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일기 (2) - 김빨스타일
이곳은 김 양식의 역사가 깊습니다. 역사가 긴만큼 김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지요. 그리고 잘 사는 가정이 많습니다. 특히 요즘은 전복 양식까지 많이 하는 까닭에 섬 전체가 활기가 넘칩니다. 따라서 학생들도 부티가 나고 표정도 자신감에 넘칩니다.
문제는 애들이 김빨스타일이라는 점이지요. 김은 가을에 발을 치고 겨울철에 수확을 합니다. 이 발에 김 포자가 붙고, 겨울이 되면 물김을 따고, 민물에 불리고 말려서 우리가 막는 김을 생산합니다. 김빨스타일이란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거무잡잡한 김 색깔과 같은 피부, 그만큼 강인한 삶에 단련된 건강한 사람들.
김을 거두는 겨울. 그 김을 거두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세요. 겨울이라 바다는 춥고 바람이 거셀 수밖에 없지요. 옛날에는 지금처럼 좋은 배가 없었고, 뗏마라고 부르는 노 젖는 배를 타고 김을 거둬들였답니다. 참 고생스러웠을 겁니다.
섬은 전통적으로 남자들이 가부장적 가정을 이루고 사는 곳입니다. 왕 노릇을 한다는 뜻입니다. 집안 대소사 모든 결정을 남자들이 하고, 여자는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므로 남자들이 왕 행세하면서 바깥으로 돌면, 당연히 힘든 일은 여자들이 도맡아 하지요. 그러니, 집안 생계를 여자들이 책임지는 가정이 많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 겨울 김은 누가 기르고 누가 수확하겠습니까. 여자들이 했겠지요. 거친 바람과 파도를 헤치고 노를 저어 바다로 나가는 여자들. 피부는 해풍에 거칠어지고, 노를 젓는 팔뚝은 굵어졌겠지요.
노을이 진 바다, 배를 저어오며, 사공의 뱃노래도 흥얼흥얼 불러도 봤겠지요. 소주 한 잔에 시름도 잊어보았을 것입니다. 삶을 괴로움으로 여기지 않고 힘차게 바다를 헤쳐 나갔던 완도여인들. 여기는 그 낭만의 여인들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김빨을 치고, 겨울바다를 헤치고 김을 수확하고, 말리고 다듬어서 머리에 이고 나가 김을 팔고, 생계를 유지했던 강인한 여자들이 사는 곳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그 건강하고 씩씩한 완도여인들의 후손입니다. 멀리는 바다를 지배하던 장보고의 후예들이라 보시면 됩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긍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애들이 생겨난 겁니다.
그래서 조회시간 애국가가 나오면, 그 음약에 춤을 출 줄 아는 애들이었던 게지요. 벌써부터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춤과 노래로 풀 줄 아는 애들이 된 것입니다. 하루종일 충 추고 노래하고 뛰어다니고 꽥꽥 소리 지르며 학교생활을 합니다. 참 대단한 김빨스타일들이지요.
쾌활한 만큼, 성격도 화끈합니다. 아무리 선생님이 혼내더라도, 그 앞에서는 울상을 짓더라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씩 웃습니다. 거기다가
“우리 아무개는 말썽은 부려도 인성은 참 좋아.”라는 말이라도 들을라치면
“그렇지요, 쌤?”
하면서 방긋 웃습니다. 뒤끝을 남기는 애들이 아니지요.
수업시간 공부 안하고 속 썩이면서 살더라도, 의리도 남자들만큼 좋습니다. 한번은 깜박 잊고 수업시간을 빼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하필이면 교장선생님이 순시를 했더랍니다. 당연히 저는 교실에 없었지요. 교장선생님이 “선생님, 어디 가셨냐.”고 물었겠지요. 우리 애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우리 선생님, 교무실에 프린트물 가지러 가셨어요.” 하더랍니다.
아이고, 우리 귀여운 김빨스타일들. 그러나 이 김빨스타일들도 화장을 한답니다. 예뻐지고 싶어한다는 뜻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