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모르는 것이 약이 될 수도 있다.
이미 한 달 전에 발생한 일이지만, 이 재 명 이가 오래도록 데리고 있던 최 측근 중에 한 사람이고 이 재 명 이가 성남 시장을 할 적부터 비서 실장을 지냈던 사람이 의문 모를 자살을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남긴 유서가 무려 에이 포 용지 일곱 장이나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유서를 우리 국민들은 전혀 본 적이 없고 언론에 사실적으로 밝혀진 적도 없다. 말인 즉, 경찰들이 그 유서를 처음에 발견해서 보관하고 있다가 유족에게 전해 주었다는 얘기와 그 유서의 일부분에 내용들만 언론에 그렇더란 내용으로 회자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죽은 후, 며칠 후에 이 재 명은 뜬금없이 자기 부모님의 묘소에 어떤 사람들인지 무덤 몇 군데를 파헤치고 이상한 돌에 다가 그 당시로는 돌에 쓰여 진 글의 내용이 생명 살[生明殺]이었다고 하면서, 이 재 명 자기를 죽이기 위한 흑 주술을 누가 한 것처럼 자기의 블로그에 올려놓았고, 더불어 민주당의 당 대변인조차 그것을 사실인 양 보도를 했고, 경찰에게는 철저하게 수사를 해서 범인을 색출하라고 야단 벙 거지를 쳤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 이곳 논 장에 글을 올리길,
이것은 무속 인이나 풍수 지리를 연구한 사람들도 아닐 것이고, 이 재 명 이가 스스로 벌인 자작극으로 보여 진다. 자기의 최 측근인 비서 실장의 죽음을 언론을 통해 물 타기 하는 수법일 뿐이라고 했다. 나의 그 얘기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 어제 동아 일보 톱 기사에 발표된 내용을 보니 전라도 강진에 살고 있는 85 세의 청자 기능 보유자인 이 재 명의 경주 이 씨 친척 중에 한 사람이 문중의 몇 사람과 공모하여 이 재 명 조상의 묘에 기를 불어 넣기 위해서 이 재 명이 모르게 자기들만이 작업을 했다고 하는데, 참으로 기가 찰 어불성설이다.
설 혹 이 재 명의 조상 묘에 기가 빠졌다면, 당사자인 이 재 명에게 사실적으로 얘기를 하고 그런 법 술이 있으니 한번 해 볼 것인가 하고, 물은 다음에 기[氣]를 넣던 생[生]을 넣던 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인데, 조상 묘의 당사자인 이 재 명 이도 모르게 그런 큰 일을 했다는 것은 도저히 나로서는 납득이 되 질 않는다는 것이다. 나 역 시도 불 알이 빨갈 때부터 풍수 지리를 어깨 너머로 배우고 수많은 풍수 지리 책과 비 술과 법 술 비 보 등을 배웠지만, 그 어디에도 이번과 같은 내용의 비 술은 나와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사람을 묻은 무덤은 함부로 훼손하는 법도 없고 산 짐승들이 무덤을 훼손해도 날을 받아서 산재를 올리고 산 신[山神]과 지신[地神]과 무덤 주인에게 제사를 올린 다음에 원 상태로 복원하는 것이 조상 님에 대한 효 인 것이다. 그런데 자기들이 자기 조상들의 묘를 파헤쳐서 이상한 주술의 글을 쓴 다음 묻어 놓고서 그것이 상대방이 자기를 죽이기 위한 흉 매[凶埋]니, 흑 주술[黑呪術]이니 하는 얼 토 당 토 않은 소릴 짓거리는 것을 보니 참으로 요살스럽다. 예부터 법 술이니 비 보니 하는 것은 전해져 오고 있지만,
남을 해하는 흑 주술 인가는 나 역시 역학을 60 년 넘게 배우고 있지만, 처음 들어보는 얘기다. 옛날에 우리가 어릴 적에 이런 일은 있었다. 가을 문중 시제 때는 각 문중들이 다투어서 조 상 님 산소에 벌 초를 하고 날을 받아서 시제를 올리는데, 떡과 과일 어물 같은 것을 소 달 구 지에 싣고 다니면서 시제를 올리면서 각 문중의 기세[氣勢]를 자랑 할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만 해도 각 문중의 시조 묘 제사 때는 어린아이들이 베개 까지 업고 가서 가짜 아기가 있는 것처럼 행세를 하면서 소 분[小分]을 받을 적이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밥도 먹지 못하고 죽이나 풀뿌리로 연맹하던 힘든 시절이라 명절 때나, 조 상 님의 봉 제사 때에 쌀밥이나 고기를 먹어보든 힘든 시절이고 어떻게 보면 그것이 우리는 당연한 줄 알았다. 어떤 문중에는 분 복[分復]도 하지 않고 자기들만 나누어 먹는 집안이 있으면, 어린아이들은 칡넝쿨을 묘 잔 등 에다가 묶고서 질질 끄는 흉내를 낸다. 그러면 그것을 자손 중에서 보고서 그 다음 해에는 어린아이들이 소 분을 받으러 가면 융숭하게 잘 대접하여 주는 관습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조상에 대한 예우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관습도 모두 지난 과거사로 남겨지고, 조상 찾고 남의 묘소에 가서 소 분 받는 어린아이들도 없다. 그만큼 먹고 살기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이 재 명의 경주 이 씨 집안은 어째서 자기 조 상 님의 묘까지 파헤쳐서 이상한 돌 에다가 요 상한 글을 써서 복을 구하려 하는 가 ? 나는 안동 김 가 이다. 만약에 나의 집안 중에 이 재 명이 같은 악질 정치인이 정치를 하려 한다면 나의 목숨을 바쳐서 라도 막을 것이다. 경주 이 씨 대 문중의 명예를 실추 시키는 이 재 명 이가 집안 풍수가 까지 모의 작 당 하여
나라를 어지럽히는 이유가 무엇인가 ? 안동 김 씨가 전주 이 씨 들에게 아직 까지 양반 대우를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 왕비를 세 사람이나 내고, 부 원군 세 사람 영의정 우의정 좌의정과 수 없는 금 관자 옥 관자와 60 년의 세도 정치를 했어도 이 씨 왕조에 대하여 역 심을 품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동 김 씨의 그 당시 세 도로 보면 전주 이 씨의 왕조를 들어 없고 얼마던지 역성혁명을 할 수가 있었지만, 우리 안동 김 씨는 역성혁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주 이 씨 들도 이 재 명 이를 집안 족보에서 제명 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더러운 전과가 4 범이고, 형님과 형수에게 몹쓸 욕을 하고 온갖 비리를 저지른 자가 왕이 되려 하는가 ? 양반의 도시 선비의 도시 안동이 본래 고향이 아닌 놈이 안동을 상 놈의 도시로 만드는 이 재 명을 안동 인 들은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