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가 나타났다” 어느날 양치기 소년은 여느때 처럼 양을 치다가 심심해서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친다. 물론 혼도 났지만 자신의 거짓말에 마을 사람들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모습을 보고 재미삼아 또다시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친다. 또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세 번째는 진짜로 늑대가 나타난 것이다. 양치기 소년은 겁에 질려 “늑대다~”라고 외쳤지만 막상 늑대가 나타났을 때는 마을 사람들이 오질 않아 양을 잃은 것은 물론 자신도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다. 양치기소년의 이솝우화는 정직과 신뢰의 중요성에 대한 메시지가 있다. 양심과 더불어 거짓과 허세의 두 얼굴을 지닌 인간의 본성을 찌르는 풍자와 해학은 또있다.
안데르센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이야기다. 자기 과시욕이 많은 어리석은 임금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옷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한다. 재단사는 꾀를 발휘해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인다는 옷이라고 임금에게 말하고 입혀준다. 임금은 보이진 않지만 자신이 착한 사람이란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벌거벗은 채로 길거리에 나갔다가 결국 망신만 당한다. 사람들은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면서도 착한 사람들한테만 보인다는 소문을 의식한다. 사실대로 말해버리면 자기가 나쁜 사람으로 비쳐질까봐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보이는 듯 멋있다고 박수를 친다. 그러나 어린이는 사실대로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깔깔 웃어 버린 것이다.
결국 김정은의 “늑대다~” 공갈포가 먹혀들어간 셈인가? 그동안 미국은 “누구도 한반도의 분쟁을 원치 않는다”며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왔다. 하지만 정황상 ‘김정은 다루기’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예컨대 “비핵화라는 방향으로 간다면 대화는 시작될 수 있다”는 발언도 그동안 북한의 도발위협에 위력적인 최첨단 무기를 앞세워 무력시위 하며 김정은을 압박해온 모습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워싱턴포스트지에 “지금은 북한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어서 무서운 상황” “걱정을 과장하는 게 아니다”라며 최근 김정은의 핵 도발을 염두에 둔 미 정부 당국자의 의미심장한 발언도 이와 무관치 않다.
최근 케리 국무장관이 방한 직전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에 대화를 제의한 것도 어쩌면 그 연장선에 있을지도 모른다. 케리 보따리에 '핵 없는 한반도를 위한 북한과의 대화' 메시지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속마음도 확인이 되었다. 따라서 이 협상 카드가 성립되면 앞으로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갖고 대화 분위기를 이끌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김정은이 거부할 경우 한미 양국, 특히 주도한 미국은 벌거벗은 임금님 신세로 전락될 것이다. 결국 당분간 북한을 통제할 만한 레버리지(지렛대)도 없어지고 자칫 중국에 주도권이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제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준 단호함도 미국의 “대화제의”라는 싸인 한방으로 끝나게 됐다는 점이다. 그동안 입으로만 강경자세와 단호한 조치 뿐이었고 북한의 심리전에 현혹되어 우왕좌왕했던 모습만 남기게 되었다. 어쨌튼 미국의 대화제의 카드는 결과적으로 버릇만 나쁘게 만들어 버리고 오판가능성만 높혔을 뿐이며 스스로 벌거벗은 꼴이다. 서울 불바다 협박에 이어 한반도 불바다 협박으로 국민의 자존심은 어찌되었든 상관이 없었다. 오로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공자님 말씀으로 일과성으로 지나칠 가능성이 커졌다. 그동안 애 탄 순진한 국민들만 호들갑을 떤 셈인가?
케리 방문 이후 일련의 과정을 보면 최근 김정은 생쑈는 미국의 '대화제의'라는 중재카드로 해프닝이 되어 막을 내릴 가능 성이 커졌다. 그렇게 되면 김정은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허풍선이의 태도를 가지고 더욱 기고만장할 것이다. 마치 "나에게는 누구도 어림없지"하고 말이다. 민주주의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을 더욱 중요시 하고 있다. 이제 민주주의의 교범이라 자임했던 미국이 김정은의 겁박에 대해 묵인해 주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것인가? 이번 케리 국무장관의 방한에서 나온 첫 마디가 '대화제의' 카드이고 보면 그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누구를 탓할 일인가? 힘의 논리에 맞서는 길은 부국강병 뿐이다. 자립경제와 자주국방은 자주성 확립의 기초임과 동시에 평화와 번영의 기반이다. 사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배타적 시각으로 봐 왔다. 최근 사태에도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다”며 도발을 곁코 용납 않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북한은 뻔한 수순, 미국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다. 여전히 어떤 힘이 작동되고 있는 국제질서 앞에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한다는 사실이 재입증되었다. 이번 미국의 셈 법은 그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어쨌튼 양치기 소년 김정은의 공갈로 미국이 벌거벗은 임금님 꼴이 될 가능성이 커져가고 있다. 지켜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