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발간하면서 어이없는 일이 생겼다. 2015년 5월 경 종이책이 나왔다. 요지는 탈북한 사람 중에 조상이 항일 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공산주의자라는 것이다.
바로 최용건이다. 당시는 최용건에 대하여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후손은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했다고 하면서 자료를 모우기 위해 중국에 3번 이상 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던 중 유 씨라는 사람이 있는데 중국동포다.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는데 중국 항일운동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했다고 한다. 이미 간접 된 책도 국내에서 발간한 적이 있다.
최용건의 자손은 유 씨에게 부탁했고 최용건에 관해서도 일정한 분량을 할당해서 원고를 보내왔다. 그런데 금액이 좀 많다 싶었다. 이미 만주항일 파르티잔에 나온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미 작성된 글이고 나머지 추가한 글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최용건이 북한에서 지낸 행적에 대하여는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논리는 전부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북한에서 일한 것은 보여주지 않았다. 소제목에는 (최용건, 진짜배기 독립운동가’가 공산주의자로 둔갑하기까지) 란 것도 있다.
이런 글 때문에 의심없이 책을 만든 나도 한심하기는 마찮가지다.
책을 작년에 만들게 되었다. 지인의 부탁이라 가격도 적당히 했다. 중국동포인 유 씨가 보낸 글이 굉장히 어려웠는데 한국말인데 문체는 중국식이 겹쳐졌고 한문은 간자체를 썼다. 맞춤법은 몇 번을 보아야 했고 알아들을 수 없는 글과 단어가 많았다. 처음 접하는 복잡한 글이었다. 한국어인데 이렇게 어려울 수가 있다니.....외국어가 더욱 쉬울 것이다.
아무튼 글을 읽으면서 최용건의 항일운동에 대하여 인정받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유공자 기준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서 결국은 항일운동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그의 공산주의 활동이 문제가 된 것으로 판단했다.
그 후 1년이 지나서
2016년 6월 8일 세미나에 나갔는데 김일성의 정체성에 관한 것으로 김일성이 가짜 이며 독립운동의 허구에 관한 것이었다. 2시간이 넘었는데 지루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나누어 준 책이 『김일성의 신화와 진실, (김용상 지음, 888페이지)』이라는 책이었다.
나오면서 억세게 두꺼운 책을 척하고 펼쳤는데 최용건이라는 이름이 딱 보였다. 하늘이 나에게 최용건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 번에 최용건이라는 이름이 나오다니.. 최용건에 대하여 쓴 내용은 북한의 2인자 였으며 김일성에 대하여 “일성 동지”라고 반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만이 유일했다는 내용이었다.
머릿속이 띵해졌다.
그럼 내가 거짓으로 만든 것이 다름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주는 돈을 타먹고 각종 혜택을 받으려고 거짓자료를 가지고 나에게 책을 만들어 달라고 한 것으로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최용건에 대하여 조사를 했다. 작년에는 보이지 않던 자료가 1년 사이에 몇 가지가 올라왔다. 집에서도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보았다.
인터넷에서는 최용건은 항일운동을 하면서 일본군에 쫓기자 왕옥환이라는 여자의 침대 밑에 숨는다. 그것을 인연으로 부부가 된다. 왕옥환이 중매를 서는데 김일성에게 김성애를 소개한다. 차안에서 운전사와 경호원을 두고 카섹스를 했다는 이야기다. 이미 본처가 있는데도 말이다. 또한 아마 기록으로 남는 카섹스의 최초 기록이 아닌가 싶다. 이말이 세어 나갔는데 최용건은 그냥 웃기만 했다는 이야기다. 그 시기에 임신을 했다.
기록에 의하면 최용건은 대대장급이고 김일성은 중대장급이었다고 한다. 최용건의 지위는 알만하다. 사진을 보니 중국공산당과 찍은 것이 있는데 주은래도 있었다.
세미나에서 중국에서 항일운동의 족보는 4가지라고 한다. 김구계열, 만족계열, 장계석계열, 중국공산당 계열로 기억한다. 그런데 중국공산당에 끼어서 항일운동을 한 것은 조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중국은 당시 소련의 코민테른의 지시를 받았다. 정확히 말하면 스탈린의 지시를 받고 일했다. 공산주의자를 위해 일한 것이다. 대부분이 북한에 있으면 남침에 굉장한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
화가 부글부글한다.
최용건은 (1900~1976년 9월 19일) 김일성과 같이 남침을 한 사람이다. 원수 칭호로 2인자 역할을 했다. 그는 혁명열사릉에도 남아있다. 북한에는 반신상의 동상이 있다. 워키백과에는 그의 경력이 화려하다 못해 귀가 막힌다. 김일성의 선배이기도 하다. 김일성의 거짓 자서전 ‘세기를 넘어서’에도 최용건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최용건은 1976년 사망할 당시 김일성이 이상한 것 같아서 부인 왕옥환에게 중국에 가서 살라고 했다. 이를 보고 받은 김일성과 김정일은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죽을 때 김일성을 잘 모시라고 했다나,,,,,,,그런데 최용건은 하지 않아서 그렇게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2015년 당시는 기록도 거의없고 북한의 특성상 기록이 많지 않다. 기록을 찾으려면 중국에서 찾아야 한다니 원....
1963년 6월 9일, 북한의 국가지도자가 된 최용건이 중국방문길에 평생의 친구이자 동지였던 주보중과 다시 만나 반갑게 손을 잡고 있다.
이 사진 왼쪽부터 풍중운, 하룡(賀龍, 元帥), 진의(陳毅、元帥), 주은래, 최용건, 이효순, 박성철, 엽검영(葉劍英, 元帥), 섭영진(?榮臻, 元帥), 주보중 순인데, 이때 주보중은 직위가 이 몇몇의 원수들에 비해 높지는 않았으나, 혁명 자력(資歷)면에서는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다.
최용건대성산 혁명열사릉에 있는 최용건의 반신상. 부인 왕옥환은 중국인이다.
나중에 김정일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왕옥환의 묘소에 찾아갔다고 한다.
최용건은 김일성과 남침 준비 및 실행을 한 대표적인 적들이다. 6월 한국전쟁 직후 서울방위사령관에 임명되었다. 대한민국으로서는 적국의 수장이다. 최용건은 원수라는 칭호도 가졌다.
최용건의 자식에 대하여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만약 최용건의 자손이라면 최용건이 혁명열사릉에 있다는 사실, 북한에서 활동한 것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속이려 했다. 유공자로 등록이 되지 않았지만....
필자는 서울 토박이 태생이며 원적이 사대문안이다. 예전에는 사대문 밖에는 촌으로 여겼다고 하니 원래 서울사람이라고 하면 사대문 안만 여겼다. 6.25 때는 우리 양쪽 집안이 북한 놈들 때문에 온갖 고초를 겪고 사망은 물론 끌려가고 행방불명 등 많은 사고를 당했다. 공산주의라면 치가 떨리는 집안이다. 필자 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 밖에 없다. 마약보다 끊기 어려운 욕을 끊었는데. 욕만 나온다. 아무튼 대한민국이 이렇게 좋은 나라다. 북한 같으면 생각도 못한다.
그들이 이런 일을 벌이지 말고 열심히 살기를 바랄뿐이다. 김일성의 친척이 내려와도 받아들이는 나라다. 기회가 있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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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정보에 오류가 있어서 수정했습니다. (처음 글을 쓸 때) 2016년 6월
- 2016년 8월 4일 일부를 수정했습니다. 책명과 저자명을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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