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일어났던 일들을 잊어버린다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억을 변화시켜 버리는 경향이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완전히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실제로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일어난 것처럼 믿어버린다. 과거의 경험들을 뒤죽박죽 섞어서 기억하는 경향도 이와 무관치 않다. 어떤 사람의 말을 다른 사람의 말로 착각하거나, 시간이나 장소를 다르게 기억하기도 한다. 그래서 암시적이거나 유도적인 질문을 받으면 기억이 왜곡되기도 한다. 최근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제주4・3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본질 보다 현상들이 굽은 그림자로 난무하면서 질곡의 역사로 복사되고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E・H Carr)는 '역사이론서' 혹은 '역사철학서'라 할 수 있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역사가의 주된 임무는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것만이 아니라 '있었던 일'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일이지만,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도 역사가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역사가는 그가 속한 시대와 사회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기준도 그 당대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 즉 역사가의 관점은 그 시대의 정치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정치는 통제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이기 때문에 그 성격 규정은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제주4・3사건을 논할 때 가장 핵심적인 출발점은 바로 이 사건의 성격이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재판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거사는 개인적인 사감이 아니라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결행한 것이다" 만약 '한국독립' '동양평화' '독립전쟁'이라는 성격을 빼버린다면 그것은 단순한 테러나 살인사건에 불과하다. 제주 4・3사건 역시 그 성격규명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만큼 4・3사건에 대한 성격 규명은 중요하고 바르게 인식되어야 할 출발점인 것이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트라우마, 반목과 분열의 씨앗 중심에 있는 제주4·3사건 해법의 첫 단추는 팩트에 충실한 성격 규정이다. 그래야 본질에 대한 실체적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 대한 성격 규정을 강조한 이유도 억울한 죽음과 이 사건의 실체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예컨대 민중항쟁론에 입각하여 “항쟁하다 죽었으니 억울하다”면 역설적으로 반(反)대한민국 편에 섰음을 자인하는 꼴이 아닌가? 그 연장선에서 보면 역사적인 해원의 포커스도 폭동 주동자들을 배제하고 과잉진압의 주체와 억울하게 희생된 도민들과의 화해라는 관점에 맞추어져야 마땅하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의 뱃고동을 울렸다. 박 정부는 대선과정에서 제주도민에게 '제주지역 6대 공약 사항'을 약속한 바 있다.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 관광허브 육성,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건설사업(제주해군기지) 지원사업, 청정 제주지역 농축수산물 집중육성(말 산업 특화단지 조성), 액화천연가스 공급망 구축, 제주감귤의 명품 산업화, 제주4・3사건 문제해결 등이 그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도 원하게 만드는 과정이 정치라면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설득력이 생긴다. 제주도민 16만6184표(득표율 50.46%) 지지자의 표심과 제주4・3사건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
결국, 진단이 정확해야 바른 처방을 기대할 수 있다. 제주4・3사건은 가슴 아픈 제주인의 엘레지이지만 그렇다고 본질까지 왜곡해서는 안된다. 새 정부의 제주4・3사건에 대한 보따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성격 규정이 우선되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 "제주4・3은 현대사의 비극이며 많은 분들이 희생을 당한 안타까운 역사"라며 "다시는 이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보다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는 존재의 기록이다. 박근혜 정부의 4・3 접근법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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