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100주년 동상 막는 이들 "기념 대상 아니다" 주장하지만
새 시대 연 지도자를 둔 국가들 過보다 功 주목하는 것 아는가
김태훈 여론독자부장 일제강점기 경상도 산골에서 태어나 상경한 내 아버지는 1960년대 내내 먹고살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런 아버지가 결혼도 하고 집도 장만한 뒤인 1977년 겨울 어느 날, 쌀막걸리를 사 들고 오시더니 가족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 "시골서 보릿고개 넘기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 쌀막걸리를 다 먹게 되는구나."
당시 정부는 국민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쌀 증산과 품종개량에 나섰고, 통일벼를 개발해 쌀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성공을 거뒀다. 박정희 정부가 이를 계기로 그동안 금지했던 쌀막걸리 제조를 허용하자 아버지는 그 술을 마시며 감격에 겨워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바라보지만 사분오열된 지금의 대한민국보다 고작 쌀막걸리 한 잔에 가슴 벅찼고, '잘살아보자'는 구호 아래 온 나라가 하나 됐던 그 시절이 좋았다고 했다. 그런 시대를 연 국가 지도자의 탄생 100주년에 기념우표 한 장 못 찍고, 기념 동상 하나 세우지 못하는 현실을 기막혀했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 동상 건립을 막는 이들은 "쿠데타와 유신의 과오를 저지른 박정희는 기념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들 주장대로 과(過)가 있으면 동상을 세울 수 없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세상에 널렸다. 새로운 시대를 연 지도자치고 허물 없는 인물을 찾기 어렵다. 미국 어디를 가든 건국의 아버지인 조지 워싱턴 동상과 조각상을 볼 수 있다. 그는 흑인 노예를 잔뜩 거느리고 노동력을 착취한 대농장주였지만, 오늘날의 잣대로 그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했다간 흑인들에게조차 정신 나간 사람 취급당할 것이다.
'이승만·트루먼·박정희 동상건립추진모임'이 제작해 경기도 고양에 보관 중인 높이 4.2m 크기의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추진모임으로부터 이 동상을 기증한다는 증서를 전달받았다. 기념재단은 서울시가 승인하면 이 동상을 기념도서관 마당에 설치할 예정이다. /이승만·트루먼·박정희 동상건립추진모임 제공 미·소 냉전(冷戰) 해체의 위업을 달성한 로널드 레이건도 재임 시절 감세와 소비 촉진을 골자로 하는 레이거노믹스를 밀어붙였다가 재정과 경상수지에서 쌍둥이 적자를 초래했다. 힘을 앞세운 외교와 전략방위구상(SDI) 등 무력으로 소련을 압박하는 그를 미 언론과 자칭 평화주의자인 카터 등은 전쟁광, 대결주의자라고 비난했다. 그와 함께 군축 협상을 타결한 고르바초프조차 회고록 '선택'에서 그를 "엄청나게 보수주의적인 신념을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표현으로도 부족한 사람, 공룡이었다"고 좋지 않게 평했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평가들은 레이건 동상이 미국 곳곳에 서는 것을 막지 못했다. 더 나아가 그의 탄생 100주년(2011년)엔 부다페스트, 바르샤바, 그단스크, 트빌리시 등 옛 동구권 도시들에도 소련으로부터의 자유를 선사한 그를 기리는 동상 건립 붐이 일었다. 올해 들어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도 자유의 뜻을 담아 레이건 동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방문한 베트남은 호찌민을 건국의 아버지라 여기지만, 그에게도 토지개혁에 저항하는 국민 1만~1만5000명을 살해한 어두운 과거가 있다. 그럼에도 베트남인들은 호찌민을 '박호'(호 아저씨)라고 부르며 존경한다. 1990년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념우표를 발행하고 하노이에 호찌민 박물관도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오른손을 들어 흔드는 인자한 모습의 호찌민상이 서 있다. 주석궁에도 호찌민 흉상이 있다. 베트남 지도자들은 이 흉상 앞에서 세계 각국 지도자들을 만난다. 트럼프 미 대통령도 이 흉상 앞에서 쩐다이꽝 베트남 주석과 악수를 나눴고,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도 재임 중 베트남을 방문해 호찌민 흉상이 내려다보는 앞에서 쩐득르엉 당시 주석 등과 회담했다.
이 나라는 박정희 동상을 반대하는 이들만의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과를 이유로 동상 건립을 막는다면,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려 할 때도 찬반이 갈려 싸우지 않겠는가. 박정희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 중흥의 소중한 경험을 자산으로 간직하기 위해서다. 김대중 노무현 100주년 때도 두 사람이 이 나라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동상을 세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