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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敎訓 로마史Digest-51-
*스키피오, 凱旋式은 희생하고 執政官 되어 아프리카遠征 전초 시칠리아에 가다
로마는 소수지도의 寡頭體制 공화국이다.
관료제가 완비되지 않은 공하정 로마에는 지도층을 형성하는 元老院이 있다.
원로원을 설득해서 비로서 입안된 정책이 시행되는 시스템 하에서 辯論術이야말로 최강의 무기이다.
간단 명료한 어법이 특색인 라틴語를 구사한 변론의 正攻法에 익수해 온 스키피오는 한니발과의 10년 전쟁에서
전쟁은 정공법만이 아닌 회유 기만전술도 승리하는데 필요 전술임을 깨달았다.
스페인의 카르타고勢力을 구축하고 4년만에 귀국한 스키피오는 원로원 의원이 되려면 아직 몇개월이 모자라는 29세에 불과해 원로원에 전황보고만 하고 凱旋式은 요구하지 않았다. 전략단위 2개 군단을 지휘하는 40세 이상의 집정관이 아니었으므로 관례를 깨면서까지 과두정의 상징적 존재인 원로원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스키피오는 로마 武將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개선식을 희생하고 대신 다음해 BC.2005년도의 집정관 입후보를 허락해 달라고 원로원에 요구했다. 집정관 적령은 40세이지만 다음해 스키피오는 10년이나 모자라는 30세에 불과하다.
원로원은 戰功으로 보면 개선식도 집정관 후보도 넘치는 자질과 자격을 갖춘 스키피오에 대한 대우에 고민했다.
원로원 밖 광장은 경향 각지에서 스키피오를 집정관으로 선출하겠다며 운집한 로마시민권자들로 매일 가득찼다.
원로원은 이마저 거역할 구실이 궁색하다고 판단했다.
스키피오는 집정관 후보로 승인되고 市民集會에서 압도적 다수로 당선되었다.
원로원이 결정하게 되어 있는 2명의 새 집정관 任地문제가 또 스키피오의 뜻을 가로 막았다.
스키피오는 北아프리카 파견을 요구했지만 칸네會戰 참패 이후 지구전법을 시종 주장해온 이탈리아방패 별명의
원로원 제1인자 파비우스가 완강히 반대했다.
여기서 스키피오의 對한니발戰 전략 수정 여부을 둘러싼 이탈리아의 바패 파비우스와 이탈리아의 창 스키피오의 명쾌한 라틴어법을 동원한 변론 공방전을 일별할 필요가 있다.
먼저 파비우스의 주장이다.
<광장 주변에서는 나의 반대는 젊은 무장의 빛나는 전과에 대한 질시라는 소문이 파다한 것같다.
나라는 사람은 제 자식보다도 어린 그에 대한 질투 같은 것 가질처지도 아니다.
나의 반대는 순수 국익을 생각해서이다.
집정관이 된 이상 스키피오의 임무는 이탈리어에 둥지 틀고 있는 한니발을 격파하는데 있다.
아프리카에 갈 일이 아니다. 북아프리카를 공격하면 한니발도 이탈리아를 떠날 것이라고 하지만 그 보증은 이디에도 없다.>
파비우스는 "장화 발끄트머리'에 몰려 있기는 하지만 한니발의 위험성이 감소했다고는 볼 수없다고 예를 들어 설명해 나갔다.
<젊은 그대는 태어나지 않았을 때이니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는 제1차 포에니전쟁 당시의 집정관이었던 레그루스에 의한 아프리카遠征 실패라는 쓰라린 경험이 있다.
당시와 같이 동맹국 하나도 없는 아프리카에서 레그루스의 예를 되풀이 하지 않는다고 말 할수있는가.
그리고, 가령 한니발이 이탈리아를 퇴거해서 아프리카에 돌아간다 하더라도 보급로가 단절된 상태에서도 저만큼 강인한 그가 지원이 충분한 본국에서는 과연 어떨것인가 생각해 보고서 하는 요구인가.
우리가 젊음에도 불구하고 스키피오를 집정관으로 한 것은 로마와 이탈리아를 위해서이다.
그 개인의 야심을 채와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로마는 英雄을 요치않는 국가이다.>
스키피오에게는 집정관이 되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그마저도 상당한 양보라는 것이다.
파비우스는 한니발을 바다에 밀어 떨어뜨리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라면서 연설을 다음과 같이 맺었다.
<우선 할 일은 이탈리아에 평화를 회복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가는 것은 그 다음이다.>
원로원은 파비우스의 발언에 거의 결정적으로 기우는 분위기였다.
이어 스키피오가 발언을 구하고 회의장 중앙에 나가 정중한 어조 논지를 명쾌히 펴나갔다.
<파비우스 막시무스 그리고 원로원 의원 여러분, 나는 파비우스의 나에 대한 반대가 질투때문이라고는 결코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위대함을 부정하려는 생각도 전혀 없다.
그러나 나이는 젊으나 전장경험은 젊지 않다고 보는 나의 생각으로는 이제까지 성공해온 것도 필요하다면 바꾸지 않으면 안되다는 것이다. 지금이 적시라고 생각한다.>
지금이야말로 기회라고 한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스페인 제패로 서부전선을 해결함과 동시에 그해 마케도니아王國과의 講和도 성립한 상태이다.
한니발과 동맹하여 이탈리아전선에 참전하겠다던 마케도니아가 결국은 로마와 단독강화를 맺는 족을 택했던 것이다.
한니발을 장화 끄트머리에 몰아넣고 1년이 되도록 이도 안먹힌 상황에서 지금 스키피오는 주장한다.
<꼭 5년 전에 여기 원로원에서 내가 스페인에 파견해 달라고 요구했을 때는 반대 없이 허락했음에도 나이를 더 먹은 지금에 반대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당시 내가 부딛친 어려움은 지금 이상이었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전사로 궤멸되다시피한 스페인戰線에서 그것을 회복시켰을 뿐만아니라 완전 제패까지 이룩한 업적은 인정해 줘도 괜찮치않은가.
지금까지는 카르타고가 로마에 싸움을 걸어왔다.
이제부터는 로마가 카르타고에 싸움을 걸 차레다.
한니발이 이탈리아에서 해온 것과 똑같은 것을 로마인이 아프리카에서 하는 것이다.
적의 본거를 찌른다는 것이 얼마나 유효한 것인가를 한니발이 여실히 보여주었잖은가.
그런데 한니발의 消耗를 기다린다고 하지만 그는 아직 나이 마흔하나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얼마만큼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가.>
이어 30세의 스키피오는 70세의 파비우스를 향해 말했다.
<파비우스 막시무스, 당신이 내게 충고해 주었듯이 나는 어차피 한니발과 대결하게 됬겠죠.
그러나 그것은 그가 먼저 걸어오는 것을 기다려 싸우는 전장이 아닙니다.
내가 그를 회전 밖에는 길이 없게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승리한 포상은 카르타고 그것입니다.
카라브리아地方의 반파된 城砦가 아닙니다!>
원로원 회의장은 공기는 상당히 변했다.
파비우스 쪽에 기울었던 의원들이 스키피오에 동조하는 사람이 늘어 반 반이 되었다.
원로원의 양분은 귀족대 평민의 계급별이 아니라 고령층 파비우스에, 청장년층은 스키피오에 연령별 갈림이었다.
양자의 변론이 끝나고 절충안으로 스키피오의 임지는 아프리카가 아닌 시칠리아로 결정되었다.
그는 시칠리아 현지에서 우선 국고 지원으로 7천명의 지원병을 모집해서 군단을 편성하게된다.
이제 한니발이 천적 스키피오를 피해 갈 길은 아무대도 없이된다.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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