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洙美는 1952년 1월 25일 전남 영암군에서 태어나
1970년 <슬픈연가>로 데뷔하였고
<여고시절>로 문화방송 10대 가요제 가수상,
한국방송공사 10대 가요제 가수상,
동양방송 7대 최고 여자 가수상 4회 연속을 수상하며
70년대 初 최고의 인기가수로 활동했다.
그는 가수 방주연과 라이벌로 거론되며
女性界의 남진, 나훈아로 불리기도 했다.
이수미는 8남매 중 다섯 째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해 神童으로 불렸고
木浦여고 재학 중 전국노래자랑 5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졸업 후 上京하여 1972년
그 유명한 <여고시절>로 화려한 데뷔를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인기와 더불어 災殃이 닥쳐왔다.
인기 절정에 있던 1973년 피서지 여름,
대천해수욕장의 공연에서 그는 怪漢의 습격으로
복부에 큰 부상을 당해 그의 人生이 달라졌다.
그 사건은 眞實과는 달리 스캔들로 번져 많은 억측을 낳기도 했다.
이수미는 犯人을 짧은 머리의 군인 같았다라고 진술하여
당일 해수욕장에 있었던 짧은 머리의 청년 수 백명이
경찰에 연행되어 수사를 받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그 사건의 波長이 갈수록 커지자 이수미는 부담감으로
自害를 인정하는 기자회견을 열게 된다.
스캔들의 상대 주인공은 인기 DJ였던 유부남 李鍾煥이었다.
그녀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悲觀하여 자해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몇 년 후 검찰은 자해가 아닌 피습(被襲)으로 결론을 내렸으나
법인은 끝내 잡지 못하고 미제(未濟)사건으로 남았다.
1974년에 발표한 <내 곁에 있어주>가 히트를 치면서
그 동안의 상처가 아무는 듯했는데 2년 뒤인
1978년 벽두(劈頭)에 몰아친 연예인 대마초파동에 연루되면서
그는 또 한 번의 시련을 겪는다.
이수미는 그 충격들로 失語症에 결려 20여 년의 은둔생활을 했다.
침을 맞는 등 벼라별 치료를 했지만 증세는 뚜렷히 회복되지 않았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교회는 다니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알고 그를 믿으며 의지했다.
그는 1983년부터 교회생활로 마음의 平安을 되찾았고
말문이 열리며 점차 正常으로 돌아왔다.
聖經을 큰소리로 읽으며 발음훈련을 했다고 한다.
가수활동도 再開하여 앨범도 내 놓았다.
하용조 牧師(당시 전도사)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항상 허전했다.
홀로 살아가기에 너무 외로운 것이다.
한 때 영화를 누렸던 인기인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入養을 통해 女中 3학년 보육원생 "배정은"을 만났다.
드디어 그는 엄마가 된 것이다.
정은이와 친해지려고 정성을 쏟은지 일 년만에
드디어 정은이의 입으로 "엄마"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행복은 여기서 끝이 아니고
딸 "정아" 아빠를 만나 百年佳約도 맺었다.
여기에 둘을 맺어 준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지금은 기억도 새로운 '삐삐'였다고 한다.
드디어 정은이가 곱게 성장하여 사위 "정열"을 맞아 들였다.
우연하게도 그들 셋은 정은 정아 정열 등,
다 '정'자가 들어가는 돌림자의 幸運도 얻었다. *
*이것은 秘密입니다.
비밀은 남에게 말하면 안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비밀은 꼭 지켜야 합니다.
굳이 그것을 말하려면
상대에게 비밀을 꼭 지켜달라고 부탁을 하십시오.
作曲家 김영광이 <내 곁에 있어주>를 만들고
방주연에게 곡을 줄테니 어느 여관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방주연이 거절하자 그 곡이 이수미의 차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졌다나?
그 노래가 大히트를 하자
방주연은 화가 나서 이수미를 미워했습니다.
이렇게 감정싸움을 하다가 어느날 드디어
둘은 머리채를 잡고 대판 싸웠다는
아름답지도 못하고 말 하기도 부끄러운 비밀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꼭 지켜야 하는 비밀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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