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봉숭아
결국 정서부터 다듬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정서는 환경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면,이곳은 참으로 좋은 환경이지요. 바다는 푸르고 넓습니다. 바다에 달이 뜨면, 얼마나 그 달이 커 보이는 지요. 바다안개가 퍼지면, 세상은 은색 파도위에 실려 있는 것 같지요. 또한 파도 없는 날, 갈매기 나르는 오후의 고즈녁한 바닷가는 얼마나 고요한지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 애들 어딘가에는 푸르고 넓고 아름다운 정서가 숨겨져 있으리라 믿는 것이지요.
봉숭아를 심었습니다. 하얀색 빨간색 분홍색 보라색 봉숭아 꽃씨를 골고루 심었습니다. 싹이 트고,좋은 모종을 골라 화분 50개에 옮겨 심었습니다. 6월 장마가 지는 날부터 하나둘씩 꽃이 피기 시작하였습니다.
탐스럽게 봉숭아 꽃그루가 온통 붉고 하얗고 보라색으로 물들자, 아이들이 몰려 왔습니다.
“쌤, 나도 물들여 주세요.”
저마다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것입니다. 봉숭아 물 들인 손톱에 어여쁜 꽃물이 눈이 내릴 때까지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소문 때문이지요. 우리 아이들도 첫사랑에 대한 동경이 크답니다.
곧 학교에 봉숭아 물들이는 풍경이 보입니다. 백반을 사다가 봉숭아꽃과 잎사귀를 넣어서, 콩콩 찧습니다. 뭉근하게 반죽이 되면 손톱 위에 얹고 일회용밴드로 묶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가만 놔두어야 해.”
“왜요?”
“아따, 궁금해서 열어보면, 첫사랑이 도망갈지 몰라.”
제일 예쁘게 물든 애들은 사탕도 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정말 보물처럼 새끼손가락을 안고 갑니다.댜음 날 아침, 교문 앞.
“쌤, 이렇게 물들여졌어요.”
정말 예쁘게 물들여진 애들이 있습니다. 사탕도 주고 시도 적어줍니다. 그것을 본 다른 아이들이 너나없이 찾아와 새끼손가락을 눈앞에 내밉니다.
“저두요. 저두요.”
그렇게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까지 아이들은 첫사랑에 대한 동경을 품고 봉숭아물을 들이고 갔습니다. 저도 우리 아이들이 첫눈이 내릴 때까지 물들인 손톱을 간직했으면 합니다. 사랑을 아는 것은 아이들이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사랑을 알게 되면, 아마도 아름다운 푸른 바다와 그 바다 위에 뜨는 크고 밝은 달의 정서가 살아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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