우리 형님은 병원으로 문병 와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퇴원한다는 건 삶에 대한 희망을 접었다는 것이냐? 누군들 죽지 않겠냐만 어떻게 해서든 살 궁리를 하지 않고 퇴원부터 하겠다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거기다 그 얼굴 표정은 뭐냐. 마치 죽게 되서 잘됐다는 표정으로 보이니 어찌된 일이야?”
형님은 저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고 댁으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죽지 마! 죽었다간 내가 패줄 거야!”
5일 간의 입원기간동안 가족, 친척들과 친구들이 바쁘다고 생각할 만큼 많이도 왔었지만 죽음은 세상만물 그 무엇에게도 공평하게 오는 것입니다. 다만 일찍 죽느냐. 오래 살다가 죽느냐의 차이가 있을 따름입니다.
오래전에 이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말기암에 걸린 50~60대 부부가 자연휴양림에서 유서를 남기고 음독, 남편은 숨지고 부인은 중태에 빠졌는데 ‘부부가 함께 암에 걸려 자식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겼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과연 인간의 가치기준이라는 건 무엇인지 망연자실茫然自失해질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제가 암에 걸린 지금 되살아납니다.
그 기사를 읽었던 당시 나 역시 ‘만일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불치병에 걸린다면?’ 어찌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이 되었었습니다. 저 또한 말기암 같은 불치병에 걸린다면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생을 마감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자살을 택한 말기암 부부의 선택을 충분하리만큼 이해하면서도 못내 안타깝고 마음 아프게 느껴지는,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어떤 마음자리가 있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왜? 자신들의 불치병이 자식들에게 부담이 된다고 생각할 만큼 인간들이 몰인정해져서? 기왕 죽을 목숨, 쓸데없이 돈 쓰고, 투병생활 하느라 고통에 시달릴 바에는 죽는 게 났다고 판단한 생각이 어리석다 여겨져서?
안타깝고 마음 아픈 근원을 찾아보았어도 뚜렷하게 느껴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어떤 질문과 답을 하더라도 논리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만한 반대논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막의 악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일부다처제를 관용으로 생각하는 것이나, 굶주리던 시절에 노동력이 없는 노인들에 대한 고려장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도덕관념을 지금 시대의 기준으로 재단 할 수 없듯이 사람마다의 가치관 역시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될 것만 같다는 생각에 혼란스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말기암 투병 중이던 어머니를 보살폈던 경험이나 자폐증 딸을 키우면서 느꼈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그 모든 것들이 자식과 아비로서의 당연한 의무요 사랑이었을 뿐, 부담으로 작용한 적이 별로 없었기에 자식에게 부담되기 싫어 자살까지 해야만 했던 그분들의 선택이 안타까워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분들은 어찌하여 자식들에게 부모님들을 간호할 수 있는 권리조차 허용하지 않았을까요. 병든 부모를 간호하는 것 또한 자식들이 살아야할 보람 중 하나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비록 중환자를 간호하는 일이 힘겹더라도 자신을 키워 오늘이 있게 해준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부담보다는 쾌차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더 큰 몫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하는데요.
설혹, 돌아가실 부모님일지라도, 간호하는 일 때문에 자신의 일에 지장을 받을지라도, 그것 역시 경험해야할 삶의 모습이라면 자식들이 경험하고 깨우칠 기회를 빼앗는 것도 부모로서 하지 말아야할 부덕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짐작이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자신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자살해버린 부모님들로 인하여 평생을 죄인처럼 살아야할 것이라는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자식에게 부담될까 자살한 부부를 비난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말했듯 그 부부의 선택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듯 느껴지는 내 마음을 알 수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그저, 인간의 심리라는 건 모두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구나 싶을 뿐이지요.
나는 삶에 그다지 미련을 갖는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왕 살아있는 동안은 열심히 삶을 경험하겠노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슬픔과 괴로움, 고통에 이르기까지 힘을 다하여 경험하겠노라고…….
그래서 그저 누군가의 보살핌으로 매일을 보내야 하는 병원보다 수명은 줄어들지라도 살아있는 동안 사람으로 살고자 함입니다.
저 자신의 삶이야 그렇다 치고, 문재인도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자각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