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이면 모두 읽어야 할 필독서[必讀書]
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나, 박정희 시대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현장에서 다 같이 힘들게 조국근대화를 이루신, 육 십 대 이상의 조국근대화 세대들은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 통치 철학 연구소 소장이신, 김세영 선생님이 사실적으로 가감[加減]없이 진실 되게 기록하신 현대사인,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끄신 정치철학과 5,16 혁명으로 민족중흥을 성취[成就]하신,
박정희 대통령님의 업적에 대한 평가의 글을 봐 주시길 부탁 올립니다. 이글은 앞으로 저가 수십 회에 걸쳐서, 여기 논장에 올릴 것입니다. 여기 기록되는 글은, 김세영 선생님께서 직접 장기영 총리의 재경부에서 근무하시면서 쓰신 글이고,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도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단 한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기술[記述]합니다. 다만 한자어가 많이 쓰여 져서, 저가 알기 쉽도록 한글로 번역을 하면서, 오타가 있는 글은 저가 수정과 교정을 하였음을 말씀 올립니다.
= 58 =
박정희의 치국이념을 모르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뭄바이 거리에 누워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청중은 더는 말이 없었다. <43> 대통령과 C E O 목표 → 기획 → 시스템 확립 → 평가 朴 대통령은 CEO 대통령’의 전형은 문제가 발견되면, 반드시 해결책 찾아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C E O 라고 하는데, 국가의 최고경영자인 대통령도 C E O 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한때 C E O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는 소리가 높기도 했다.
그러면 C E O 에게는 경영을 위해, 어떠한 기능이 요구되는 것일까. 나는 네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경영 목표를 설정해야 하고, 둘째로 목표 달성을 위한 기획을 세워야 한다. 셋째로 기획을 실현하기 위한 조직과 운영 시스템을 확립해야 하고, 넷째는 집행 과정을 분석 평가하여 잘못이 발견되면, 즉각 시정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C E O 는 성공할 수 없고,
C E O 자격도 없다. 돌이켜보면, 박정희 대통령의 시정 스타일은 C E O 의 기능과 완전히 합치한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그는 경제개발과 국방력 강화가 시정 목표임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경제 발전을 위해 경제개발 5 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심사분석회의 이외에도 대통령은 월례경제동향[月例經濟動向]보고, 월례수출확대회의[月例輸出擴大會議]등을 주재했고, 쉴 세 없이 정부기관과 지방을 순시하고, 이를 통해
관계 부처의 업무 수행을 감독하는 동시에, 민간부문의 여론과 협조를 이끌어 냈다. 심사분석회의나 기타 회의에서 각부 장관은 자기 소관 업무를 평가받으므로 업무 수행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고, 공무원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야 했다. 심사분석회의가 다가오면, 상급 공무원들이 자기 부처 소관 업무를 기획관리실장이 어떻게 보고할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기획관리실에 로비를 하는 것도 눈에 띄었다.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해결책을 찾고 넘어가는 것이 박 대통령의 행정 스타일이었다. 대통령은 그 업무를 경찰을 관장하는 내무부로 이관하라고 즉석에서 지시했다. 그리고 산림녹화 사업을 위해, 1967 년 농림부의 산림국을 산림청으로 개편했다. 산림녹화야말로, 박 대통령의 위대한 치적 가운데 하나다. 지금은 5 개년 계획도 없어졌고, E P B 도 없어졌다. 민주화의 이름으로 없어진 것이다. 그러 나, 기업이나
국가의 운영 원리는 이념이나 정치체제와는 상관이 없다. 민주적 행정 체제에서도 앞서 말한, 네 가지 기능을 잘 수행하는 나라는 효율과 생산성을 올릴 수 있을 것이고, 그러지 못하는 나라는 국제 경쟁에서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옛날식 5 개년 계획을 부활시킬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지금도 기획재정부가 매년‘경제운영방향’을 발표하고, 국무총리실이 심사분석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과연 명실상부한
기능을 발휘하는지는 의문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봉투정치 여 야 모두 기업서 정치자금 조달 朴대통령 사적 용도로 쓰지 않아 정치인 - 퇴역 장성 등에 봉투 돌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그분에 대한 악의적인 풍설이 나돌았다. 심지어 그가 스위스 은행에 몇 백만 달러의 비자금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퍼뜨리는 정치인들을 볼 때, 나는 서글프기만 했다. 그분이 정치자금을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기의 사적 목적을 위해, 돈을 거두거나 쓰는 것을 나는 보지도 못했고, 들은 적도 없다. 그분의 국장(國葬)이 끝나자, 유족들은 초라한 서울 중구 신당동의 옛집으로 돌아갔고, 지금까지 박 대통령이 축재(蓄財)를 했다는 흔적은 누구도 찾지 못했다. 재무부에 돌아와서 참모들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장관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통관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으나 불법은 아니었고, 내일이면 해당 기업 관계자가 그분을 찾아가서 손을 쓸 것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다음 국회에 나갔을 때에는 별말이 없었다. 부정부패를 소리 높게 규탄한 야당 지도자도 정치자금 조달을 위해 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나도 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박 대통령 이후의 대통령들의 불미스러운 사건들은 논외로 하고, 박 대통령 식
봉투 정치가 사라진 것은 민주화적 발전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박 대통령의 봉투정치가 국회가 돌아가는 윤활유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은 그것이 옳은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자기의 직무수행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대통령이나 야당 지도자나, 그리고 그 밑의 장관이나 모두 별 수가 없어 현실과 타협하고 지낸 셈이다. 가령 그 당시에
한사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치인이 있었다 하자, 만약 그가 국가 경영의 대임을 맡았다면, 이승만 대통령이 개탄했던‘하늘 아래 둘도 없는 국회’를 어떻게 요리해서 국정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을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말은 옳지만, 다른 방법이 없을 경우 가치 있는 목적을 포기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도 있다. 여기에서 도덕가와 경세가(經世家)의 길이 갈리는 것 같다. 하여튼 부정부패를 없애는 것은
아직도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 있다. 개발시대의 엘리트들 브리핑 활성화로 업무 핵심 보고, 해외연수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견문을 넓혀, 엘리트들의 헌신이 경제개발을 이끌어 지금 와서 회고해 보면, 나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나의 휘하에는 언제나 유능한 인재가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 기록을 보면 재무부, 경제기획원에서 나와 함께 일하던 공무원 중, 경제부총리 혹은 재무부 장관으로 등용된 사람이
올해 3 월까지 17 명이다. 이는 양 부처 역대 장관 총수인 32 명의 53% 에 해당한다. 이 밖에 총리로 임명된 사람도 있고, 정계에 진출해 활약하고 있는 후배도 적지 않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에는 개발시대의 엘리트가 모여 있었다. 그들의 탁월한 능력과 헌신적 노력이 없었다면, 당시 나의 경제정책 형성과 집행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국무총리로 정부에 복귀 전두환 국보위원장“만나자” = 다음에 계속됩니다 =
-- 안동 촌노 --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소음 없이 실내를 쾌적하게 만드는 환풍기로 변신하는 마술
게시물 삭제요청방법
Copyright(c) www.nongak.net
tapng97@hanmail.net
연락처 : 010-4696-7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