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의 일각(一角)
대한민국 좌익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이석기라는 주사파 하나가 수면 위에 떠올랐다고 해서 그것이 빙산의 전부라고 믿을 사람은 없다는 것. 필자(筆者)는 대한민국 좌익의 뿌리와 그 후손들에 대한 추적에서 이를 확신하고 있었다.
민혁당을 만든 김영환은 북한 체제에 대해 회의를 품고 민혁당을 자기 손으로 해체하였다. 그러나 이 해체를 반대해온 인물들이 살아남아 경기동부연합을 만들었다는 것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내 김일성 일가를 추종하는 주사파가 약 30만에 이른다는 것도 김영환은 추정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김영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바 있다.
“주사파 외에 김일성 노선을 따르는 좌익을 경험한 바 있습니까? 경험한 바 있다면, 그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그러나 김영환은 주사파 외에 다른 좌익들과의 접촉이 없는 듯 했다.
“없을 겁니다.”
그러나 필자(筆者)가 김영환과 만났을 때는, 여순반란사건에서부터 빨치산 토벌 전반에 이르는 자료를 이미 살펴보았고, 그리고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호남과 영남일대에 얼마나 많은 좌익들이 몸을 숨기고 있었는가를 파악하고 있을 때였다. 텔런트 문근영의 조부 류낙진 같은 인물은 백선엽 장군의 토벌작전에서 항복하고 나온 지리산빨치산이었다. 따라서 김영환은 그저 순수하게 나타난 학구적인 주사파였을 뿐이었다. 대한민국의 좌익들은 그 뿌리가 종횡으로 얼마나 엮어져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남로당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필자(筆者)의 고향은 영광군 불갑산에서 가까운 전북 고창이다. 이곳도 빨치산의 피해에서 무사할 수 없었다.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이었다. 영광군 불갑면 불갑산에는 빨치산 전남북 관할 하에 있던 제5지구 불갑지구당이 있었다. 당시 불갑지구당 위원장은 김용우였으며 불갑지구 빨치산사령관은 박정현으로 두 사람은 구빨치 출신이었다.
당시 불갑산에 모인 세력은 함평군당·영광군당·장성군당의 일부, 목포시당 일부, 무안군당 일부, 완도·진도·서나주 그리고 인근 섬 지역 등이었다. 그 당시 불갑산에는 약 2,500명 정도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무장투쟁을 위한 훈련장은 용천사 앞마당에 있었으며 뒷산에는 군량미를 확보해 정미할 수 있는 시설 등을 마련해, 불갑지구대의 생활근거지를 구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변사람들이나 당시 그곳에서 살아나온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다수가 좌익활동가를 추종하는 무장세력들이었으며, 일부는 좌익동조 성향의 민간인들이었다고 한다.
당시 한국정부는 산악지대를 비롯한 전국 각지의 공산주의자들을 소탕하기 위해 1950년 10월2일 경남 삼랑진에서 육군 제11사단을 창설했다. 사단장은 최덕신 준장이었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11사단 20연대는 1950년 10월15일 광주여자중학교에 본부를 두고 예하 1대대는 담양지구 소탕전에, 2대대는 장성과 함평지구 소탕전에, 3대대는 2대대의 일부 중대와 함께 나주지역 토벌작전에 투입됐다. 이와 같은 작전구도로 이른바 대보름작전이 전개됐다.
이 대보름작전 끝에 불갑산 일대의 빨치산들은 거의 소탕되었고, 나머지 세력은 군산을 향해 나아갔다. (이태의 ‘남부군’에서도 그의 여자 친구는 군산으로 간다는 전언을 선요원에게 전한 바 있다.)
필자(筆者)의 고향에도 토벌군이 들이닥쳤다. 11사단 20연대 3대대 6중대 병력이었다. 국군은 마을 사람들을 모두 마을 앞 논으로 모아 놓았고, 빨치산을 추적 중인 국군에게 피해가 생기면 모두 사살할 것이라는 엄포를 놓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빨치산들은 교전을 포기하고 도망치고 있었고, 우리 조부모님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모두 무사하였다. 그리고 국군은 공음면을 지나 해리 상하, 심원으로 들어갔다.
빨치산 후퇴 시에 학살 대상자로 지목되어 끌려가 고초를 당하시던 아버님의 증언으로는 상당히 많은 수가 군산 방향으로 간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국군의 행적엔 심원까지가 끝이었다. 한때 불갑산 용천사를 중심으로 2만의 동조자가 모여들어, 심지어 인민화폐를 쓸 정도였다는 소문과는 전혀 다른 결과였다. 사살자도 그 규모가 수백명 정도로 작았다. 2500명이라는 무장 빨치산, 또 그 몇 배나 되는 좌익성향의 민간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답은 하나였다. 그들은 정체를 숨기고 민간이나 절로 숨어들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 동네 사람들을 죽창으로 죽이고, 산 채로 생매장까지 시키던 빨치산들. 그리고 좌익성향의 민간인들이 모두 감쪽같이 사라진 그 사실에서 우리는 현재를 분석해 내고 있다.
이석기 배면(背面)에 잠재하고 있는, 범민련 소속 오종렬 같은 빨치산의 후손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를 살펴보면,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석기는 빙산의 일각이다. 이제 우리는 민주당과 좌파로 일컬어지는 그 전부를 대상으로 우리 시대의 적색을 찾아 밝혀야 한다. 우선 이적단체 5개(민자통, 범민련, 연방통추 등)와 이번 이석기 체포동의안에 기권, 반대한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과 그동안 미군철수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치던 종교계와 교육계, 농민단체 등이다.
이석기 사건을 계기로, 이제 다시 군경의 토벌이 시작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 애국세력은 대동단결해야 한다. 그들이 다시 군산으로 도망칠 때까지, 그리하여 어느 순간 흔적을 감출 때까지 토벌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 끝은 참된 대한민국을 건설하고, 세계를 향해 웅비해 나갈 때까지다.
정재학
자유논객연합 부회장, 자유지성300인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자유교원조합 중앙고문, 국가유공자, 데일리저널 편집위원, IPF국제방송 편집위원, US인사이드월드 편집위원, 전추연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