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역에 도착하는 이등방문의 왼쪽 가슴에 두발, 심장에 한발을 명중시킨 안중근 의사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태극기를 꺼내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미 생과 사의 경계를 초월한 초인을 보게 된다.
안중근 의사는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도 일반 살인범으로 취급하지 말고 전쟁 포로로 대할 것을 요구했으며, 재판에 임하면서도 당당한 모습과 논리 있게 답변으로 왜놈을 압도했고 이에 왜놈의 판사의 오금을 저리게 했다. 모진 고문 속에서도 결코 비굴함을 보인적이 없었으며 언제나 의연함을 잃지 않자 간수는 그의 인품에 감복했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왜놈에게 붙잡혀 일본영사관에 억류된다. 모진 고문에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의연함을 잃지 않자, 전봉준 장군의 기상과 인물됨에 매료된 한 왜인이 일본공사에게 살려달라고 청원하도록 설득하였다. 전봉준은 “이때에 와서 어찌 그러한 비열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죽음을 기다린지 오래 되었다”며 거절했다.
재판정에 끌려나온 전봉준 장군은 모진 고문으로 몸조차 가누지 못했다. 그러나 사형판결은 받은 전봉준 장군은 재판정에서 “정도(正道)를 위해 죽는 것은 조금도 원통할 바 없으나 오직 역적의 이름을 받고 죽는 것이 원통하다”며 일갈한다. 대의를 품었던 의인들의 가는 길은 결코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버림으로서 세상에 무엇인가를 남긴다.
5.16 혁명 그 위대한 결단이 한강다리 위에서 저항을 받으며 붕괴될 위기에 놓인다. 박정희 대통령은 혁명을 계획하기 전 머릿속에 2안을 세워 놓았었다. 제2안은 최악의 사태에는 병력을 이끌고 입성하여 저항하는 정부를 상대로 부하들만이라도 살리는 협상을 한다는 것이었다.
최소한 목숨을 걸고 혁명에 동참한 부하는 살리겠다는 의리를 품었다. 한강 다리의 저항에 혁명군은 좀처럼 다리를 건널 수 없게 되자 혁명가 박정희는 자신을 버리기로 결단을 내린다. 총알이 빗발치는 다리 위를 혈혈단신 유유히 건넌다. 흔들리던 혁명군은 박정희 대통령의 대의에 진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러한 박정희 대통령은 대의를 위해 자신을 버렸고, 김재규의 총탄에 생과 사를 넘나들던 순간 동석한 신재순씨는 그 순간을 증언했다. “사건현장에서 총상으로 피를 흘리면서도 ‘나는 괜찮아’라고 한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의연했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이었어요.”라며 그 곁을 지키던 신재순씨가 남긴 말이다.
신재순씨는 김재규에 대해서도 말을 남겼다. 김재규는 이미 총을 맞고 사경을 헤메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 머리에서 50Cm 거리에서 권총을 재 발사한다. 그 순간을 지켜 본 신재순씨는 당시의 김재규에 대해 증언했다. “그 사람의 눈과 마주쳤을 때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의 눈이 아니라 미친 집승의 눈이었어요. 그가 대통령의 머리에 총을 갖다 대었을 때는 다음에는 나를 쏘겠구나 생각하고 후다닥 일어나 실내 화장실로 뛰었습니다. 저의 등 뒤로 총성이 들렸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는 문손잡이를 꼭 쥐고 있었습니다.” 김재규를 회상한 신재순씨의 증언은 오욕으로 눈이 뒤집어진 한 마리의 짐승을 보았을 뿐이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비서실장 김계원도 훗날 김재규의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 아닌 귀신의 얼굴이었다고 증언했다.
혁명을 위한 義가 아니라 욕망에 사로잡힌 殺이었을 뿐이다. 김재규는 최후진술에서 “이혁명은 5.16혁명이나 10월유신에 비해서 그야말로 정정당당합니다”라며 자신을 살리고자 했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라며 반역을 옹호하고자 했다. 그러나 유신의 심장 안에 김재규도 있지 않았는가 말이다.
김재규는 차지철과 권력을 양분했던 유신시대의 핵심권력이었다. YH농성사건에 모두가 만류함에도 강경하게 진압했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긴급조치 9호가 약하다며 10호를 발령하여 달라던 김재규였다. 따라서 유신이 부당하여 혁명을 한 것이라면 유신의 심장으로서 최소한 김재규는 현장에서 자살했어야 옳았다.
김재규의 수행비서였던 대령 박흥주의 신문조서에는 김재규의 오욕이 잘 드러나고 있다. 김재규는 현장에서 30여분전 즉흥적으로 박흥주와 의전과장이었던 박선호에게 반역계획을 알린다.
그 순간을 박흥주는 “본인은 1호차 가방에 둔 독일제 9연발 38구경 권총을 꺼내 7발이 장진돼 있는 것을 확인하고 허리에 찼다. 시간이 좀 있어서 부속실에 들어가 담배를 피우면서 생각하니 너무 뜻밖의 일이었다. 부장의 위치로 보아 나 모르게 이미 계획을 준비해놓고 있다가 오늘 기회가 포착되자 갑자기 거사를 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명령을 내릴 때, 워낙 무서운 얼굴로 해서 나는 아무 말도 묻지 못했다. 각하를 살해하면 변란이 되고, 김재규 세상이 된다. 그가 성공했을 때, 만일 내가 가담하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 것이고, 공을 세우면 출세의 길이 열릴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범행에 가담키로 작정했다.”라고 신문조서를 남겼다.
박흥주는 분명하게 김재규의 세상이 열리게 되면 당할 후환이 두려워 가담했음을 밝히고 있다. 아울러, 김재규는 영문도 모를 정승화 총장과 김정섭 차장을 불러내었다. 반역이 성공하면 그들을 이용하여 군을 장악하려 한 것이고, 실패를 해도 밥 한끼 먹자고 한 것이라 하면 그만이었다.
김재규는 반역현장에서 정승화에게 갈 때, 피 뭍은 셔츠를 입고, 권총을 빼어들고, 맨발로 정신 나간 사람처럼 허둥거렸다. 오욕에 눈이 먼 김재규는 앞, 뒤 살필 형편이 없었고, 정승화와 같이 육군본부 벙커로 가면서, 피 뭍은 셔츠를 가리기 위해 박흥주의 상의를 벗어 달라고 하였다. 혁명의 계획도, 자신을 버릴 용기도 없는 시정잡배의 모습이다.
김재규는 무책임하게 영문도 모르는 정승화와 김정섭, 자신의 수행비서, 의전과장 등 직속부하까지 사지로 밀어 넣었다. 그러함에도 뻔뻔하게 재판 중에 부하의 선처를 바란다는 위선의 가면을 쓴다. 혁명이란 모름지기 자기 자신을 버린다는 것이 전제되는 것이다. 자신의 안위에 연연하는 것은 혁명이 아니라 반역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