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은 5.18 과외학습으로 15년이 지난 1995년에 광주사태를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격상 특별법을 제정하여 희생당한 시민군을 모두 열사로 만드는 일에 선구자임을 만천하에 공표한다. 그래서 5.18에 관한한 DJ못지않은 훈장을 가슴에 달고 다니며 뽐내는 者다. 그러나 YS를 평가하는 대체적인 시각은 국정 전반에 걸쳐 즉흥적이며 해박하지 못한 지도자로 평점이 주어졌고, 5.18에 관한 조치는 사려 깊지 못한 정치적 편향성에 기인한 것으로 방점을 찍는다.
그 한 예로, 바로 YS는 그 다음해인 1996년 국방장관을 김동진 국방장관을 임명하는데, 이 者는 광주사태 시 진압군(보병제 20사단) 61연대장 출신이다. 이런 엇박자는 역사의 최대 오점임은 물론 YS의 자질에 심대한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는 중요한 팩트가 된다. YS가 광주민주화운동을 승격시키고 반대편에 섰던 계엄군 지휘관을 국방장관에 임명하는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의 인사 단행을, 알고 있는 국민이 많지 않다.
그렇다면 YS는 그런 사실을 몰랐을까? 글세... 하도 어쭙잖은 대통령이었으니 몰랐을 수도 있지만, 알고도 감행했는지 본인이 입을 열지 않으면 또 묻히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5.18관련 단체들은 왜, 침묵했을까? 혹시 모르겠다. YS는 광주의 은혜요, 보은의 대통령이니 알고도 모른 척 눈감을 수 있었을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특별법을 제정하여 그 위상을 더 높힌 대통령에 대한 면죄부가 그리 아깝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인사의 관행이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 중에 또 발생하게 된다. 5.18 당시 진압군 62연대 3대대장이었던 유효일씨를 국방차관을 임명하여 군 과거사 진상규명위원장직을 겸임까지 하도록 한다. 하지만 사정은 달랐다. 반년이 지날 즈음 5.18관련단체에서 그 사실을 알고 격렬하게 성토하기에 이른다. YS정권 때의 국방장관은 무사했고, 노무현 정권 때 국방차관은 마녀사냥에 의해 직을 박탈당하게 된다.
광주의 입장에서 보면 진압군 대대장이 군 과거사 진실규명위원장이라니, 얼토당토않았을 것이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광주민주화운동 규명 운동이라도 벌리는 날엔 다 된 밥에 코 떨어트리는 꼴이 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결국 그들의 압력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굴복하고 국방차관을 중도에 하차시킨다. 두 전직 대통령에의 5.18 역사 인식이나 인사시스템의 허점으로 볼 수도 있고, 나아가 진압군 출신이었지만 이들의 전문성과 역량을 높이 평가하여 임명했을 수 있다. 여기에 5.18관련 단체와 두 전직 대통령의 함수관계는 누군가 풀어야 할 과제요, 묘한 아이러니가 깔려있는 것이다.
그런데, 금년 5.18은 유난히 시끌벅적하다. 2008년 보수논객 지만원씨가 자신의 사이트에 ‘5.18은 김대중이 일으킨 내란사건이라는 1980년 판결에 동의한다’ 고 했으며 ‘북한군이 파견돼 조직적인 작전지휘를 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됐다’ 등의 글을 오려 관련 단체들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된 것이다. 그러나 금년 초 법원은 지만원씨의 무죄를 확정하였다.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아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판결의 요지였다.
이 판결문이 5.18에 역사규명에 잔잔한 바람을 일으킨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금년 5월은 그 어느 때 보다 뜨겁다. 그리고 5.18 관련 단체의 대응도 예사롭지 않다. 5.18정신을 왜곡 선동하는 세력들과 전쟁을 선포하고 고소 고발 등 법적 조치를 이미 감행한 상태다. 나아가 광주 시장까지 나서서 악의적인 댓글을 올린 누리 꾼들 자신 삭제 안하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엄포하는 사태까지 이르렀으니 전쟁은 전쟁인 모양이다.
하지만 5.18 역사를 성역화 하여 묻어 둘 것이 아니다. 풍선효과의 원리와 같이 한 쪽을 누르면 다른 곳으로 불거져 나오게 마련이다. 억압으로 누른다고 될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게 바로 역사라는 준엄한 진실이다. 5.18문제는 긁으면 자꾸 불거져 터져 나오게 되어있는 있는 머피의 법칙과 같은 것이기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