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부모나 가족에게 무례하게 굴었다는 이유
2. 내 학창시절 따돌림이나 학폭 경험
3. 돈을 빌려주고 못 받은 경우
4. 사기를 당한 경험
5. 연애에서 배신당한 기억
6. 직장에서 승진 경쟁에서 밀린 경우
7. 친구가 내 비밀을 퍼뜨린 경우
8. SNS에서 공개적으로 모욕당한 경우
9. 내 아이를 무시하거나 괴롭힌 경우
10. 단순히 성격이 맞지 않아 자꾸 부딪히는 경우
11. 내 의견을 무시하거나 깎아내린 경우
12.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뺏어간 경우
13. 내 물건을 훔치거나 망가뜨린 경우
14. 약속을 반복적으로 어기는 경우
15. 내 실수를 공개적으로 조롱한 경우
16. 내가 존경하는 사람을 욕한 경우
17. 내 취향이나 신념을 비웃은 경우
18. 내 가족을 무시하거나 모욕한 경우
19. 내 성과를 가로챈 경우
20. 내 앞에서 거짓말을 반복하는 경우
21. 내 도움을 받고도 감사하지 않는 경우
22. 내 말을 왜곡해서 퍼뜨린 경우
23. 내 꿈이나 목표를 비웃은 경우
24. 내 외모나 신체적 특징을 놀린 경우
25. 내 고통을 가볍게 여긴 경우
26. 내 친구와 나를 이간질한 경우
27. 내 취미나 관심사를 하찮게 여긴 경우
28. 내 실수를 일부러 크게 부풀린 경우
29.내 자존심을 건드린 경우
30. 내 앞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깎아내린 경우 여러분~!!
이상 열거한 30가지의 이유와 우리가 이재명과 좌파들을 미워하는 이유와 부합하는 게 있으십니까? 만약 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 감정입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언제든지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엔 그런 개인적 감정은 없을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단지 이재명과 좌파가 경멸스럽고 저주하고 싶은 것은 오로지 정치적 이념. 사상이 상충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위에 나열한 30가지의 이유를 한동훈에게 대입해 보십시다. 과연 그 이유가 부합하는 게 있습니까? 있다면 그것 역시 어디까지나 개인적 감정입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언제든지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엔 그런 개인적 감정은 없을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단지 이재명과 좌파가 경멸스럽고 저주하고 싶은 것처럼 오로지 정치적 이념. 사상이 상충하기 때문입니다. 이상의 문제점을 차근히 돌아봅시다.
혐오의 30가지 조건-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저주하는 이유는 반드시 ‘불공대천의 원수’ 같은 생사를 건 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부모나 가족에게 무례하게 굴었을 때, 학창시절 학폭을 당했을 때, 돈을 빌려주고 못 받았을 때, 연애에서 배신당했을 때, 직장에서 승진 경쟁에서 밀렸을 때 등등, 인간관계 속에서 흔히 발생하는 30가지 이유가 있다. 그러나 정치적 혐오를 분석해 보면, 이 조건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찢명이와 좌파에 대한 혐오-
보수가 찢명이와 좌파를 미워하는 이유는 위의 30가지 조건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그들을 미워하는 것은 개인적 감정이나 사적 원한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정치적 이념과 사상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찢명이와 좌파를 향한 혐오는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 기반의 충돌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이 혐오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한동훈에 대한 공격-
그렇다면 같은 보수 진영 내부에서 한동훈이 욕을 먹는 이유는 무엇인가. 위의 30가지 조건을 대입해 보아도 특별히 부합하는 것은 없다. 그 역시 개인적 감정이나 사적 원한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의 차이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적과 잠재적 아군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정치적 입장이 조금만 달라져도 곧바로 ‘원수’처럼 취급하는 보수의 습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보수와 좌파의 차이-
좌파·빨갱이 진영은 내부 차이가 있어도 상대적으로 덜 갈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갈등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보수처럼 정치적 입장 차이를 곧바로 혐오로 연결하지는 않는다. 반면 보수는 내부 분열이 잦고, 정치적 입장 차이를 곧 원수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보수 정치의 구조적 약점이며, 스스로를 소모시키는 방식이다.
혐오를 넘어 다양성으로-
앞서 나열한 30가지 혐오 조건은 인간관계에서 흔히 나타나는 원한의 이유들이다. 그러나 정치적 혐오는 그와는 다른 차원에서 발생한다. 찢명이와 좌파를 미워하는 이유는 오직 정치적 이념 때문이고, 한동훈이 욕을 먹는 이유 또한 정치적 입장 차이 때문이다. 문제는 보수 내부가 이러한 차이를 곧바로 혐오로 연결한다는 점이다.
정치 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내부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정치적 입장 차이를 곧바로 원수처럼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혐오의 조건을 넘어,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보수는 스스로를 갈라먹는 악순환 속에서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결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나는 여러 게시판 특히 이곳 페북에서 정치적 썰을 풀어낼 때 항상 강조해 왔다. 누구를 지지하더라도 절대 ‘빠’가 되지 말라는 경험적 경고였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빠’가 되는 순간, 그 인물의 오류·비리·파행을 지적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러한 잘못을 감싸주기에 바쁘다. 이런 행태야말로 민주주의를 파행으로 몰고 가는 가장 위험한 습성이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비판적 지지’를 해 왔다. 여기서 비판이란 단순히 잘못을 질타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잘못을 더 이상 반복하지 말라는 충고와 조언의 의미다. 민주주의는 비판을 통해 성숙하고, 지지는 비판을 통해 건강해지는 것이다.
특히 나 역시 한동훈을 배신자로 몰아세우며 온갖 욕과 저주를 퍼부은 글이 이곳 페북에 수십, 아니 백 꼭지도 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바로 그 한동훈만이 배신의 근본이 된 윤석열을 살릴 수 있고, 동시에 찢명이 정권을 견제. 타도하여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서 보수의 정권 재창출을 이끌 수 있는 유력한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옹호하는 자세로 바꾸었다. 이는 단순한 ‘빠’가 아니라, 정치적 현실을 직시한 비판적 지지의 전환이었다.
누구든 정치적 지지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비판적이어야 한다. ‘빠’가 되어 맹목적으로 감싸는 순간, 민주주의는 파행으로 치닫는다. 보수 내부의 분열 또한 바로 이 ‘빠’적 태도에서 비롯된다. 적과 잠재적 아군을 구분하지 못하고, 정치적 입장 차이를 곧바로 원수처럼 취급하는 습성이 보수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를 지지하더라도, 그 지지가 언제든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 건강한 지지여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살리고, 보수의 미래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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