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中道)를 가장한 그레이 부류의 특징은 뭘까? 자기 주장에 대한 선택을 해야 할 일부 정치인이나 지식인들 가운데는 이쪽 저쪽 부담없이 할퀴면서도 막상 민감한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면 피해 버린다. 즉 비판은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중간지대에 몸을 감춰 버린다. 냉소주의에 젖어 있는 기회주의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예컨대 “나는 누가 대통령이 되는지에 관심이 없다. 누구든지 먹고사는 일에 걱정을 덜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뭔가 정치적인 이슈에 연결되면 누구보다도 입에 거품을 물고 비판하는데 인색하지 않는다.
일찍이 성철스님은 “중도는 시비선악(是非善惡) 등과 같은 상대적 대립의 양쪽을 버리고 모순, 갈등이 상통하여 융합하는 절대의 경지다”라고 했다. 하지만 소신이 결여되면 가운데 中자(字)가 암시하는 것처럼 자칫 ‘기회주의자들의 도피처’로 오해받을 수 있는 소지도 없지 않다. 중간지대, 흔히 말하는 ‘중도’가 함의하고 있는 태생적 한계다. 마오쩌뚱는 이런 중간지대의 특징을 적극 활용, 통일전선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는 ‘모순의 변증법적 통일 법칙’을 ‘통일전선’ 작전에 적용시켰다. 만물은 모순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른바 마오의 '모순론'이다.
공산주의자들의 기본 전술인 통전, ‘노동자와 빈농들의 당면한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로 하여금 민주주의 혁명운동을 돕고, 노동자와 빈농, 소자산계급으로 하여금 민주주의 연합전선을 세우게 한다’ 이는 중국 공산당에 의해 발표된 최초 통일전선(統一戰線)의 핵심 내용이다. 중공(中共)은 또 ‘강력하고 권력이 있는 적을 타도하기 위해서는 적 내부의 아무리 작은 분열이라도 이것을 용의주도하고도 교묘하게 최대한 이용해서 모든 자본주의 계급사이에 모든 이해관계의 알력(軋轢)을 조장하는데 최대의 노력을 기울려야 한다’고 통일전선을 독려했다.
마오쩌뚱(毛澤東)의 중국 대륙 적화(赤化) 성공에는 여러 요인들이 거론되고 있다. 그 가운데 중국 공산당이 통일전선 운용에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당시 중국은 국제적으로 국민정부(국민당)에 불리한 여론을 조작했고 아울러 마오쩌뚱은 대립관계에 있는 장제스 국부(국민당)와 미국을 이간시킴으로써 미국의 대(對)국민당 정책에 큰 차질을 가져오게 만들었다. 이러한 전략을 오늘날 대한민국 현실에 접목시켜 보면 시사한 바가 크다. 마오쩌뚱 사상을 교범으로 한 김일성의 한반도 적화통일 전략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김일성의 '갓끈론' 전술전략을 경계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미(反美)와 반일(反日)을 적극 활용, 반복적인 이간질 선동술로 알력을 조장하는 국론분열이 그것이다. 공산당은 한 번은 총칼로 죽이고, 한 번은 고착화된 사상과 반복적인 선동술로 죽인다. 담담타타(談談打打), 후방 교란전술인 심리전이다. 그들은 상대 적의 내부를 교란시키는 와중에도 한편에서 평화공세의 양동작전을 편다. 그러다가 상대방의 내부 분열이 조성될 때는 즉시 무장 투쟁으로 변모한다. 전략적인 정치적 방어수단이며 전술적으로는 공격을 위한 방어다.
북한이 인도주의를 내세우며 경협과 이산가족상봉 등 화해무드를 조성하면서 뒤에서는 핵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우리 사회는 늘 그랬던 것처럼 남남갈등의 갑론을박 내홍에 휩싸인다. 언급한 중간지대에 피해 있던 냉소주의자들의 득세도 이때 쯤이다. 이들은 사회 양극화에서 발생되는 이해관계 틈새에서 알력을 조장하는 숙주 역할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북한인권, 부자세습, 주체사상 문제 등에 대해서는 침묵, 회피하면서도 시대를 앞서가는 자존(自存)만은 고양되어 있다. 툭하면 “아직도 이념타령이냐?”라는 비아냥도 그 연장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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