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 현세사 역사적 현장을 지켜보던 시계가 있었다. 윤봉길 의사가 홍코우 공원 의거를 위해 출정한 전날 밤 김구 주석과 교환했던 회중시계는 대한 남아의 기개를 세계에 알린 정신적 유산이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장개석은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했다니 정말 대단하다.”라며 감탄했다. 그리고 장개석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임시정부를 도와야 한다는 결정을 하기에 이른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마지막 서거하실 당시 응급처치를 했던 군의관 정규형 대위는, 병원으로 실려온 박정희 대통령의 얼굴을 보고 왜 대통령인 줄 몰랐는가 라는 수사관 물음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병원에 들어 왔을 때는 얼굴에 피가 묻어 있었고 감시자들이 응급처지 중에도 자꾸 수건으로 얼굴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시계가 평범한 세이코였고 넥타이 핀의 멕기가 벗겨져 있었으며 혁대도 헤져 있었습니다.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약간 있어 50여세로 보았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각하라고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박정희, 그의 습관은 시계를 자주 보는 일이었다. 조국근대화를 신앙삼아 촌각을 아껴 고군분투했던 대통령의 마지막을 지켰던 낡은 세이코 시계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했다. 5.16혁명 전부터 착용했던 그 시계는 영웅의 마지막까지 곁을 지키며 거대한 산업화의 역사를 시시각각 알렸던 증인이었다. 우리는 가슴에 또 하나의 정신적 유산을 품었다. 논바닥에 버린 1억원짜리 시계로 설왕설래 말도 많았던 노무현은 유신헌법으로 판사된 것이 부끄럽다며 난동을 부렸다. 영웅과 필부의 차이가 그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름석자 가진 모든 정치인이 가진 흔하디 흔한 아호조차 없던 소박한 대통령이었다. 그는 결코 자신을 돋보이려 포장하지 않았다. 대통령 전속 이발사조차 그가 입은 구멍 난 런닝구를 회상하며 눈물 짓는다. 언젠가 대선에서 패하고, 오천만 국민 앞에 공개적으로 은퇴약속을 하며 영국으로 떠났던 어느 대통령은 평생 거짓말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결국 대통령이 되었고 마지막 가는 길이 무엇이 아쉬웠던지 금기인 태극기를 관에 두르려 했고, 굳은 육신은 곤룡포까지 둘렀다. 평생 거짓말 한번 한적 없다던 한낮 필부의 허풍처럼 살다간 그분은 마지막 가는길까지 곤룡포에 집착했다. 낡은 세이코 시계와 곤룡포, 국민은 어느 것을 더 소중히 기억하게 될까.
박정희 대통령은 생일날 선물이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대부분의 생일날 각료들은 화분하나로 생일선물을 대신했다. 그러한 대통령에게 생일선물로 “근축 탄신 1979”를 새겨 넣은 명품 금시계를 선물하려는 이가 있었다. 대한남아의 기개를 담은 윤봉길 의사의 회중시계와 낡은 세이코 시계는 우리의 가슴에 뭉클한 역사를 남겼다. 그러나 금장시계는 고통과 회한을 떠올리게 한다. 그 더러운 시계를 준비했던 자는 박정희 대통령 살해범 김재규였다.
1979년 11월 14일 박정희 대통령 생일선물로 바치려 하기 20여일 전 삿된 허욕에 사로잡혀 우발적 역모를 단행하게 된다. 김재규는 끝끝내 민주화를 위해 7년간 거사를 준비했다는 거짓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러나 김재규는 대통령에게 아부하기 위해 화려한 금장시계를 준비했다. 그것도 바다건너 유럽의 명품을 만드는 당대의 시계명인에게 주문했다. 죽어가면서 김재규가 남긴 길이 남을 거짓말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이발사였던 박수웅님은 증언하고 있다. 부속실을 통해 이발하러 가겠다던 대통령은 조금만 늦어질 것 같아도 몸소 찾아와 “박군, 조금만 지금 회의가 끝나지 않아서 그런데 조금만 기다리거래이”라고 미안함을 전했다. 그의 증언은 계속 된다. “그분은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자상하셨고 정도 많으셨습니다.
특히 절약 하는 데는 아마 그분을 따라갈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분은 늘 윗옷을 벗고 러닝 셔츠 차림으로 이발관에 오셨는데, 해진 러닝 셔츠를 입고 계신 적이 많았습니다. 허리띠도 얼마나 사용하셨던지 허리띠 구멍이 사람의 새 끼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크게 나 있었습니다. 절대권력자가 이처럼 검소 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언젠가 “효자동 이발사”라는 영화가 장안에 상영되었다. 영화속의 대통령은 대통령의 아들과 싸웠다는 이유만으로 어린아이까지 잡아다 고문 하고 앉은뱅이를 만드는 잔인한 대통령으로 묘사했다. 그 때 그 시절의 화면을 담은 어느 대통령인지 누구나 알 수 있는 그런 뻔한 삼류영화였다. 그런 좌파들은 영화라는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거짓을 포장하며 “그 때 그 사람”을 제작하여 역적 김재규를 정당화 했다.
생존한 이발사의 진실도 날조하는데, 죽은 김재규를 “민주화 영웅”을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유신헌법으로 공부한 것이 부끄럽다던 대통령이던 시절이다. 그 아류들은 거짓말도 백번하면 진실이 된다는 교본에 따라 오늘도 박정희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정직하다. 포장한다고 포장되는 것이, 거짓을 앞세운 다고 진실이 되는 것이 아니다.
4.19 혁명 후 과도정부를 이끌었던 허정은 5.16 혁명 후, 박정희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대표적 거물급 정치인이다. 그는 1980년 국가원로가 되어 박정희 대통령의 투혼으로 건설 된 산업화 현장을 시찰하며 감회어린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회상했다. “박정희씨는 우리가 못하는 일을 해놓았어. 혁명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도로, 항만, 도시계획을 해놓은 것을 보면 우리보다 나았어” 그는 유신통치와 장기집권에 대한 비판이 휘몰아치던 때의 진솔한 고백이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반대편에서 대립각을 세웠던 수많은 지성이 이제는 박정희 대통령을 다시 생각하며 참회하며 고해성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한 때 일부는 역모를 도모한 역적을 “민주화 인사”로 거짓포장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이 가려지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휘몰아 도는 진실의 강은 도도히 흐른다.
반역의 상징 김재규의 금장시계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바라보며 한 개인의 삿된 망상과 오욕이 역사에 미친 죄를 다시금 반추하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