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이면 모두 읽어야 할 필독서[必讀書]
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나, 박정희 시대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현장에서 다 같이 힘들게 조국근대화를 이루신, 육 십 대 이상의 조국근대화 세대들은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 통치 철학 연구소 소장이신, 김세영 선생님이 사실적으로 가감[加減]없이 진실 되게 기록하신 현대사인,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끄신 정치철학과 5,16 혁명으로 민족중흥을 성취[成就]하신,
박정희 대통령님의 업적에 대한 평가의 글을 봐 주시길 부탁 올립니다. 이글은 앞으로 저가 수십 회에 걸쳐서, 여기 논장에 올릴 것입니다. 여기 기록되는 글은, 김세영 선생님께서 직접 장기영 총리의 재경부에서 근무하시면서 쓰신 글이고,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도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단 한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기술[記述]합니다. 다만 한자어가 많이 쓰여 져서, 저가 알기 쉽도록 한글로 번역을 하면서, 오타가 있는 글은 저가 수정과 교정을 하였음을 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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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부패의 공직자를 대대적으로 숙정하다.
비난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이 어수선한 사태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돼, 어느 날 청와대 비서실에 대통령 면회를 신청했다. ⑦ 수난의 은행장들 = 박정희 대통령은 나에게 담배를 권하면서, 자신도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나는 그동안 있었던 세무공무원 숙정 결과, 통화관리 실태, 신문 지상의 소용돌이, 긴축정책의 필요성을 차례로 설명했다. 긴축정책이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며, 옛날 일본의 한 대장대신은
긴축정책을 밀고 나가다가 암살당한 일도 있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고 나서,“현재의 은행장들은 그동안 수고가 많았습니다마는 임기가 돌아오는 대로“모두 교체할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왜 그렇지?” 하고 대통령이 반문했다. “각하, 지금과 같이 금융이 정치와 유착된 상태에서 금융부정과 부패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과 정치의 밀착 관계를 끊어야 할 것 같습니다.” 대통령은 잠시 말이 없다가
이렇게 분부했다. “장관, 그렇게 하시오. 그놈의 정치 때문에 부정부패가 생기는데, 이대로 갈 수는 없지 않소. 소신[所信]대로 해 보시오.” 청와대를 나오면서“앞으로 이런 지도자에게 기대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통령에게 보고를 끝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 후 임원을 임면할 때는 은행장의 추천 외에는 어떠한 외부 압력도 배제하겠다고 선언했고, 임기가 만료된 은행장들 모두 교체했다.
그러자 권력층 일부에서 신임장관이 관록 있는 은행장들을 내쫓고, 풋내기 인물들을 등용한다고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금융계의‘거물’로 알려진 한 은행장을 교체할 차례가 됐는데, 그 전날 대통령비서실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대통령께서 들어오라고 하신다기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은행 인사문제인 것 같다는 대답이었다. 나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청와대로 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박 대통령은
공화당 당의장이 와서 한 은행장의 유임을 직소하고 돌아갔으니 청을 들어주는 것이 어떠냐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하면, 지금까지의 정책이 수포로 돌아가고 금융계가 나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금융과 정치의 유착관계 부패방지 절실합니다. 朴대통령 “소신대로 해 보시오” 임기 끝난 은행장들 모두 교체했고, 결국 은행을 민영화하지 않는 한, 은행의 자율화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⑧ 은행 민영화를 바랐지만“은행 하나만 민영화 시험 해보자”대통령 뜻에 상업은행 지분 넘겨 내가 재무부 떠나자, 다시 원위치 어느 날 기자간담회에서 시중은행을 민영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을 비쳤다. 다음 날 신문들은 정부가 시중은행을 민영화한다고 대서특필했다. 나는 신문의 과장 보도임을 해명하느라 애를 먹었지만,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다. 금융자금도 국가의 자원인 만큼, 정부의 계획[計劃]하에
경제개발에 유용하게 써야 한다는 것이 박 정희 대통령의 철학이었고, 많은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또다시 위기에 부닥쳤다. 생각 끝에 비장한 각오로 대통령을 뵙기로 했다. 나는 선진국에서는 대부분의 금융기관이 민영이고, 그들은 자율과 경쟁을 통해 오히려 국익과 합치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정부패가 적다는 것과 민간은행을 통해 정부의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것도 설명했다. 대통령은 언제나 남의 말을 진지하게 듣는 분이었다. 내 말을 듣고 나더니, 내 체면을 보아서인지 “그러면 테스트 케이스로 은행 하나만을 민영화해보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재무부를 떠난 이후 상황이 달라져 상업은행도 실질적으로 다른 은행과 마찬가지로 정부 간섭의 틀 안으로 환원됐다. 대통령도 부정부패 문제를 언제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놈의 정치를 하자니
정치자금을 걷지 않을 수 없고, 정치자금을 걷자니 부정을 묵인할 수밖에 없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나에게 묻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큰 기업들이 여당의 재정위원장에게 접근해 현금차관, 정부공사, 특별 융자 같은 특혜를 얻기 위해 정치자금을 헌납하면 위원장은 관계당국에 부탁해 기업들의 요구를 들어주도록 하는 것이 예사였다. 경제당국은 민원사업의 타당성을 심사하지만 여당의 입장을 고려해 법적 또는
행정적으로 무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것이 정치적으로 말썽이 되곤 했다. 나는 생각 끝에 대통령에게 건의를 했다. “앞으로는 재정위원장의 요구는 일절 거절하겠습니다. 기업이 신청하는 사업은 엄정히 심사해 인허가 여부를 결정하되, 특혜를 받는 기업이 있으면 재정위원장에게 정보를 주겠습니다.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조리를 적게 하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은 내 건의에 찬성했다.
당시의 재정위원장이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으나, 매우 통이 큰 인물이었다. 하루는 재무부의 차관보를 임명하게 됐는데, 나에게 전화를 걸어 청탁을 하기에“내가 쓸 사람이니 내가 고르겠다.”고 했더니 그는 껄껄 웃고 넘겼고, 그의 부탁을 거절했다고 해서 나를 조금도 싫어하지 않았다. 긴축정책의 효과를 나는 재무부 장관 취임 이후, 긴축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수습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거센 반발에 부닥쳤고, 특히 수출업계의 비명이 드높았다. “대통령 임석 하에 수출확대회의가 열리면”당시의 무역협회장이었던, 이활 씨는 재무부의 긴축정책 때문에 수출이 안 된다고 소리 높여 재무부를 비난했다. 그래서 나는 이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마치 검사 앞에 선 피고인이 된 기분이었다. 회의석상에서 인플레이션의 원인과 해법을 장황하게 강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대통령이 무성의하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항상 하던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은 수출확대회의에서 상공부가 수출 애로 사항을 보고하면, 그 자리에서 대책을 지시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날은 아무 말 없이 일어섰다. 그러더니 내 옆을 지나가다가 청와대로 올라오라는 것이었다. 청와대로 올라가면 대통령은 언제나 나에게 담배부터 권한다. 지금은 안 피우지만, 그 당시에는 줄담배를 피운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 다음에 계속 됩니다 =
-- 안동 촌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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