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族譜)에 대한 애착은 동양의 유교권 국가의 일반적 현상이지만 대체로 우리 국민의 족보에 대한 애착은 유별난 편이다. 화재가 났을 때도 “족보만 들고 피신했다”는 우수갯 말에서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어쨌튼 족보는 그동안 지나친 혈연의식을 조장하는 역기능도 없지 않지만 뿌리를 알고 조상을 되새긴다는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자신들의 이른바 '뿌리와 정체성(Identity) 확인'이라는 사회 현상으로까지 확대되었던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1976년)도 이런 족보찾기 과정에서 나왔다. 대한민국 정통성·정체성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제주4·3사건이 냉철한 시각에서 조명해야 할 이유인 것이다.
4·3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거부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동조하는 정치적 목적 아래 의식화, 조직화된 남로당 세력에 의해 발발된 사건이다. 이는 많은 자료와 증언 내용, 녹취록 등에도 잘 나타나 있다. 오늘날 4·3역사 왜곡의 시발점이 되고 있는 노무현 정부 당시 '제주 4·3사건진상보고서 기획단'(단장 박원순)이 작성하고 '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에서 발행한 '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역시 1994년 발행된 ' 4·3은 말한다'(제민일보 4·3취재반)을 모태로 하여 작성되었다. 이 역시 '이제사 말햄수다'(1989. 4.3. 제주4·3연구소)의 4·3증언자료집 형식을 빌러 작성되었다.
여기에는 4·3당시 3대 폭도사령관 김이봉, 북한인민군사단장 이원옥 등의 행적들이 기록되어 있다. 참고로 1대 폭도사령관 김달삼은 북한정권에서 국기훈장 2급, 2대 사령관 이덕구는 국기훈장 3급을 수여 받고 현재 평양의 애국열사 묘역에 가묘로 안치되어 있다. 남로당제주도당 책임자이며 폭도부대 총사령관이었던 이 두 사람은 대한민국 정부를 괴뢰정부, 적, 원쑤라 칭하고 선전포고문과 친소련, 친북한적 삐라를 살포하는 등 김일성 정권의 노선에 따른 공산통일을 추구하고,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기 위해 5・10선거를 파탄 내려는 목적으로 남한 공산화를 위해 4·3폭동을 일으킨 장본인들이다.
문제는 사실이 이러함에도 3대 폭도사령관 김이봉, 북한인민군사단장 이원옥 등이 희생자로 둔갑되어 봉안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외도 월북한 인민군, 일본 도피자, 월북자 등 대한민국에 항적한 남로당 핵심간부들을 비롯해 심지어 생존자, 자연사한 자, 자살한 자 등 4·3과 무관한 부적격자 다수가 봉안되어 있다. 이른바 불량위패들이다. 이런 문제의 위패들에 대하여 정당한 근거에 의한 철거 요구를 '4·3흔들기'로 매도하고 있는 것이 현재 4.3사건을 주도하는 세력의 입장이며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살고 있는가?
노무현 정부에서 기획된 4·3사건 정부보고서는 반쪽짜리 부실 보고서라는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다. 희생자(14,032명) 가운데 문제의 불량위패는 철거돼야 마땅하다. 사실 불량위패 철거는 법적근거에 의한 정부의 약속 사항이다. 헌법재판소는 2001년 9월 27일, "사건 발발 책임이 있는 남로당제주도당에서 주도적·적극적으로 살인·방화 등에 가담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훼손한 자들을 희생자로 결정해서는 안된다"고 결정했다. 정부도 국무회의에서 4·3추념일을 제정하면서 4·3희생자 중 불량희생자들은 조속한 시일 내에 관계법령에 따라 철저한 재조사 및 검증, 재심사할 것을 결정한 바 있다.
제주4·3은 1948년 4월 3일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기 위해 남로당이 일으킨 무장폭동·반란으로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의 희생을 초래한 사건이다. 관련 증거 자료들은 4·3바로세우기 입장에서 수집된 각종 자료, 증언, 녹취록 뿐만 아니라 좌편향성 '4.3증언자료집'에도 기록되어 있다. 4·3사건은 대한민국 뿌리와 정체성 확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정립(正立)되어야 할 일종의 족보싸움이다. 그 성격상 대한민국 정통성과 직결되어 있어 이런 질문에 대한 자문(自問)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자답(自答)하고 접근해야 한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