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필자가 한국을 떠나오기 몇 해 전 1988년 현대전자 산업(주)에 재직할 때의 얘기다. 해서 독자 제위께서는 그저 이 글을 국민검사의 추억 遡回 정도로 가볍게 읽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에 더불어, 베이비붐 세대의 일원으로서 치열했던 산업사회의 한 단면을 알리는 데도 나름의 의미를 두고자 한다. 당시 필자의 직무는 생산기술 엔지니어로서 품질관리 사내.외 강사를 겸직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은 품질관리 열풍이 전국을 지배할 정도로 그 열기가 뜨거웠다. 이런 일련의 활동은 제품의 품질과, 업무의 질적 향상 목적을 넘어서 생산성 향상과 가치혁신(Value Innovation)에 심혈을 기울이던 시기였다.
현대전자 산업(주)은 고 정몽헌 사장을 필두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반도체(半導體:Semiconductor) 설비를 갖추고 전 세계에서 첫 번째로 '256K D RAM'을 개발하지만, 기타 일반 가전제품은 삼성, 금성, 대우 삼사가 치열한 시장 점유율 경쟁을 하던 터라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제품은 부득이 외주로 내보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따라서 미국의 MCI 社와 OEM Base로 체결한 'Cordless Phone'마저 안산의 '某 선풍기(전기)'로 外注를 주게 된다.
당시 無線 제품인 '코드레스 폰'을 선풍기 제조업체에 發注한다는 것은 '語不成說'이라며 모든 理事陣이 반대하였다, 급기야 本部長으로부터 필자를 호출한다는 연락을 받고 들어가니,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온 덩치가 산 만한 대구 출신 최OO 본부장은 다짜고짜 "어이! 니도 알제? 이사들이 다 반대하는데~, 니는 우에 생각하노...?" 이렇게 필자의 의사를 묻는다. "저한테 하루만 시간을 주십시오, 검토하고 바로 보고서 올리겠습니다." 하고 나오는데 모두가 내 눈치를 살핀다.
참, 이래저래 답답할 노릇이었다. 사실 某 선풍기 제조사의 현장 답사는 필자가 직접 다녀 왔고, 당시 '코드레스 폰'을 만들만 한 외주 업체는 없던 터라 우리가 생산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올린 터였지만, 현대 본사의 Production Line은 Full 가동 중이어서 어쩔 수 없이 외주를 검토하게 된 것이다. 본부장의 의중을 살피니 반드시 외주로 돌리겠다는 의지가 강해 결국, 밤새워 골머리를 싸매고 보고서를 만들어 다음 날 아침 뜬눈으로 젤 먼저 보고를 올린다.
"본부장님! 됩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보고서에 명시된 인력을 지원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검토하시더니 씨익 웃으면서 "이 자슥 이거, 내 이럴 줄 알았어! 이거면 되나?", "예~ 제가 어떤 수를 써서라도 한 달 안에 3,000대를 만들어 납품하겠습니다." "야~ 이거 하루 늦는데 지체상금이 얼만 줄 아나?" "예~ 압니다, 계약서 봤습니다." "좋다~ 이사들 다 불러!" 이래서 필자는 졸지에 '외주관리 팀장'이란 직책을 하나 더 맡는다. 당시 필자의 나이 당년 28세에 아주 골때리는 일복이 터진 거였다.
비록 나이 서른 미만의 초급관리자였지만, 엄연한 본부장 직속의 샘을 부르는 부러운 신설 부서장이었다. 현대전자 공채 5기를 수석으로 입사한 필자는 생산기술 엔지니어에 전국에 몇 안 되는 품질관리 강사 자격까지 갖추었고, 품질관리 지도자로서 전국 품질관리 경진대회(세종문화회관) 2연패, 현대전자 1호 품질관리 지도자 공로상(사장 정몽헌 증)을 받는 이력도 가졌으니, 부서장 레벨에서도 이런 조건을 갖춘 자가 없던 터라 필자를 시기하는 자들이 딱히 반발할 명분도 없던 터다.
필자가 요구한 인력 지원 내용은 이러했다. 자재 수급과 직접 생산 인원만 外注 직원을 쓰고, 이 제품을 시 제품화 한 설계부 대리는 기술지원 팀장으로, Inspector는 평소 점찍어 두었던 품질관리부 여직원 2명(중간 공정, 최종) 그리고 히든카드로 필자의 고교 후배 3명을 Repair 요원으로 차출, 총 알짜배기(Task Force Team) 6명을 대동하고 모두가 불가능하다는 Project에 도전, 기적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이에 앞서 먼저 일주일 동안은 필자가 직접 Yield 95% 이상의 생산 라인을 설계하여 Set-up 해 놓은 상태다. 자랑 같지만, 전자제품 관련 생산라인 설계는 당시 한국에선 일인자임을 자부할 때다.
이제 한 달 안에 죽으나 사나 3,000대를 생산해 부산항에 정박해 있는 선박에 船積해야 한다. 이윽고 某 선풍기 社의 社長을 제외한 모든 임직원은 필자의 지시에 따라 생산에 돌입했다. 매일 일과가 끝나면 外注業體의 임원진과 Task Force Team은 당일 문제점과 성과를 분석하고, 다음 날 할 일을 철저히 계획하여 생산에 임한다. 모두들 힘겨운 야근에도 잘 따라주었고, 마침내 선적 날짜는 3일 반나절이 남았는데 생산량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모두가 지쳐간다.
이젠 이틀 반나절이 남았다. 부족분을 따져보니 남은 이틀 반나절을 Nonstop으로 作業해야 하는 계산이 나온다. 모두의 눈은 풀려있고 여기저기서 자기도 모르게 졸음에 고개를 떨군다. 다른 이들은 졸기라도 하지만, 필자는 이틀 반나절을 단 한숨도 눈 붙이지 못하고 한밤에는 당시 '육개장 사발면'을 직접 끓여 중참을 나르며 조는 작업자를 독려하여 강하게 밀어붙인 탓에, 外注業體의 생산직 사원 너덧 명이 화장실 입구에서 날 붙잡고 사람을 이렇게 혹사하는 법이 어디 있냐며 주먹으로 치려 했다.
순간, "잠깐만! 당신들이 날 패는 일은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선적 기일을 놓치면 우리가 모두 지금까지 한 일은 헛고생이 될 뿐만 아니라, 당신들은 실패자가 된다. 그러나 내가 보증하겠는데, 당신들이 앞장서서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켜 이 일을 끝낸다면, 당신들은 앞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날 패는 일은 선적 후에 얼마든 맞아줄 테니 일단은 미루자고 설득하여 제자리로 돌려보내고 나니 참, 내가 이거 지금 뭣 하는 짓인가 싶었다.
드디어 이틀 밤샘 작업으로 12시 정오에는 운송할 수 있겠으나, 안산에서 경기도 이천 현대전자의 보세창고까지 운송 시간을 허비한다면 부산항에 오후 5시까지 선적할 시간을 놓치게 생겼다. 절체절명의 순간이 다가왔다. 아시다시피 국세청 관할 보세창고 전담 KAS 컨테이너 트럭은 보세창고를 떠나서 화물을 싣고 내릴(Loading) 수 없다. 이거 정말 큰 일이다. 만사가 도루묵이 될 판이다. 본사에서는 겉으론 걱정하는 체했지만, 내심 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듯 거봐..! 하면서 모든 이사와 부서장들은 필자가 실패하기를 바란 듯했다. 본부장도 체념하고 날 지켜보는 듯했다.
필자는 드디어 죽기 살기의 결판에 돌입한다.
본사 생산관리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부장님! KAS 트럭 외주(안산 某전기)로 보내 주십시오?"
순간 귀청이 떨어질 정도의 큰 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내 귓전을 울린다.
생관부장: "야! 인마~ 너 미쳤어!"(여기까진 무리한 요구에 대한 대가로 참는다.)
필자: "부장님! KAS 차 이리로 보내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생관부장: "안돼~ 이새끼야!"
이젠 드디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나이가 15살이나 많고 또 윗분이지만, 욕은 욕을 부르는 법이라...
필자: "야! 이' 씨팔눔아~ 차' 돌리라면 돌려~ 당장! 아니면 당신이 책임져야 해!" 하고 전화를 꽝! 하고 끊어버렸다.
그리곤 만의 하나를 생각해 다른 트럭을 대기시키고 차선책을 모색하고 있었다. 5분 뒤에 필자를 다급히 찾는 전화가 걸려 왔다, 생관부장이다. "차 돌렸으니 Shipping 해! 그라고~ 너 이 새끼 들어오거든 보자!" 하곤 전화를 툭 끊는다. 빠듯한 시간에 부랴부랴 선적은 때맞춰 잘 끝냈다. 그리고 이번 생산 관련자들을 강당(사내 식당)에 모아 놓고, "여러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러분은 '목표를 달성한 성공한 사람'들이고 훌륭한 모범사원입니다. 존경하는 某 전기 사장님! 이토록 모범적인 사원들께 특별 보너스 지급하실 거죠?" 잠시 생각하시더니, "오케이! 하신다." 순간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 여러분! 이제 제가 여러분들로부터 공식적으로 매 맞을 차례입니다." 하고 단상에서 내려서는 순간, 어제 그자들이 나타나 필자의 팔과 다리를 잡아 공중으로 던져버린다. 그것도 세 차례나... "팀장님 만세~!" 하면서 헹가래를 친다. 이후 나는 "제가 오늘 여러분을 수원의 '國一館 Night club'으로 초대하겠습니다. 일단은 늦은 점심하시고 한숨 푹~ 주무십시오.
그날 저녁 수원에 있는 국일관 나이트클럽을 私費로 전세 내어 '코드레스 폰' 시제 3,000대 납품 '自祝宴'을 열었다. 자축연이 끝나고 'Club 전세'에 대한 결제대금으로 신용카드 3개(국민카드, 위너스카드, 엘지카드)를 합쳐 지급했다. 다음 날 느지막히 본사로 출근했더니, 동료들은 부러운 듯 쳐다보고 이사들은 겸연쩍어하는 눈치다. 본부장은 "야! 나는 니가 해낼 줄 알았어! 수고했어! 집에 가서 며칠 푹~쉬어! "특별 포상휴가 명령이 떨어진 거다.
그리곤 종합사무실의 생산관리부장께로 가서 여러 직원이 보는 자리에서 무릎 꿇고, "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했더니, "뭐! 형님~! 이 사람이~ 하하하...", 오히려 내 손을 맞잡고는 "자네가 내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나 KAS 차 돌릴 자신 솔직히 없었어~ 내가 도리어 고마워~ 납품 못했어 봐~ 어차피 우리 둘 다 죽은 목숨이랬잖아! "이따가 저녁이나 먹으며 한잔하자 어이~?" 참! 기분이 째지도록 흐뭇한 순간이었다. 그리 맺어진 인연으로 그 생관부장은 훗날 필자의 견진 대부님이 되셨다.
다음 달, 나이트클럽 전세 대금으로 써버린 '백 오십만 원'에 대한 고지서가 날아왔다. 분명 한소리 할 마누라의 기선을 제압할 특단의 조치, 보란 듯이 마누라 앞에서 신용카드 3개를 내놓고 하나씩 천천히 가위로 잘라가는데, 마지막 국민카드를 자르려는 순간 "그거는 놔두세요~" 한다. 나는 씩~ 웃으며 "미안해~! 내가 알아서 갚을게~" 이날 이후로 강사료는 빚 갚는데 다 썼다. 또한, 지금도 신용카드를 함부로 쓰지 않는 계기가 된다.
독자께서 자기 자랑한다고 흉을 논할 수 있겠으나, 다~ 철 지난 얘기다. 그러나 당시 시대적 배경을 놓고 본다면, 필자의 월급이 475,000원(농협 자동이체) 강사료 평균 300,000원(순전 용돈으로 사용) 이만하면 봉급쟁이 형편치곤 넉넉한 편이었다. 대기업의 외주 팀장 자리란, 수많은 유혹이 따르는 자리라서 사전에 본부장께서 지침을 내리셨고 필자는 그 명을 충실히 지켰다. "니 건강이 허락한다면 술은 얻어먹어도 좋지만, 돈은 받지 마래이~ 그라면 니 수명이 짧아진다, 무슨 말인지 알제~?" 이렇게 말이다.
젊은 나이에 돈이 왔다 갔다 하는 자리에 새파란 초급관리자가 중책을 맡아 있으니, 이를 시기하여 틈만 보이면 물고 늘어지는 나잇살이나 처먹은 이사와 부서장들의 발목 잡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보통의 젊은 사람이면 그 자릴 지켜내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매사에 딴지를 걸며 필자의 실책을 기다렸지만, 밤잠을 자지 않고 준비하여 일에 임하고 정에 얽매여 일을 그르친 적 없으니, 박지원 말마따나 파도 파도 미담만 나왔을 것이다.
이후 필자는 품질기획과(본부장 직속)가 생기면서 책임자로 이동 한다. 이 임무는 品質政策을 立案하여 이사진과 부서장의 업무 품질을 관리하고 지도 평가하는 직무라 만일 필자에게 잘 못 보였다간 목이 댕강 날아가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점점 더 막강한 자리로 승승장구하니 이젠 포기하고 아예 아양을 떤다. 그리로 Ph.D. 차 도미 유학길에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정몽헌 사장에게 올린 기안에서 차장급 이상은 회삿돈만 축내는 버러지니 다 解雇하시라 했던 기억이 난다.
현대전자 창립 초창기에 4년여를 재직하는 동안 필자는 참 많은 일을 했다. 사원 교육용 교재 2권을 집필하고, 외주관리 팀장으로 있을 땐 '외주관리 규정집'을 만들고, '품질관리 규정집'을 만들어 등록시켰다. 이런 일을 수행하며 참으로 수많은 밤을 지새웠던 기억이 주마간산처럼 눈앞을 지나간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리 열정적으로 일 할 수 있었는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래서 필자는 외주업체를 평가할 때 업주의 나이도 중요한 평가 항목으로 선정했었다. 그것은 하고자 하는 열정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고 정몽헌 회장님의 영전에 명복을 빈다.^^
덧붙여,
(고) 정주영 왕회장님의 야심에 찬 전자업계로의 새로운 진출을 알리는 당시 현대전자 산업(주)는 필자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사원 복지시설이 당시 전 세계에서도 가장 훌륭했던 것으로 보인다. 겨울에도 뜨거운 물에 수영할 수 있는 올림픽 경기 사이즈의 실내 수영장, 사내 극장, 2인 1실(관리자)의 호텔식 숙소, 사내 영빈관 호텔, 각종 경기를 소화할 수 있는 최신식 체육관, 2개의 축구장, 2개의 구내식당, 종업원 10,000명이 넘는 하루 급식비만 1억여 원이 들어감에 따라 사원 급식용 농.축산물 직산 농장까지 갖춘 365,000평의 현대 왕국이었다. 그런 회사가 필자가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아 하이닉스로 넘어가게 되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정몽헌 회장마저 미심쩍은 죽음으로 세상을 뜨게 됐다.
<국민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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