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이면 모두 읽어야 할 필독서[必讀書]
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나, 박정희 시대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현장에서 다 같이 힘들게 조국근대화를 이루신, 육 십 대 이상의 조국근대화 세대들은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 통치 철학 연구소 소장이신, 김세영 선생님이 사실적으로 가감[加減]없이 진실 되게 기록하신 현대사인,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끄신 정치철학과 5,16 혁명으로 민족중흥을 성취[成就]하신,
박 정희 대통령님의 업적에 대한 평가의 글을 봐 주시길 부탁 올립니다. 이글은 앞으로 저가 수십 회에 걸쳐서, 여기 논장에 올릴 것입니다. 여기 기록되는 글은, 김세영 선생님께서 직접 장기영 총리의 재경부에서 근무하시면서 쓰신 글이고,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도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단 한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기술[記述]합니다. 다만 한자어가 많이 쓰여 져서, 저가 알기 쉽도록 한글로 번역을 하면서, 오타가 있는 글은 저가 수정과 교정을 하였음을 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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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대학을 다니고 있어 그곳에 들렀다. 오찬을 들고 있을 때, 아들이 헐레벌떡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뉴스를 가지고 왔다. 무슨 영문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주일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서울의 신문을 모아 도쿄(東京) 하네다 공항으로 나오라고 부탁했다. 비행기 안에서 기사를 읽고 서울에 도착해 곧바로 청와대 빈소로 달려갔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것이다. 나라를 위해 한 몸을 던졌던 지도자가
결단의 시기를 놓치고 만 것이다. 한 시대가 끝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민주주의 경제개발 - 자주국방 토대 없이 민주화는 불가능하다고 믿어 “지식인 - 학생들 이해 못해 답 답” 일부 지식인은 박정희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몰각하고 독재를 자행한 사람이라고 매도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이 점에 관련해서 생각나는 일이 있다. 새마을 운동은 민주주의 도량이 되게 하라! “몇 달이 아니라,
몇 년이 걸리더라도 공무원이 간섭하지 말고 주민들 스스로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도량이 되게 하는 데에 새마을사업의 뜻이 있지 않은가?” 박 대통령이 당시의 정당정치에 혐오를 느끼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분은 나와의 대화에서 “그놈의 정치”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박 대통령의 연설에는‘조국 근대화’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근대화라고 하면 당연히 경제개발과 함께
민주주의의 개념이 포함돼야 할 것인데, 박 대통령은 경제개발과 자주국방을 국가경영의 2 대 목표로 내세웠다. 정치적 민주화는 경제개발과 자주국방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관념적으로 민주화를 앞세우는 지식인들을 좋게 보지 않았다. 내가 재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직후 대통령을 만났을 때, 필자가 미국에서 공부했고, 교수 출신인 점을 인식해서인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민주주의는 우리의 이상[理想]이지만, 지금은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밥을 먹여 주고 나라를 지켜 줄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배고픔과 북쪽의 무력 도발에 대비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인데 지식인과 학생들은 왜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박 대통령은 중남미의 많은 개발도상국이 정치적 불안과
빈곤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정치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경제개발을 일관적으로 추진할 수 없고, 경제개발이 되지 않기 때문에 빈곤에서 탈출할 수 없고, 또 이로 인해 정치 불안이 계속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는데 우리의 사정도 그와 같다고 그는 보았다. 그래서 그는 정치권을 강력히 통제했고, 그것이 잘못이라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하고 맞섰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박대통령을 권위주의라고 평가한다.
국내에서는 박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공격하지만, 외국에서는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학자들도 그 당시의 정치 상태를‘권위주의’라 하지‘독재정치’라고 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3 권이 엄연히 분리돼 있었고, 비밀투표에 의한 선거제도가 있었으며, 언론의 거센 비판과 학생들의 데모가 끊이지 않는 나라의 정치 상태를 스탈린이나, 김일성 독재정치와 같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 42> 박정희 대통령과 권위주의
권력형 부패 - 집단 이기주의 만연 80 년대 이후, 정치-경제적 난맥상 이전에 그랬다면, 한국의 운명은 … 권위주의로 말한다면, 박정희 정권 이후의 지도자들 또한 권위주의에서 완전히 탈피했다고 할 수는 없다. 권위주의는 한국 역사와 문화적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제 2 차 세계대전 이후, 역사상 처음으로 서방에서 민주제도를 도입했지만, 우리의 문화는 그 제도를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을 만큼
성숙돼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서구의 민주주의는 600 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미국의 민주주의도 200 년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국민들의 암묵적지지,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국가 운영에 있어서 권위주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그에 관한 언행에 있어서, 박 대통령과 그 후의 대통령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박 대통령은 처음부터, 국민에게 민주주의를 내세우지 않았고,
오직 경제개발과 국가안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러한 정직함이 있었기에, 그의 파란 많은 정치 역정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으로부터 암묵적(暗黙的) 지지를 얻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치는 내가 막을 것이니, 임자들은 경제개발에만 전념하시오.” 이는 박 대통령이 경제 각료[經濟閣僚]들과의 술자리에서 종종 하는 말이었다. 정치는 내가 막을 것이니, 임자들은 경제개발에 전념하시요,!
그랬기에 정치는 파란만장의 풍파를 겪으면서도, 행정면에서는 안정이 유지됐고, 경제 관료들은 대통령의 개발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었다. 결국 정치적 불안정과 행정적 안정이라는 기묘한 배합 하에서, 1970 년대의 고도성장이 이뤄졌던 것이다. 이에 반해, 박 대통령 이후의 지도자들은 모든 주장을 민주주의로 포장했고‘군사독재’를 타도하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처럼 떠들어댔다.
그러 나‘문민정부‘국민의 정부‘참여정부’가 집권을 해도, 대통령 주변의 권력형 부정부패가 국민을 놀라게 했고, 집단적 이기주의가 판을 쳤다. 노사분규가 극심하고, 법치주의가 무력화됐으며, 반정부 데모가 일어나고 반체제운동도 여전했다. 정치권의 이전투구(泥田鬪狗) 양상도 달라진 것이 없다. 이러한 현상들을 민주화의 진통이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가령 지금의 난맥상을 1960, 70 년대에 그대로 옮겨 놓는다면,
과연 경제개발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초청자의 요청대로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과 인도와의 경제협력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연설이 끝나고 질문을 받을 차례가 되자,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일어나서“왜 당신은 당신 나라의 정치 상태를 이야기하지 않느냐”고, 항의조로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1960, 70 년대의 한국 정치는 민주주의로 가기 위한 경제적 기초를 닦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하고, 말미에서, = 다음에 계속됩니다 =
-- 안동 촌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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