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면서
2015년 4월 8일 일본 산케이 인터넷 뉴스판에는 이런 기사가 머리기사로 떴다.
“昨7日の朝刊各紙はそろって教科書検定を大きく取り上げた。中学校の社会科の全教科書で、竹島と尖閣諸島が「日本の領土」と明記された。政府見解を尊重する記述を求めた新しい検定基準に基づく。”
풀어 보니
“지난 7일(4월) 일본의 조간 각 신문은 모두 교과서검정(教科書検定)을 크게 다루고 문제 삼았다. 중학교 사회과 전교과서에서 독도(일본명 다케시마 竹島)와 센카쿠제도(尖閣諸島)가 '일본의 영토'라고 명기시켰다. 정부 견해를 존중하는 기술(記述)을 요구하는 새로운 검정기준에 의거했다.”
대충 이런 내용인데.. 부족하지만 이를 참고로 일본의 영토집착과 그 연장선에서 집요하리 만큼 집착하고 있는 일본의 독도 접근법에 대해 분석해 보고 그 대처 방안에 대해 소고(小考)해 본다.
2. 문제의 제기 - 일본은 주변 4국과 영토분쟁 중
- 국제 사회에서 한 때 일본인들을 '이코노믹 에니멀'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다. 돈 밖에 모르는 경제동물이라는 일종의 조소 성격이 강하다. 이는 2차대전 패전 후 잿더미 나라에서 오늘날 세계 경제의 중심축에 서 있는 그들의 성공적인 재기와 결코 무관하지는 않다. 또한 섬(島)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본능적으로 확대 지향을 희구하는 특유의 근성도 한 몫을 담당했을 것이다. 어쩌면 유별난 영토 집착도 그 연장선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일본은 주변 4국과 영토분쟁 중이다. 전후 미국과의 분쟁 끝에 오가사와라 군도는 그들의 영토로 흡수시키는데 성공(?)했다. 나머지 러시아와의 북방영토(러시아측에선 쿠릴열도), 중국과의 센카쿠 열도(중국측에선 댜오이다오), 한국과는 독도문제를 두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그 중심에 국제정치학적인 역학구도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독도의 경우도 일본이 주장하는 근거 가운데 하나가 러시아 전쟁이다. 당사자간의 전후 전리품으로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대한민국 영해 위에 그들 마음대로 선을 긋고 그것을 근거로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 역사적 사실 관계야 어쨌튼 간에 동중국해 남서쪽 대만과 류큐군도 사이에 있는 센카쿠 열도의 경우를 보면 그들의 수법에 혀가 내둘러질 정도다. 밀물 때 안보이는 암초에다 시멘트로 콘크리트하여 섬으로 만드는 기상천외한 발상까지 동원하여 실효적 지배를 주장하는 정도이고 보면 그들의 집요함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3. 일본의 류큐(琉球)병합 과정 - 발부터 들여놓기 기법
우리가 독도 문제에 대하여 역사적인 관점과 실효적 지배논리로만 안주해서는 안될 한가지 사례가 있다. 일본의 류큐병합 과정이 그것이다. 우리가 듣기에도 생소한 류큐군도에 대한 병합 과정을 우리의 독도문제와 연계시켜 보면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교훈이 있다. 원래 류큐(琉球)는 중국과 일본의 속국(屬國)이 아니었다. 힘이 없어 청(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있던 소국이었다. 140여 섬으로 형성된 류큐제도는 오늘날의 오키나와(沖繩)를 말한다. 류큐인은 일본인과 민족이 다르다. 체형도 왜소한 본토 일본인들보다 크다. 굳이 비교한다면 인근 타이완족에 가까운 독립 왕국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어떻게 그들의 영토로 병합시킬 수 있었을까? 그 중심에 세일즈맨들이 물건을 팔 때 자주 이용하고 있는 수법, 이른바 '발부터 들여놓기 기법'이 작용되어 흥미롭다.
요점만 정리해 보면 이렇다. 1372년부터 류큐는 청(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있었다. 그런데 1609년 일본의 사츠마번(藩)이 류큐를 침공하여 왕과 가신들을 인질로 사츠마에 끌려가면서 일본에도 조공이 시작된다. 류큐는 이때부터 중국과 일본의 양속(兩屬)체제화 된다. 일본에 의한 본격적인 류큐왕국의 해체는 당시 안팎의 정치 환경과 맞물려 몇 차례 과정을 거치면서 착착 진행되어 진다. 1871년 9월 청⋅일간에 조약관계가 성립된다. ⟶1871년 11월 대만에 표류한 류큐인들이 살해되는 이른바 대만사건이 발생한다. ⟶1874년 근대 일본의 최초 해외파병이라 할 수 있는 대만침공을 감행한다. ⟶이를 계기로 류큐왕국이 일본의 한 번(藩)으로 되어 버린 것이다.
일련의 사건으로 탄력을 받은 일본은 대만침공 이후 류큐왕국 호칭을 없애고 류큐번(藩)이라 명명, 류큐가 일본 영토라는 '국내적 조치'를 취한 이후, 청(중국)에 대만사건의 책임을 추궁한다. 공교롭게도 국내 사정이 복잡했던 말기 청조(淸朝)는 이때 그 책임을 회피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대만은 중국의 교화(敎化)와 명령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 되고 만다. 발을 들여 놓고 기회만 엿보고 있던 일본은 이틈을 놓치지 않고 1874년 대만 출병 한다.
이에 청(중국)이 항의하자 일본은 청의 책임 회피에 대한 언급을 상기시키면서, 당시 국제 정치의 우위를 선점하고 있던 영국의 조정하에 '대만의 선주민들이 일본의 속민(屬民)을 살해했으므로 일본은 대만 출병을 했으며, 이는 정당한 행위였다'는 조문(條文)을 교환하게 된다. 청이 류큐에 잠시 시선을 뗀 틈을 이용해 한 발을 들여 놓고 기회만 엿보고 있던 일본은 류큐에서 청을 아예 배제시킬 대외적인 명분까지 얻게 된것이다.
결국, 청(중국)의 영향권에 있었던 류큐왕국이 일본 영토임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된것이다. 여기에 폐번치현(廃藩置県) 정책과 맞물려 1879년에 류큐번(藩)을 폐지하고 오늘날의 오키나와현(縣)으로 병합시켜 자연스럽게 일본의 한 현(県)으로 만들어 버린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류큐병합을 '류큐처분'이라고 부르고 있다. 즉 병합은 강제성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처분이라는 마치 국내 문제인 것처럼 포장하여 향후 국제적인 문제가 발생되면 국내 문제인 것처럼 그 논점을 교묘하게 바꿔버리는 고도의 국제정치학적 꾀를 부린 것이다.
4. 일본의 독도침공 - 또 하나의 정한론(征韓論)
- 다시 독도 문제를 보자.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울릉도를 방문하겠다고 밝힌 신도 요시타카, 이나다 도모미, 사토 마사히사 등 자민당 의원 3명이 지난 2011년 4월 1일 김포공항에서 입국 금지된 지 9시간 만에 돌아간 사실이 있다. 이런 정치쇼와 때를 같이 하여 일본이 방위백서를 통해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다는 보도 내용도 이 즈음이다. 이는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국제사회의 이슈로 만들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사실 일본은 오랫동안 이를 위해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당시 2011년판 방위백서에서 역시 ‘우리나라(일본) 주변의 안전보장 문제(2004∼2010년)’를 표현한 지도에는 독도 주변을 붉은색 원으로 표시하고 ‘다케시마(竹島) 문제’라고 기록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독도 코스프레는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해 일본의 영토라는 주장을 펼친 것뿐만 아니라 분쟁지역으로 만들려는 의도까지 내포돼 있다. 방위백서가 울릉도 방문을 시도한 자민당 의원 3명의 ‘정치쇼’ 다음 날 발표됐다는 점은 이를 증명해 줌과 동시에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일부 극우파에만 국한된 생각이 아님을 보여준다. 일본 민주당이 2009년 정권을 잡은 후 두 차례나 방위백서를 발간했지만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대목이다. 사실 과거 일본 정부는 독도에 대해 그나마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자제하려는 흔적은 희미하게나마 있었다.
다만 러시아와 영유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북방영토(러시아측 쿠릴열도)와 연계시켜 '북방영토와 마찬가지로'라는 표현을 사용, 한국이 독도를 마치 불법 점거하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김으로써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계속 강화하려는 교묘한 속셈을 드러내기는 했었다. 그런데 갈수록 일본정부와 정치인들의 망언은 그 수위를 높여가더니 최근 아베를 중심으로 자민당은 노골적으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 부리고 있는 것이다. 자국의 정치 환경 돌파구의 하나로 되풀이 되고 있는 일본의 정치 지도자나 각료들의 한일 관계사 관련 망언은 한일 관계를 갈등과 대립으로 치닫게 해 왔다. 그 중심에 이른바 정한론(征韓論)이 있다.
일제의 조선진출 긍정론, 한일병합 합법론, 식민통치 긍정 평가론, 위안부 합리화, 4국과의 영토문제 연장선에서 독도영유권 주장까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이런 망언은 우발적인 실언이라기 보다는 뿌리 깊은 일본인의 역사 인식의 표출이다. 무엇보다 국제정치의 흐름을 여기에 접목시키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컨대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과거 만국공법(오늘날의 국제법)도 19c말 서세동점(西勢東漸) 이후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의해 작용된다는 국제정세를 그들은 냉철하게 직시하고 있다. 우리가 일본이 '그런 흐름을 충분이 활용하고 있다'는 점 역시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5. 맺은 말 - 일본을 알아야 독도가 보인다
“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는 말이 있다. 뒤집어 보면 “논리를 알면 오류가 보인다”는 말도 된다. 무조건 싫다는 감정보다 냉철하게 일본을 알아야 독도를 지킬 수 있다. 우리가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 논리에 자위하고 있을 때 그들은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독도에 대한 접근법을 강구하고 있음을 직시하고 대처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근대사에서 일본이 류큐왕국을 일본 영토로 병합시키는 과정, 이른바 '발부터 들여놓기 기법'도 그 연장선에 서 있다. 따라서 독도를 국제 영토분쟁 지역으로 만들려는 저들의 속내를 통찰하고, 차제에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 사실을 최대 활용, 그에 따른 역사와 문화적 사실관계, 거기에서 파생된 자료들을 치밀하게 준비하여 전방위 홍보과 함께 물밑 외교전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동시에 역사와 문화적으로 가장 설득력 있게 근접해 있는 두섬(쓰시마) 대마도에 대해 국제사회에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는 맞불 작전을 병행해 나가는 양동전략도 강구해 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