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 잠행을 거듭하던 김무성 의원이 드디어 수면 위로 화려하게 떠올랐다. 친박계의 좌장으로 이명박 정권과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고, 친박계를 떠나 이명박 정권에 귀순하여 친박계와 관계가 소원한 때도 있었으나 결국 박근혜 대통령 탄생의 막후 실력자로 박근혜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간 주변의 눈을 의식한듯 잠행을 하며 대세를 관망하던 김무성의원은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교실”을 열면서 화려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역사교실은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 102명을 포함하여 새누리당내 주요 당직자 20여명 등이 참여하는 역사교실이 아니라 여당 의원총회로 착각하게 할 정도로 김무성의 위상을 대변하고 있다.
경기도지사 김문수, 정몽준 의원과 같이 여권의 차기 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김무성은 당권장악에 있어서 우위를 선점하였다. 김무성은 경쟁자 김문수와 정몽준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부족한 것이 약점이다. 역사교실은 이러한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김무성은 일전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식 주제가로 선정해 유가족과 광주시민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한다”고 밝혀 많은 비판을 받았다. 국가정체성을 근간으로 삼는 여권내 실세로서 해야할 발언은 아니었다. 아마도 이러한 김무성의 발언은 그의 정치적 스승 김영삼 대통령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김대중과 함께 민주팔이로서 가장 많은 이문을 남긴 정치장사꾼 김영삼은 태생적으로 우파적 가치와는 담 쌓은 사람이었고 그러한 정치적 가치가 김무성에게 잔존하고 있어 저와 같은 발언을 서슴지 않고 했던 것이다.
김무성은 김영삼을 만나 정치를 배웠고 출세길을 보장 받는다. 김무성의 부친인 김용주는 1960년대 민주당 원내총무를 맡아 박정희 대통령과는 반대편에 섰던 사람이고, 김영삼과 가깝게 지냈다. 이러한 인연을 단초로 전두환 정권시절 김영삼의 품에 안기게 된다. 젊은 사업가 김무성은 (주)삼동산업을 경영하면서 김영삼의 돈줄이 되어 측근에서 보좌하게 된다.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김무성은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청와대 사정비서관과 내무부 차관으로 중용되며 고속출세를 이어가다 결국 김영삼의 병풍아래 4선 중진으로 성장하여 민주계(YS계)의 좌장이 되었다.
김무성은 2005년 박근혜 당 대표시절 사무총장을 맡으며 박근혜 사람이 됐다. 2007년 당시 이명박 후보를 대 놓고 지지하던 김영삼은 김무성에게 이명박 캠프에 합류할 것을 지시하자 김무성은 “내가 박근혜 캠프에서 나가면 배신자 소리를 듣게 된다. YS 수하가 어디 가서 배신자 소리를 들으면 좋겠느냐”며 박근혜 캠프에 잔류하고 자연스럽게 친박좌장이 되었다.
이명박 정권에 투항하면서 박근혜와 관계가 소원해지고 세종시문제 등으로 박근혜와 틀어지면서 공천문제가 붉어졌다. 김무성은 공천문제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박근혜와 맞섰고 때마침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면치 못하던 상도동계 김덕룡이 신당창당을 준비하면서 김현철과 같이 김무성은 신당창당에 합의하는 등 박근혜와 대치를 하기도 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뛰어들어 새누리당내 최고 실세가 되었다. 김무성은 숱한 갈지자 행보를 이어가며 김영삼으로부터 사사받은 정치술을 유감없이 펼쳤다.
김영삼은 청치판에 있어 얍삽함으로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박근혜가 당권을 장악하자 김영삼은 막후에서 온갖 못된 짓을 도맡아 했다. 김영삼의 사주를 받고 움직이던 친이계는 박근혜에게 대권을 주느니 차라리 당을 폭파하고 탈당하여 신당창당을 계획하기도 했고, 대놓고 대통령을 못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며 떠벌리고 다녔다. 김영삼계의 더러움이 극명하게 드러나던 것이 대선막판 문재인을 지지했던 것이다. 동네방네 떠돌아 다니며 아무견이나 붙어 먹는 유기견과 같은 김영삼계이다.
김무성은 대한민국 정통성을 계승한 박근혜 정권의 최고 실세로 군림하고 있다. 김무성의 오늘을 있게한 것은 대한민국 정통성을 수호하는 세력이다. 따라서 온갖 비열함으로 정치판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김영삼과는 단호하게 결별을 선언해야 할 것이다. 김영삼은 늙고 노욕에 찬 퇴물에 불과하다. 뒤에 앉아 온갖 심술이나 부리는 꼰대에 불과하다. 그런 김영삼과의 결별 없이 우파의 지지는 결단코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우파의 지지 없이 대권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김무성은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교실 첫 강연회에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이석기 사태 같은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 “역사교실에서 역사를 바로잡을 방안을 잘 모색해 좌파와의 역사전쟁을 승리로 종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뒷방 노인네 김영삼과의 관계가 지속되는 한 김무성의 이러한 발언은 위선에 불과한 것이다. 김무성은 정치스승이 김영삼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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