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교훈 로마史 Digest-58-
*國賊으로 몰리고도 로마정신 잃지 않은 스쯔라는 東方遠征의 임무를 완수하다.
BC.86년 봄, 이미 미토리다테스 측에 가담한 테베로부터 15킬로 북서쪽을 향한 湖岸에 펼쳐진 카이로네아平原에서 양군이 대치하였다.
전력이 열세인 로마군은 보병 10만, 기병 1만에 90대의 전차까지 동원된 폰토스軍을 적지에서 맞아 싸와야했다. 평원 가득 전개해 있는 폰토스군은 長槍으로 무장한 그리스식 중장보병과 오리엔트식으로 칼날을 두 바퀴에 장착한 戰車隊의 혼성군이었다.
12만 대군을 카파도키아 출신 장군 알케라오스가 총지휘했다.
이에 비해 短槍에 양날 劍으로 무장한 2만 5천의 중장보병과 5천의 기병이 전부인 로마軍은 일견 승부는 보나마나한듯 했다.
그러나 회전의 불꽃이 튀자 직접 騎兵隊를 이끌고 재빨리 전투 주도권을 쥔 스쯔라의 독단무대가 된다.
거대한 칼날을 회전시키며 돌진해 온 전차 대부분은 마치 자마會戰에서 카르타고軍의 코끼리떼가 그러했듯이 정지시키려해도 멈추지 않고 戰線 밖으로 이탈해 버렸다.
긴 창 끝을 한 줄 횡대 해서 다가오는 그리스가 자랑하는 중장보병 파랑크스도 前面은 강하나 양측면과 후면이 약한 단점이 있다. 이 단점을 카버하는 것이 기병의 역할이지만 폰토스軍의 기병단은 수를 앞세워 밀고 올뿐, 중대별의 유연한 전술을 구사하는 스쯔라가 던진 올가미에 걸려 이또한 아군의 주력인 중장보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갔다.
폰토스왕 미토리다테스와 로마군 간에 전개된 최초의 본격적인 전투 결과는 폰토스 측의 전사자와 포로를 10만 이상을 내고 도망간 자는 1만이 안되었다.
여기에 비해 로마군 측은 전사자 불과 12명에 그쳤다.
회전이 끝나고 실시한 점호에서 대답하지 없던 병사는 14명이었으나 해가 진 후 진지로 귀환한 병사가 2명 있었기 때문이다.
역전의 스쯔라가 치른 카이로네아平原의 회전은 알렉산더大王이나 한니발의 전과를 뛰어넘는 戰史上 신기록이었다. 스쯔라가 이끈 로마군은 문자 그대로 워 머신, 전쟁기계였다.
회전 후 폰토스 측에 붙었던 테베는 그 벌로 영토의 반이 몰수되고 그 토지는 전비조달을 위해 바친 에피다우로스와 올림피아 그리고 델포이의 神殿들에 보상으로 주어졌다.
오리엔트의 군주는 스스로 전장에 임하는 관습이 없기도 하지만 패전은 총사령관의 능력 결여가 원인인 예가 허다하다.
專制君主에 있어 군대를 맡긴 총사령관이라 하더라도 그는 신하의 한사람에 불과한 때문일 것이다.
카이로네아 대패를 맛보았으나 미토리다테스는 다시 사령관만 바꾸면 스쯔라에 이길것이라 생각했다.
수개월이 지나는 동안에 헤레스폰토스해협을 폰토스軍 8만이 재도해 한 것이다.
그러나 카이로네아戰 후에도 아테네에 돌아가지 않고 북상을 계속하고 있던 스쯔라의 로마군과 대결했으나 역시 스쯔라의 완승으로 끝났다.
2차전의 적 전사자는 1만 5천뿐이었다.
1차전에 비해 극히 적은 이유는 적병을 죽이기보다 사로잡으라는 스쯔라의 명령에 따른 결과이며 붇잡힌 적 포로들은 노예로 팔려 어려운 군자금난을 덜어줬던 것이다.
로마가 自由港으로 지정해서 경제성장 기지로 삼고 있던 데로스島의 노예시장은 그리스나 아시아 쪽에서 노예를 사로 오는 상인들로 붐볐다고 한다.
두차례나 거듭 패한 퐁토스왕은 그리스와는 에게해를 격한 소아시아 서안의 로마속주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다고 아직 군선이 도착하지 않은 스쯔라로서는 바다를 건너 진격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는 사이 로마로부터 스쯔라를 치기위해 킨나가 파견한 프라쿠스指揮의 정규 로마軍團이 小아시아의 남단에 상륙했다는 정보가 드러왔다.
스쯔라는 양방의 적을 맞는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미토라다테스 쪽도 두 적을 맞기에는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폰토스왕은 두 적을 저울질한 끝에 강하다고 생각하는 쪽의 적과 강화를 맺기로 했다.
카이로네아전의 패장 알케라오스가 강화사절로 스쯔라진영에 파견되었다.
스쯔라는 강화조건으로 다음 항목을 제시했다.
1. 폰토스왕은 침략한 지방 모든 곳을 포기하고 폰토스국경 내로 퇴각한다.
2. 이후 폰토스는 로마동맹국으로 복귀한다.
3. 알케라오스 지휘하에 있는 폰토스해군의 군선 일체를 로마측에 인도한다.
4. 폰토스군의 포로 탈주병 노예는 폰토스 측에 인도한다.
5.폰토스왕은 배상금으로 2만탈렌트를 지불한다.
스쯔라 측도 급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본 미토리다테스는 답신을 미루며 지여전술을 썼다.
그러는 동안 로마진영에 머물고 있던 카파도키아출신의 적 무장 알케라오스가 臥病, 스쯔라의 극진한 간병에 고마움을 느낀나머지 차라리 로마군 측에 종군하기로 결심하고 전향을 한다.
그사이 기다리던 루크루스의 해군선단이 로도스島로부터 도착했다.
스쯔라가 해군까지 겸비하게 된데에 심각성을 느낀 미토리다테스가 마음을 바꾸어 스쯔라와의 본격 협상을 결심한다.
스쯔라군이 로마의 정규군이 아니라는 약점을 이용해서 최대한 유리한 조건의 강화를 꾀한 미토리다테스는 두 수령간의 직접협상을 제의,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헤레스폰터스해협 바로 동쪽에 있는 항구 다다넬스에서 회담하기로 했다. 회담 시기는 BC.85년 봄으로 결정된다.
*일국 帝王을 무릎꿇린 로마武將 스쯔라의 氣慨
동서고금 수뇌회담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서 양측간 유불리해질 수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는 중립지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상식이다.
스쯔라는 폰토스왕 세력 하에 있는 다다넬스에 대한 유불리를 고려치않고 수락했다.
다다넬스가 회담장으로 결정된 단계에서 미토리다테스는 강화를 요구해온 스쯔라를 마중하는 것은 자기쪽이라는 무대 만들기에 성공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힘을 과시하는 경향이 강한 오리엔트의 君主답게 보병 2만에 기병 6천, 거기에 戰車隊까지 이끌고 다다넬스에 나타났다.
그러나 스쯔라 측의 연출이 더 뛰어났다.
보병 2천 4백에 기병 2백이라는 경장으로 해협을 건넌 스쯔라는 한발 먼저 다다넬스에 도착하자말자 로마식 진영을 구축해 버린 것이다.
이것으로 강화를 요청해온 로마의 장군을 폰토스왕이 마중하는 구도가 완전히 역전되고 말았다.
하지만 신하의 기병들에 전후좌우 굳게 둘러싸여 로마진영에 들어온 왕은 금은 보화로 몸치장한 모습이 로마병들의 시선을 끄는데는 성공했다. 한편 진영의 중앙에 서서 마중한 스쯔라는 총사령관용의 진홍빛 긴 망토는 걸쳤으나 그밖에는 로마장군의 평소 군장으로 투구도 벗은채였다.
마르기는했으나 키가 큰 스쯔라는 풍채좋은 왕에 의자도 권하지 않고 내민 손도 잡지않으채 다짜고짜 따졌다.
<내가 제시한 조건에 당신은 강화를 받겠는가?>
예의를 무시당한 미토리다테스는 불의에 한대 얻어맞고 화도 내지 못했다.
불의에 일격을 당한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스쯔라는 다그쳤다.
<물어본 쪽에 답을 해야지. 勝者라면 무언으로 있어도 되지만....>
미토리다테스는 변명하려 했다.
자기가 먼저 저지른 침략전쟁의 원인을 諸神과 로마屬州의 통치관들에 책임을 전가하는 변명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스쯔라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폰토스王인 미토리다테스는 연설의 명수라는 평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으나 그 평판이 옳았다는 것을 지금 나 자신이 납득하는 바다. 그러나 이 장소에서는 그와같은 것을 할 틈이 없다. 그 조건의 강화에 대한 可否만 듣고 싶다.>
불의에 일격을 찔린 미토리다테스는 엉겁결에 <에스>하고 대답했다.
여기서 비로서 스쯔라는 여섯 살 아래의 미토리다테스의 오른 손뿌인가 어깨까지 껴안고 調印 탁상으로 데리고 갔다.
--일개 무장으로서 일국의 帝王을 상대해서 機先을 제압하고, 저토록 明敏하고 氣慨 넘치는 스쯔라의 협상 자세야말로 만고의 協商敎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장대한 로마史에서 보면 한갖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지만 지금 南北이 대척점에서 회담을 해야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회담대표들의 자세를 그려보며 본받기를 바래 회담장면을 좀 길게 늘어놓았다.--
결국 두 교전 당사자간의 협상은 시작도 전에 끝나버리고 만것이다.
조인을 마친 미토리다테스는 그길로 폰토스에 돌아갔고, 소아시아 西岸의 로마屬州로부터는 폰토스軍의 전면 철수가 완료되었다. 이렇게해서 폰토스에 짓밟힌 비티니아와 카파도키아의 王도 각각 왕위에 복귀한다.
폰토스의 軍船 70척이 스쯔라에 인도되고 루크루스 지휘하의 로마海軍에 편입됨으로써 이제 독립해군다운 모습을 가추게 되었다.
강화가 성립되고 전쟁은 멎었으나 스쯔라 휘하 장병들은 로마시민을 8만이나 죽인(-57-에서 기 언급) 적에 대한 강화조건이 너무 관대하다며 항의 했으나 스쯔라는 병사들을 설득했다.
<우리가 미토리다테스와 강화를 맺지 않으면 미토리다테스는 핀브로스(스쯔라軍 토벌을 위해 킨나가 파견한 로마군)와 맺지 않겠나. 손을 잡은 兩軍을 상대해서야 우리라고 장담할 수 있겠나.>
병사들은 납득했다.
폰토스王을 물리친 스쯔라에게는 아시아로 향할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해군도 수중이 있고 헤레스폰토스를 동쪽으로 건너 소아시아에 군을 진출시킨다.
평화를 찾은 소아시아를 재편성하는 일이었으나 그보다 먼저 현지에 상륙해서 폰토스군과의 서전에서 이긴 킨나 파견의 정규 로마군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결론만 말하면 스쯔라의 출국 전 최고신 주피테르神殿까지 가서 서약한 약속을 깨고 자신을 國賊으로 단죄한 집정관 킨나의 파견군 1만 5천의 병사들은 소아시아의 주둔지에서 사령관 핀브로스를 배척하고 모두 스쯔라軍에 합류했다.
이로써 스쯔라군은 기존 병력에 로마 파견 정규군 1만 5천을 더해 비정규군으로서의 군세가 더욱 강화되었다.
따라서 휘하 장병을 잃은 핀브로스는 로마로 돌아갈 면목없이 스쯔라가 제공하는 배를 거절하고 페르가몬神殿에 가서 자결로 자신의 무능을 탓했다.
하지만 스쯔라는 거기서 바로 軍을 이탈리아로 진군시키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스쯔라 같은 군 지휘관 우리는 가질 수없나? 생각해본다. -후 속-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