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이면 모두 읽어야 할 필독서[必讀書]
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나, 박정희 시대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현장에서 다 같이 힘들게 조국근대화를 이루신, 육 십 대 이상의 조국근대화 세대들은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 통치 철학 연구소 소장이신, 김세영 선생님이 사실적으로 가감[加減]없이 진실 되게 기록하신 현대사인,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끄신 정치철학과 5,16 혁명으로 민족중흥을 성취[成就]하신,
박 정희 대통령님의 업적에 대한 평가의 글을 봐 주시길 부탁 올립니다. 이글은 앞으로 저가 수십 회에 걸쳐서, 여기 논장에 올릴 것입니다. 여기 기록되는 글은, 김세영 선생님께서 직접 장기영 총리의 재경부에서 근무하시면서 쓰신 글이고,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도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단 한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기술[記述]합니다. 다만 한자어가 많이 쓰여 져서, 저가 알기 쉽도록 한글로 번역을 하면서, 오타가 있는 글은 저가 수정과 교정을 하였음을 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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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경제는 하루아침에 성공할수도 없고
망하는 것은 순간적이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고, 부정적인 측면도 580 억 달러 한도설정 12 월 이후 I M F 의 강도 높은 외환위기 수습책이 시행됐다. I M F 는 자기 자금으로 210 억 달러를 염출하는 동시에 IBRD 및 아시아개발은행(ADB), 한국의 우방국과 교섭해 총액 580 억 달러의 융자한도를 설정해 주었고, 210 억 달러에 달하는 민간은행의 단기부채 상환기간을 재조정하는 채권단 회의를 주선해 줬다. 그 결과 가용 외환보유액이 453억 달러로 증가했다.
전체 대외 채무 중,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1997 년 12 월의 44% 에서 약 25% 로 낮아졌고, 수입 수요의 격감으로 국제수지가 흑자로 전환돼, 대외 지불에 아무런 차질이 없게 된 것은 긍정적 측면으로, I M F 와 IBRD 에 감사한다고 평가했다. 기업도산[企業倒産] 1 만개, 실업[失業] 200 만 명, 그러나 부정적 측면은 매우 심각한 것임을 설명했다. 1998 년 3 월까지 산업생산이 전년 동기 대비 13% 나 하락했고,
물가는 9% 상승했다. 1 만 개 이상의 기업이 도산했고, 살아남은 기업들의 조업률은 60% 대에 불과했다. 실업자가 200 만 명에 달해 사회적 안정을 위협하고 있고, I M F 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의 2 ∼ 3% 에서 ― 1 ∼ 2% 로 하향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경제적 후퇴는 외환위기를 수습하고, 해묵은 숙제인 금융과 기업의 구조개혁을 위해 불가피한 대가라고 볼 수도 있으나 I M F 위기관리 방식이
필요 이상의 대가를 강요하고 있는 것 같다고 토를 달았다. 그러나 외환위기는 한국에 전화위복이 될 것이고, 지난날 미국과 I M F, IBRD 가 한국을 경제원조의 성공 사례로 선전했듯이 한국은 앞으로 민주화와 세계화의 성공 사례로 국제사회에 알려지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연설을 끝냈다. I M F 자체의 문제점 심리적 불안은 유동성 늘리면, 해소 재원 없는 I M F 즉각 대응에 한국은 긴급히 580 억불 I M F 에 구원을 요청했다.
I M F 체제의 거시정책 금리인상 - 부채 율 인하 등, 조치 외환위기를 경제위기로 몰아“IMF 방향 옳지만, 현실 무시”나의 연설과 논문에서 국제 통화기금(I M F) 주도의 거시정책을 비판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먼저 1998 년 1 월,‘이자제한법’을 폐지하고 중앙은행 콜금리를 한때, 40% 까지 인상해 전반적인 금리인상이 뒤따랐다. 일반적으로 부채비율이 높은 한국에서는, 비록 단기간이라 할지라도, 연 20 ∼ 30% 의 금리를 부담하고
살아남을 기업은 많지 않다. 고금리, 자금경색, 환차손의 3 중고(苦)에 허덕이는 기업 일부는 어음 부도 또는 도산으로 몰려갔다. 이로 인해 은행의 부실채권이 늘어나니, 자본비율 충족을 위해 또다시 여신을 조여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됐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은행 전체의 부실채권 비율이 1997 년 5.8% 에서, 1998 년 3 월에는 7.3%, 6 월 말에는 10.2% 로 배가됐다. 끝으로 정부는 재벌에 대해 1999 년말 까지
자본 대비 부채비율을 현재의 평균 400% 이상에서 200%로 낮추라고 요구했다. 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만약 이것을 신주 발행으로 충족한다고 치면, 54 조 원의 증자가 필요한데 이는 당시 상장주식 시가총액의 83.5% 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금융업체와 대기업들이 동시에 신주 발행을 추진한다고 할 때, 당시 증권시장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액수였다. 결국 기업의 인수합병(M&A)으로 갈 수밖에 I M F 체제 2 년을 평가한다.
I M F 대외채무 조정은 높이 평가 고금리 - 고환율 파괴적 조치는 문제 경제회복 원동력은 기업의 생명력. 나는 1999 년 12 월 30 일 서울대 정치학과, 외교학과 동창회 주최 조찬회에서‘국제 통화기금(I M F) 체제 2 년을 평가 한다’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 일이 있다. 동북아로 눈을 돌리자, 2000 년대 들어 동북아 경제 관심 경제포럼 참석하며, 中 발전에 감명 역사 갈등 딛고, 한중일 경제협력을 2000 년 초부터
나는 동북아지역 경제 동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중국이 고도성장을 계속하고 있어 앞으로 한국과의 경제관계가 더욱 밀접해질 뿐 아니라, 한국. 일본. 중국 사이의 상호관계가 복잡해질 것인데, 여기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그러던 차에 하와이 동서 문화[東西文化]센터의 조이제 박사가 운영하는 동북아경제포럼을 알게 됐다. 그의 권유에 따라, 이 포럼에 참가하여 2005 년까지 이사회 멤버로서
경영에 관여하는 동시에 후원자 역할을 했다. 특히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중국과의 수교를 위해 막후에서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92 년의 수교 이전에 서울에서‘한중지적교류위원회’의 첫 모임을 갖게 됐다. 이것도 조 박사가 주선한 결과였다. 한국 측 위원장은 내가 맡고 중국 측 위원장은 중국 국무원의 마훙(馬洪) 씨가 맡았다. 회의에 참석한 중국 위원들은 한국의 경이적인 경제발전의 비법을 알기 위해 왔다며,
수많은 질문을 했고, 한국 측 위원들이 답변을 하면 이를 열심히 메모하는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동북아경제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의 여러 도시를 시찰했는데, 그를 통해 중국의 눈부신 경제 개발에 감명을 받았다. 중국 정부 주도의 개발 방식은 1960, 70년대 한국의 그것과 흡사했다. 이대로 가면 중국이 머지않아 한국 경제를 능가하게 될 것이라고 느꼈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은 장차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나의 주견을 펴낸 것이 바로 2002 년 10 월 삼성 경제연구소가 발간한‘동북아로 눈을 돌리자’라는 책자였다. 이 책자 서문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지금까지 필자는 21 세기 세계의 변화 방향을 세 가지로 요약해 왔다.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가 그것이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는데, 바로 아시아 시대의 도래다.
특히 중국의 경제발전이 세계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가히 충격적이다. 13 억 인구의 거대한 중국이 지금과 같은 빠른 속도로 경제발전을 계속할 때, 장차 세계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중국 대륙 한 귀퉁이에 혹처럼 붙어 있는 한반도는 중국 경제가 기침을 하면, 감기에 걸릴 위치에 있다. 우 리는 지금까지 동해 건너 일본과 태평양 건너 미국을 바라보며 살아왔지만, 이제 서해 건너 중국을 위시하여 = 다음에 계속됩니다 =
-- 안동 촌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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