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로 드디어 필생(畢生)의 사업을 끝냈다. 필생(畢生), 너무 거창했나? 요즘은 잘 안 쓰는 단어지만, 어쨌든 인간이 살아있는 평생 동안을 두고 이름이다. 다르게는 생명의 마지막까지 힘을 다 하는 것.
늘 찜찜했다. 같은 문중(門中)이라도 벼슬살이를 하거나 또는 더 직위가 높은 벼슬살이를 한 조상을 둔 집안은 죽어 저 세상엘 가더라도 별도로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세우고 심지어 호화 묘지를 만들어 철철이 때만 되면 제사 또는 성묘를 하며 벅적지근한 행사를 하지만, 한미한 집안은 성묘는커녕 벌초도 제대로 하지 않아 망자의 묘가 어디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조부(高祖父)께서 일찍이 상처를 하셨고 재취(再娶)를 하셨는데 그 할머니의 직계손이 지금의 나다. 매년 문중의 시제도 그러하지만 갈 때마다 위세 당당한 양반들 때문에 서자(庶子)취급을 받았고 더 한 것은 위대 어르신들의 유택(幽宅)이 망망대해의 섬처럼 뚝뚝 떨어져 계시니 성묘할 때마다 보통 불편한 게 아니다. 솔직히 얘기하면 찾는 분만 찾아뵈었다.
이거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윗분들 살아계시고 언감생심 아뢰거나 낄 군번이 아닌 관계로 세월만 죽여 오다가 이 나이 먹으니 점점 더 절박한 생각이 든다. 하여 문중에 가장 어르신인 당숙(堂叔)한 분이 95세로 생존해 계심으로 찾아뵙고 여차여차 약시약시 조상님의 유택을 한 곳으로 모시고 가족 묘지를 조성하겠다고 아뢰니 의외로 당숙께서 화끈하게 허락을 하신다.
다음 비슷한 서열의 형제들을(10여 명이 되건만...)찾아서 역시 내게 이만저만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동참을 좀 하자고 얘기를 꺼내자 하나 같이 손사래를 흔든다. 물론 모든 경비는 내가 댈 터이니 참석만 좀 해 달라고 했지만 한 놈(개 중엔 형님뻘도 둘이나 있지만...)도 이런저런 핑계로 불참을 통보한다. 그렇다면‘내 추진하는 일 뒷말 없기...’라는 단서를 붙이고 일을 추진해 나왔는데, 그나마 某대학에서 보따리 강사를 하는 재종(再從) 즉, 6촌 동생(이 동생은 별로 윤택하지 않고 그러지 말래도 조상님에 대한 예(禮)인데 내 혼자만의 부담이 너무 크다며 자신도 선뜻 기백만 원을 희사했다.) 하나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지난 일주일 간 대공사(?)의 마무리를 지었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새벽같이 일어나 게시판 몇 곳에 썰을 풀어 놓고 아침 일찍 목욕재계하고 왕복600여리를(우리 사돈어른께선 호부 350리를 다녀오셨다고 글을 올리셨지만...)일주일 동안 운전을 하고 다녔으니 심신이 피로했지만 드디어 그 끝을 그제 마무리 지은 것이다.
난 지금 종교를 믿지 않는다. 한 때 某교회를 열심히 다니며(부부동반) 여러 가지를 간구(懇求)했지만 어느 것 하나 이루어지는 것은 고사하고 어느 날인가는 제사를 모신다는 얘기 끝에 우상(偶像)숭배라는 담임목사와의 언쟁이 있은 후(이 점은 명색 목사라는 내 형님과도 갈등이 심했다) 담배 끊듯 교회도 끊었다. 그 후로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을 하느님은 입으로만 모시고 진심으로 모실 분은 조상님과 너희 부모인 나와 네 엄마를 잘 모시라고 전도를 한 결과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조상(祖上)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게 과연 우상(偶像) 숭배일까? 주위를 둘러보지만, 종교(특히 개신교)를 맹신하고 하느님만 찾은 내 친. 인척 중에 단 하나라도 성공한 삶을 산 사람이 없다. 심지어 내 누이는 광신도가 되어 위암이라는 위중한 병에 걸리고도 하느님께 기도로 낫겠다며 미련을 떨다 사망의 골짜기로 떨어졌다. 나머지 형제 4촌 6촌 등 한마당에 난다는 대소가의 형제자매들 모두 믿음이 신실하다고 정평이 나 있지만 하나같이 곤고(困苦)하기만 하다.
종교를 갖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종교를 가지더라도 조상(祖上) 모시는 것을 우상(偶像)에게 경배한다는 그런 종교는 없어졌으면 한다. 그 어떤 종교 보다 가장 효험(?) 있는 종교는 조상교(祖上敎)만 한 게 없다. 조상도 제대로 안 모시며 하느님이나 예수님 부처님을 모신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고 언어도단(言語道斷)인 것이다.


원래 이자리가 증조부님 유택(幽宅)이다.


증조부님께 간절히 아뢴 후 그 유택을 허물고 다세대 공동 주택고조모님 그리고 종조부님 . 조부모님 직계 손...뿔뿔이 헡어져 계시는 모든 분들을 이쪽으로 모셔서 합장을 했다.

고조부님은 잘 난 양반들이(정실 쬭에서) 다른 곳에 모시고 있어 고조모님만 모셨다. 고조부님의 생몰(生沒)연도가 1805년 生이시니...당시는 순조임금 시대였고 홍경래의 난이 얼마 뒤 일어났을 것이며 다시 얼마 뒤 김삿갓이 나올 때가 아닐까? 아! 검색을 해 보니 내 고조부님이 태 나시고 2년 뒤 김병연 삿갓 선생이 태 나셨다.

증조부모님은 거의 요절 하다시피 저렇게 단명하셨다. 그래도 다행히 3남매를 두셨고 그 후손이 이렇게 살아 남았다.

기왕 다가구 주택 만드는 거... 나와 마누라 집도 미리 만들어 두었다. 첨엔 부모님 바로 옆에 방을 마련할까? 생각했는데 자라며 하도 얻어 맞아 저승에까지 가서도 또 패실 거 같아 하단 맨 끝(우측)에 부모님 모시고 맨 끝 좌측에 우리 부부 꺼 임.^^ 이번 거사(?)를 치루며 그 정도의 선택권은 내게 있기 때문에.....
덧붙임,
증조부모님 유택 하나를 헐어 내니 10기 아래 20여 기는 더 쓸 공간이 생겼다.
그 아래로 또 수 십 기 즉 몇 백년은 후손들이 무주택 귀신은 면할 것이다.
이런 식의 평묘 가족묘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