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시골 친척형님 댁에 놀러갔더니 정원에 심어놓은 구상나무가 죽어가고 있다면서 속상해 하고 있었다. 더운 여름에 물을 자주 못 준 탓이거나 아니면 전정을 너무 심하게 한 탓이라며 자책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구상나무가 죽어가는 이유에 관리자의 실책은 중대사유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구상나무의 멸종위기에 대한 경고는 계속되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대 이유는 다름 아닌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온의 상승이다.
구상나무는 소나무과 전나무속으로, 원래 지구 북반부 한대지방이 고향인 고산식물이다. 빙하기 때 빙하의 남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빙하기가 물러가자 고지대에 서식하던 전나무속 수종이 미처 물러가지 못하고 고지대에 고립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구상나무는 한동안 분비나무와 혼동되어 오다가 1917년 한국을 방문한 영국의 식물학자 헨리 윌슨이 한반도의 구상나무가 다른 곳에 존재하는 분비나무와는 전혀 다른 종이라는 것을 밝혀내고, 구상나무라 명명했다. 구상나무의 어원은 제주사투리의 ‘쿠살낭’에서 비롯되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는데, 제주사투리의 ‘쿠살’은 성게를 가리키는 말로서 구상나무의 잎이 흡사 성게 가시처럼 생긴 것이라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구상나무는 지구상에서 한반도 남부에서만 유일하게 자생하는 나무인 것이다. 구상나무는 그 대부분이 한반도 남부에서도 한라산에 서식하고 있고, 한라산에서도 해발 1500m와 1800m 사이에서 집중적으로 자라고 있다. 기후 변화에 따른 고산식물의 위험성을 측정한 연구에서는 구상나무가 위험 2등급으로 발표되었었다.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할수록 고산식물은 고지대로 이동할 것이고 결국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을 때 멸종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한라산 등반을 할 때는 구상나무가 죽어 고사목이 되어버린, 헐벗은 가지를 웅장하게 벌리고 서있는 구상나무 숲을 구경하는 것도 아름다운 한라산 풍광을 즐기는 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고사목이 단순하게 기후나 병으로 고사한 게 아니고 멸종의 과정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들의 무지가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구상나무는 죽어서도 죽지 않는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말에 걸맞게 죽어서도 하얀 뼈다귀처럼 풍우에 버티고 서서 세월을 이겨낸다. 구상나무가 죽어 고사목이 되어서도 그 기품을 잃지 않고 오래도록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구상나무가 가진 또 다른 매력이다.
제주 전통 배였던 덕판배는 구상나무로 만들었었다고 한다. 구상나무가 가볍고 단단하기에 부력이 좋고, 주변국들과의 해상 전투에서는 적선을 단단한 덕판배로 들이받는 전투를 했었기에 탐라국의 덕판배는 주변국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니, 구상나무는 해상강국 탐라의 밑거름이 되었던 셈이고, 예로부터 구상나무는 제주인들 과는 끊으려야 끊을 수없는 밀접한 관계로 동반자적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러던 구상나무가 이제 떠나려 하는 모양이다. 외국으로 반출된 구상나무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품종 개량되어 외국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하는데 정작 구상나무의 고향인 제주에서는 그 구상나무가 서서히 소멸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하니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싸해져온다.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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