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이면 모두 읽어야 할 필독서[必讀書]
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나, 박정희 시대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현장에서 다 같이 힘들게 조국근대화를 이루신, 육 십 대 이상의 조국근대화 세대들은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 통치 철학 연구소 소장이신, 김세영 선생님이 사실적으로 가감[加減]없이 진실 되게 기록하신 현대사인,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끄신 정치철학과 5,16 혁명으로 민족중흥을 성취[成就]하신,
박정희 대통령님의 업적에 대한 평가의 글을 봐 주시길 부탁 올립니다. 이글은 앞으로 저가 수십 회에 걸쳐서, 여기 논장에 올릴 것입니다. 여기 기록되는 글은, 김세영 선생님께서 직접 장기영 총리의 재경부에서 근무하시면서 쓰신 글이고,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도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단 한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기술[記述]합니다. 다만 한자어가 많이 쓰여 져서, 저가 알기 쉽도록 한글로 번역을 하면서, 오타가 있는 글은 저가 수정과 교정을 하였음을 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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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체재하에서는 경제 민주화가 어렵다!
대통령에게 귀국 보고를 하고, 새마을운동 농민 파견을 건의했다. 이후 양국 실무자 간 협의를 거쳐, 농민 17 명을 파견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인원은 확실치 않다. 후일 들은 바에 따르면, 그들은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식목 관리에 종사하며 좋은 대우를 받다가 대부분은 돌아왔으나, 몇 사람은 그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고추 파동과 중국 진출“중국 고추 수입”조달청장 제안, 포니차[車] - 섬유 - 가전제품 실은 배 태극기 달고
중국[中國] 입항 … 교역 시험 1992 년 8 월 노태우 정부 때 중국과의 수교가 이뤄졌지만, 그 이전에도 우리 무역업계는 홍콩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중국과 무역거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1979 년 이건중 조달청장이 정부 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중국의 관영 무역회사와 직접 무역 거래를 한 일이 있다. 조달청장은 당시 중국은 한국과 수교가 없는 적성(敵性)국가이므로, 중국과의 무역거래는 위법이고, 하물며 정부 기관이
중국 고추를 수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청장은 재무부에서 증권 보험국장을 지내다가 조달청장으로 영전했고, 나와는 가까운 사이였기에 어느 날 청와대 특보실로 나를 찾아와 고충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전부터, 중국과의 무역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1978 년 개혁, 개방의 방향으로 노선 전환을 선언했는데, 그들의 새로운 외교 전략은
네 가지로 구성돼 있었다. 이 청장은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중국 고추를 들여오고 싶다고 말했다. 이야기 끝에 고추보다 이 기회에 중국과의 교역을 시험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말이 나왔다. 두 사람은 중국보다 크게 앞선, 우리 공업제품을 중국에 선전할 겸, 고추를 사러 가는 배에 포니자동차 한 대와 섬유류, 가전제품들을 싣고 가서 팔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 배가 톈진(天津) 항에 들어갈 때 태극기를 달고
들어 갈 수 있도록 교섭하기로 했다. 나는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해 재가를 받았다. 이 청장은 홍콩과 방콕을 왔다 갔다 하면서, 중국 측 관영 무역회사와 교섭을 계속한 끝에 배를 보내도 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필경 중국 정부 계통의 승인을 받아냈던 모양이었다. 조달청이 고용한 우리 배는 위에서 말한 물건들을 가득 싣고, 태극기를 휘날리고 톈진 항에 입항했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싣고 간 물건들을 중국 회사에 팔아넘기고,
고추를 실은 우리 배는 무사히 돌아왔다. 그러나 이 일이 알려지자, 중앙정보부는 자기들이 해야 할 공작을 이 청장이 했다고 하여 그를 오라 가라 했고, 이 청장은 심한 고초를 겪었던 모양이다. 대통령의 특명사항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조용해지기는 했지만, 나는 그에게 미안한 생각을 금치 못했다. 안에선 정국요동 … 밖은 인권논란 특보들 위기타파. 해외설명회 기획 “美 출장” 보고가 마지막이 될 줄이야! 1979 년,
청와대 득보 실에는 매일 같이 반정부 데모와 정당 싸움에 관한 정보가 올라왔고, 미국 언론과 의회에서는 한국의 인권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국내의 정세가 도저히 이대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박정희 대통령도 정치적 결단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시간이 없지 않은가? 그러면 특별보좌관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박 대통령이 마지막 골프를 파로 끝낼 줄이야 ! 신(神)만이 알고 있었다.
원래 박 대통령은 골프를 좋아했지만, 자주 치지는 못했고 게임이 끝나면 수행자들에게 특제[特製]막걸리를 돌리고, 우동을 드는 것이 상례였다. 저녁 식사가 끝날 무렵, 나는 “각하, 저는 오늘 밤에 서울로 올라가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왜요?”“내일 미국에 출장 가기로 보고 드렸습니다.”“참, 그렇군.”(대통령) 이것이 박 대통령과 나 사이의 마지막 대화이자, 영원한 작별이었다.
한 시대의 막이 내리면서,“한국 민주화는 필연 … 지켜봐 달라”美 연설 기립박수 받고 오른 귀국길 ‘朴대통령 서거’청천벽력의 뉴스가 … 경주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작별한 다음 날, 나는 미국으로 떠났다. 먼저 워싱턴에 들러 구면의 정부 요인들을 찾아본 다음, 뉴욕에 도착해 플라자 호텔에 투숙했다. 그 다음 날, 한 미 경제협의회 주최로 오찬 강연을 하게 됐는데, 이 지역의 많은 실업인, 금융인, 국제금융기관,
그리고 교포들이 전 좌석을 메운 것을 보고 작금에 보도된 한국 사태에 대한 관심이 큰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준비된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워낙 여러 번 읽고 고치고 한 원고인지라, 전문을 거의 외울 수 있었다. 얼마 안 가서 원고를 보지 않고 즉흥 연설처럼 흘러나왔다. 그러다 보니 정치에 관한 나의 평소의 잠재의식이 그대로 터져 나와, 나도 모르게 원고에 없는 말도 하게 됐고, 연설 요지에는 정치도 경제와 마찬가지로
단계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서양의 민주주의가 후진국 토양에 뿌리를 내리자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후진국의 특징은 경제적 빈곤과 정치적 불안정의 악순환이다. 빈곤하기 때문에 정치가 불안정하고, 정치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정부가 무엇을 일관적으로 해보려야 해볼 수가 없다. 그래서 많은 후진국들은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이 없다’는 맹자의 말이 있는데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가지게 되면 양보와 타협, 다수결에 대한 복종, 자유와 책임에 바탕을 두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지금 정치적 민주화의 경제적 기반을 만드는 단계에 있는 것이다. 그동안의 눈부신 경제발전 덕택으로 민주화의 욕구가 커져가고 있고 정부도 그에 부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공산주의 체제하에서는 자생적 민주화를 기대할 수 없지만
시장경제 체제하에서는 그 자체의 논리에 따라 민주화 요인을 만들어내 필연적으로 민주사회로 이행하게 마련이고, 한국도 그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의 민주화는 시간문제이니 이해와 인내를 갖고 지켜보기 바란다? 연설을 끝내자, 청중이 일제히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뜻밖의 일이었다. 아마도 나의 솔직한 심경 토로가 그들의 공감을 샀던 모양이다. 미국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아들이 하와이에서 = 다음에 계속됩니다 =
-- 안동 촌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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