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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과 노무현을 추종하는 사람들중에는 박정희와 김일성을 동일 선상에놓고 그저 둘다 독재자라는 물타기전법내지 양비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있는 참담한 현실이다.
박정희의 독재는 개발독재라고 하는데 경제개발을 위한 의사결정의 독점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박정희에 의한 개발독재라는 말은 선진국의 학자들이 만든 개념이다.박정희 독재는 의사결정을 위한 독재이지 권력의 사유화를 위한 독재가 아니다.이에 반해 김일성, 김정일의 독재는 권력의 사유화를 위한 독재다.두 독재가 다른 것은 권력행사의 지향점과 그 결과가 다른 데에서도 분명 나타나는데,박정희는 자기가 잘 먹소고 잘 살기 위한 독재가 아니라 국가를 리더해나가기 위한 독재였다.그래서 본인은 부귀영달을 누리지 않았다.
비록 대통령이었지만, 십몇년 된 양복을 기워입을 정도로 청빈하게 살았고,술은 막걸리를 주로 마실정도로 청빈한 사람이었다.1979년 불귀의 객이 되었을때에 수중에 남겨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 80년당시 전두환이 박근혜에게 얼마를 마련해주었다는 이야기도 종종 언론에 나온 바 있을 정도이다.
(혹자는 정수장학회 등을 거명하나 이는 재단법인에 대한 이해를 잘못 한 것이다.잘 알겠지만, 재단법인의 재산은 국가에 귀속되고 개인은 소유할 수 없다.특히 정수장학회 등의 재산은 박정희 일가가 출연한 재산으로 만든 재단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박정희 서거이후 박근혜 등이 이를 관리할 주장할 아무런 법적 권리가 없었다.단지 추측에는 전두환 또는 그 후의 권력자들이 박정희의 남겨진 가족에 대한 연민으로 박근혜 등을 정수장학회의 관리자로 임명하였고 그 이후부터 박근혜 등이 정수장학회를 쭉 관리해온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의 경제개발에 대한 의사결정의 독재를 들여다본다.
첫째, 경제개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독일에 광부를 보내고, 일본과도 국교를 정상화할때,당시 야당 그러니까 김영삼, 김대중 이런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반대했는데 당시 자금을 마련하지 못했다면 과연 우리의 경제개발이 가능했겠는가이다.
둘째, 이러한 자금으로 수출지향적인 산업구조를 만들려고 했는데 당시는 수출로 국가가 성공할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불분명한 때였다.오늘날은 일본, 대만, 한국, 중국 등 다수의 국가들이 수출로 국가를 성공시켜 수출이 국가 성공에 첩경이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나, 당시에는 그런 개념이 불명확했었다. 그래서 당시 후진국들이 주로 선택할 전략은 수출촉진정책이 아니라 수입대체정책이란 것이다.
수입이 많이 되는 품목을 육성하여 수입을 줄여나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의 배경에는 아담스미스나 리카도 등의 초기 경제학자들의 논리가 크게 작용 했는데, 쉽게 말하면 후진국은 선진국을 절대로 이길수없다는 절벽같은 이론을 그저 수긍하고 다음에는 체념 했다는 것이다.그런데 박정희는 과감히 수출지향적인 정책을 추진했는데 박정희가 아니라면 그 당시 어떤 정치가도 선택할 수 없는 대안이었다고본다.당시 필리핀 남베트남등 우리보다 잘살던 국가들은 선진국과의 경쟁을 포기하고 수입대체정책을 추진하여 오늘날까지도 경제에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우리와는 바교불가의 현실이 되었다.
세째, 수출지향적인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돈안되는 경공업보다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등 중공업 육성에 정책의 초점을 두는데,자본도 기술도 없는 후진국 한국에서 정말 선택하기 힘든 정책을 선택한 것이다.당연히 김영삼, 김대중 등은 이런 정책에 대해서 또 결사반대했다.
네째, 수출지향적인 경제를성공하기 위해 대대적인 사회간접자본 형성에 돌입하는데,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항만을 건설했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이 농업국가에서 농토를 없애는 고속도로를 건설한다고 건설 현장 굴삭기앞에 드러누워 데모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다.
다섯째, 박정희는 새마을 운동을 하여 농촌을 새롭게 변모시키고 당시 우리 국민 대부분의 의식을 바꾸었다.근면 자조 자립으로 구분되는, 하면된다는 아주 단순하고 엄청난 의식을 국민들 마음속에 에게 장착시켰다.70년대 박정희의 독재가 싫어 호주로 떠나버렸던 김형아(59) 호주국립대 교수는 박정희와 새마을 운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새마을운동이 한국인의 국민성을 바꿨고, 경제기적의 원동력이 됐다]김 교수는 또 2005년에 출간한 《유신과 중화학공업―박정희의 양날의 선택》(일조각)에서도 [독재체제가 없었으면 경제성장은 이뤄질 수 없었다]는 주장을 펴기도했다.김교수는 또 말했는데[박정희 시대 이전, 한국인은 게으르고, 의타적이고, 수동적이라는 인식을 스스로 했고 엽전 짚신이라고 자신을 비하했다.장준하·함석헌·한태연 같은 지식인들도 국민성을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박정희는 국가 건설(Nation Building)을 하려면, 국민성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통해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캠페인을 일으킨 것은 그 때문이다.박정희는 국민에게 자신감과 불굴의 의지를 불어넣었다. 경제기적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김형아 교수가 말한 것처럼 박정희의 장기 통치기간동안 남한인들은 바뀌었다.박정희 이전의 남한인들과 박정희 이후의 남한인들은 이름과 몸은 같을 지 몰라도정신과 의지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보는게 타당하다고 본다.하지만, 북한의 경우, 조선족의 경우, 같은 한민족이지만,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아서 남한 사람들과 다르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만약, 우리 역사에 박정희가 통치하는 시대가 없었다고 가정을 해 본다면,누가 매국노 소리를 들으가며 일본에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을 빌려올 것이며,한국의 젊은 이를 돈에 팔아먹는 다는 소리를 들으가며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할 수 있었을까?당시 후진국은 수입대체형 산업 육성이 기본 정책인데,누가 이런 사정을 무시하고 감히 빈털터리 거지국가 주제에그렇게도 무모하게 수출지향적인 정책을 들고 나올 수 있었을까?그것도 수출지향적인 정책을 펴면서 선진국이나 하는 석유화학, 철강, 조선, 자동차 등을자기 죽을 줄 모르고 육성해나갔을까?당시 야당 및 국민 대부분이 반대하는 고속도로를 깔고 간접자본들을 확충해나갔을 수 있을까?누가 새마을 운동을 통해 게으르고 노는 것 좋아하고 신세한탄만 하는 전직 노예국가 국민들의 의식을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전사들로 바꾸었을까? 우리 역사에서 박정희가 통치하던 시기를 싹 빼서 그 자리에 김영삼이나 김대중을 집어 넣으보면,지금 우리나라가 어떤 상태가 되었을 지 쉽게 결론이 나온다고 본다.만약 박정희가 없었고 그래서 개발독재를 하지 않았고 김영삼이나 김대중 같은 사람들이 박정희 시기를 통치했다고 생각해보자.
당시 야권 등이 목숨을 걸고 결사적으로 반대하던 위의 과감한 정책들을 능력이 없어서도 못했을 것이고 능력이 있다하더라도 눈치본다고 못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베트남, 태국, 필리핀보다 잘 살 아무런 근거나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한국인 자체에 특별한 성공 DNA가 있는지는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을 보면 잘 알수 있는데,2000년에 미국 정부가 발표한 아시아계의 미국내 삶의 수준에 대한 통계를 보자.
2000년당시 미국의 1인당 GDP는 5만불인데,일본계는 7만 800불, 인도계는 7만 700불, 파키스탄, 필리핀 등은 5만불 후반,그러면 한국계는 얼마인가?4만 7천불 정도로서 아시아계 11개국중 7위였다. 그러면 한국인들이 그렇게 중시하는 교육을 한 번 보자.2000년 당시 미국내 아시아계의 대학 진학률은 평균 44%인데,파키스탄 54%, 중국 48%, 필리핀 43.8%, 한국 43.8%(반올림)로서 4위에 불과하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가 다른 아시아계보다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곳에 데려다 놓으면 그 경쟁력은 아시아계에서도 중하위권에 불과하다.현재 미국이나 호주에 사는 교포들을 보더라도 이러한 경쟁력 수준은 확연히 보이는데 중국계, 인도계 등은 그 사회에 바로 침투하여 적응하고 성공해나가는 반면,한국인들은 주로 한국인들끼리 어울리고 사업 상대도 한국에서 오는 관광객, 유학생, 다른 교민 등을 상대하는 경우가 비율적으로 매우 높다.
우리 한국인 개개인 자체가 객관적으로 다른 아시아국가에 비해 경쟁력이 크게 높다라고 할만한 객관적인 근거는 크지 않다고 보는데 그런 우리가 어떻게 다른 아시아권 국가보다 좋은 성과를 내고 있을까?
우리 역사를 한 번 보자. 조선 500년동안 이씨 조선은 스스로 국가를 중국의 조공국으로 격하하여 중국을 형님으로 모셨고 일제시대에는 36년동안 일본의 노예로 살았고 그것도 모자라 해방이후에는 3년간 동족간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치루었다.이를 집안 역사로 비유하면 500년을 남의 집에 조공 갖다바치며 굽실거리고 살다가 그 이후 36년은 아예 다른 옆집의 노예로 살았고,그 이후에 운좋게 다른 힘센 집안덕에 종놈 신세면했다가몇 년후에는 형제끼리 칼부림하여 서로 죽이고 죽이는 집안사를 가진 것과 똑 같다.그러면 이 집안이 단시일내에 재기할 수 있다고 보는가이다?
우리 역사를 하나의 스펙트럼 선상에서 봤을때,지금 북한의 모습이 우리 역사적 추이와 더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남의 집에 굽신거리고 살다가 그 이후 종이 되었다가 다시 얼마후 형제끼리 칼부림까지 한 집안이라면 그 집안은 완전히 맛이 가는게 정상이다.그렇게 맛이 간 상태라면 역사적 추세로 볼때, 남한의 모습보다 북한의 모습이 우리에게 더 자연스럽다.
지금 제3세계의 역사를 보면 우리처럼 암담했던 역사를 가진 나라는 하나같이 가난하게 사는데 그들 나라중 대부분은 우리처럼 장기간 잔혹한 역사를 가지지도 않았다.우리보다 더 자원이나 역사적 경험에서 유리했지만,우리보다 못살고 여러면에서 부족한 상황이다.다시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역사적 추세로 보았을 때,우리가 현재 가질 우리 역사의 자연스런 모습은 남한이 아닌 북한이라고 본다.그렇다고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잘했다는말은 절대 아니다.우리가 필리핀이나 베트남, 파키스탄 인도 인도네시아이런 나라보다 잘 살고 선진국이 될 객관적인 아무런 이유도 없다.
이미 위에서 거론 했듯이 미국에 진출한 각 아시아계 민족들이 스스로의 경쟁력과 업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역사를 보면 고구려부터 참 많은 위인이 있다.나라를 구한 인물, 충신, 덕을 쌓은 인물 등.
첫번째는 세종과 이순신을 빼놓고(물론 우리 역사에 찬란한 빛을발한 인믈이 어디 한두명 이었겠냐마는)누구나 다들 아는 세종과 이순신을 빼고 우리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은 누가 있을까?
여섯째, 박정희다.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하기 이전에는 우리 역사는 그에게 아무런 역사적 임무도 부과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국민들에게 새로은 희망을 제시하고,63년 대통령 선거에 나갔을 때 군사쿠데타라는 큰 단점, 과거 좌익할동 경력의 단점 등이 있음에도 당시 국민들의 선택에 따라 대통령으로 당선 되었다.그리고 그 이후로 그는 한국 사회를 사람의 의식부터 경제까지 송두리째 바꾸어버렸다.박정희가 등장하고 지나간 이후 더 이상 대한민국은 500년간 조공을 바치고 남의 집 종살이를 하고 형제간 전쟁을 겪은 루저의 모습이 아니다.박정희의 무모한 도전정신은이병철, 정주영, 박태준, 김우중 이런 영웅들을 탄생하게 했으며 이런 영웅들은 세계를 향해 아주 가열차게 전혀 위축됨이 없이 경쟁해나아갔다.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영웅들의 세계를 향한정신, 노력, 노하우가 밑으로 그리고 옆으로 확산되 나가면서한국 사회는 새롭게 탄생하게 되었다고 본다.
우리의 머리, 이 육체에는 특별한 DNA가 없지만,박정희 이후 이 사회는 성공하려는 정신과 두려움을 모르는새로운 DNA를 가지게 된 것이라고 본다.이러한 정신이 바로 남한인이 같은 한민족이면서 북한인, 중국 조선족, 재일교표, 재미교포 등과 다른 점이다.그리고 이러한 정신이 아시아 각국 사람들과 우리가 다른 점이다.
結:6~70년대의 잘 살아보세의 그 정신이 다시한번 절실한 시대라고 본다 지금 여기서 안주하고 멈추면 영원한 2류국이 될것이다.남북한 문제에서 수십년 우리의 발목을잡는 북한집단의 행패를 무릅쓰고 더 발전해야하는 대한민국은 지금 많이 피곤하더라도 멈추면 안된다는말로 마무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