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진실의 입’ 하면 생각나는 것 하나는 월리엄 와일러 감독의 영화 '로마의 휴일'이다. 로마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딘 교회 안에는 '진실의 입(La Bocca della Verità)'이라는 둥근 조각이 있다. 모양새가 마치 고대 로마의 분수 장식이거나 하수구 뚜껑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얽힌 전설은 중세부터 내려오고 있다. 이 조각의 입 부분에 뚫린 구멍에 손을 넣고 거짓말을 하면 손을 깨물어 버린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로마의 휴일'에서 '진실의 입'에 손을 넣은 그레고리 펙은 진짜로 손이 잘린 것 처럼 연기해 헵번을 깜짝 놀라게 한다. 헵번에게 미리 알리지 않아서 당시 그녀의 놀란 표정은 연기가 아닌 실제상황이었다고 한다. 실감나는 연기 때문인지 몰라도 ‘진실의 입’ 그 장면은 지금도 많은 영화 팬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여행자들은 저마다 호기심에 다투어 손을 넣어 보지만 ‘진실의 입’은 거짓말쟁이의 손을 깨물지는 않는다.
우리가 진실게임에 호기심을 발동하는 것도 어쩌면 진실이 미궁속에 갇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메두사 형상 진실의 입을 가진 얼굴은 원래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Oceanos)를 형상화한 것이다. 예언의 힘도 가지고 항상 진실만을 말하는 프로테우스(Proteus)도 바다의 노신(老神)이었다. 그러고 보면 생명의 근원인 바다와 진실이 불가분의 끈, 즉 보이지 않는 어떤 실타래 처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 흥미롭다.
신화속 세계에서는 신과 관련한 그럴듯한 이야기가 많다. 바다의 노신 프로테우스는 무엇으로든 몸을 바꿀 수 있는 신이다. 이를테면 손오공처럼 변신의 귀재같은 것이다. 하늘을 나는 모든 것, 땅 위를 기는 모든 것, 바다를 자맥질하는 모든 것, 심지어는 타오르는 불꽃, 흐르는 물, 부는 바람, 피어오르는 연기로 바꿀 수 있고 무엇보다 우주만물의 모든 것들의 '진실의 입'을 열게 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신들도 미궁에 빠질 수 있었을까? 상상이 버무려진 신화의 세계일지라도 미궁은 그 자체일 뿐이다. 신화는 그 의미를 읽으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궁 역시 모험가에게는 신비스럽겠지만 거기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신화는 미궁과 같다고 했을까? 그리스 로마신화는 미궁속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에서 찾아내고 있다.
그리스 로마신화 속에는 구조가 매우 복잡해서 누구라도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가 있다. 그곳엔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os)가 살고 있었다. 그는 밖으로 나갈 길을 찾다가 찾지 못하고 힘이 빠진 사람을 잡아 먹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살아나온 인물이 바로 영웅 테세우스(Theseus)이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가 준 실타래를 들고 미로속으로 들어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빠져 나온다.
미로를 의식, 실을 풀면서 들어가 실을 따라 나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평소 테세우스를 사모했던 크레타(Creta)왕녀 아리아드네(Ariadne)가 준 실타래 덕택이었다. 그 미로가 바로 크레타섬 지배자인 미노타우로스가 만든 미궁이다. 흔히 우리가 미궁속에 빠져버린 실체적인 진실을 논할 때 어김없이 신화의 세계에 들어가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이야기를 끄집어 내 그럴듯하게 연관시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보자. 영화 '로마의 휴일'에 등장하는 ‘보카 델라 베리타스(La Bocca della Verità)’ 광장의 ‘보카’는 입을, ‘베리타스’는 진실을 뜻한다. 이제는 기억의 저 편 추억속에서 만나야 하는 그런 조우도 아쉽다. '진실의 입'에 거짓말쟁이가 손을 넣으면 깨물어 버린다는 전설도 추억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의 진실과 아픈 상처도 세월에 묻혀 이렇게 저렇게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
진실, 우리는 미궁에 빠져버린 진실을 찾기 위하여 테세우스를 기다려야 한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받을 수 있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방해꾼이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끊어놨거나 끊어지게 하고 있다고 해도 포기해서는 안된다. 진실의 입을 열게 하는 마법의 신 프로테우스도 있지 않는가? 비록 진실이 미궁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수 있다 해도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 진실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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