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논객열전 작업을 하면서 논객들의 명단을 일일이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다. 많은 활약을 펼쳤다고 느낀 논객의 글이 자세히 살펴보니 빈약하다고 느낀 것도 있었지만, 별 임팩트도 없이 스쳐 지나가버린 논객의 글이 반대로 중후하게 빛나고 있는 것도 발견하였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많은 논객들이 게시판에서 명멸해 갔다. 이렇게 많은 논객들을 불러 모아놓고 별로 이루어놓은 게 없다니, 책임감과 더불어 자괴감도 밀려왔다. 돌아다보니 게시판에 코를 박고 글질을 했던 것이 2003년인가 부터였으니, 나 역시도 다른 사람들처럼 벌써 사라져야 했을 것을, 무슨 미련이 있다고 여기에 나부끼고 있는 걸까.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는데, 사라지는 논객에게 사연이 없을 리가 있겠는가. 누구는 생업이 우선이라, 누구는 코드가 안 맞아, 누구는 생기는 것이 없어서, 또는 꼴 보기 싫은 놈이 있어서, 정치에 신물이 나서, 건강이 안 좋아서, 그 이유도 각양각색으로 게시판에서 등을 돌리고 떠나간다.
논객넷에는 약 6백이 안 되는 논객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더러는 애국적 사이트이기에 애국심만으로 회원 가입을 한 사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소시 적의 솜씨를 살려서 글을 한번 써보겠다고 회원 가입을 한 사람들도 많다. 논객열전에 명단이 들어간 사람들이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논객열전에 등재된 논객들은 두 분을 제외하고는 최소 10편 이상의 글을 게시한 사람들을 선별하여 명단을 올렸다. 두 분은 분발하라는 의미에서 등재시켰다. 따라서 한 편 이상의 글을 게시한 사람들 중에 논객열전에 등재되지 못한 논객들의 숫자는 계량해보지는 못했지만 대략 백여 명을 상회할 것으로 추측한다.
논설 한 편을 게시하고 중단된 것이나, 논설 3백 편을 게시하고 중단 것이나 사연은 위에 설명한 것과 다를 바가 없겠지만, 중단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자원의 고갈'이다. 글을 쓰는 것은 내면의 감상을 퍼 올리는 것이다. 그 내장된 감상이나 지식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 글쓰기는 중단된다.
논객은 잔잔한 호수에 떠있는 백조와 같다. 백조는 우아하게 물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그러나 수면 아래에서는 백조의 물갈퀴가 가라앉지 않기 위하여 쉬지 않고 두 발을 휘젓고 있다. 논객 또한 그러하다. 사라지지 않기 위하여 쉼없이 정보를 습득하고 사색하고 고뇌하여야 한다. 이런 것을 약간이라도 게을리했다면 논객은 게시판 아래로 침몰하게 된다.
글쓰기는 그런 것이다. 회장이 강요한다고 해서 저절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다. 논객넷의 집행부는 논객들을 게시판 앞에 데려다 놓을 뿐이다. 그 다음의 모든 것은 논객들의 물갈퀴 질에 달렸다. 논객넷이나 집행부는 논객에게 글을 쓰라고 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자발적이어야 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객넷에는 위에 설명한 이유가 아닌 데에도 사라진 논객들이 있다. 그들은 글쓰기를 원했고, 글쓰기에서 애국을 찾았고, 글쓰기에서 삶의 자부심까지 가졌던 논객들이다. 그래서 영원히 논객넷에서 살기를 바랐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바램은 그들의 뜻과는 반대로 흘러갔고, 그들은 논객넷에서 사라져갔다.
나는 그들의 간판을 검은색으로 만들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저쪽의 세계에 그들을 향한 나의 뜻과 소망이 약간이라도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논객 시절의 한 때를 그들과 함께 보냈던 뜨거운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가슴 한 켠에서 지나간 시절을 추억하는 그 어떤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그들의 검은 간판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경배를 드렸다.
수양산, 지중해, 발명소년, 그리고 간판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논객넷의 초대 부회장을 지내던 김동주 부회장. 이들은 모두 논객넷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던 시기에 유명을 달리 했다. 이들의 애국적 열정이야 필설로도 다할 수 없거니와 어찌하여 하늘은 이토록 무심케도 뜨거운 애국자들만을 골라서 데려갔단 말인가.
김동주 부회장은 박정희바로알리기국민모임의 대표로서 아스팔트 활동을 해오던 최고참 급에 속하는 애국투사였였다. 수양산님은 논객넷 고문이셨고, 황해도 출신으로 6.26 당시 북한군에 징집되어 북으로 끌려가다가 목숨을 걸고 탈출했던 분으로, 빨갱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서는 분이었다.
지중해님은 논객넷 창단멤버로서 애초부터 대표논객 활동을 했었고, 그에 걸맞게 많은 분량의 글을 남겨놓았다. 발명소년님은 교직에 몸을 담고 있었고, 새로 부임한 학교 이사장의 아들과 학교 민주화 문제로 법적 소송에 얽매이다가 감옥에까지 갔다 왔던 전투적인 분이셨다.
수양산님은 고령의 나이로 젊은 논객들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을 펼치면서 '로마사 다이제스트'까지 연재하시다가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김동주 부회장과 지중해님은 지병이 있던 관계로 불시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한 마디의 이별사도 나누지 못해 지금까지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다. 발명소년님 역시 출옥하여 얼마 후 갑자기 타계하셨다.
검은 간판을 만들면서 한 때의 아련한 추억들이 떠올랐다. 논객넷 모임 때마다 본부 겸 숙소로 사용하던 김동주 부회장의 충무동 오피스텔, 논객넷 모임 때마다 한 번도 결근이 없었던 지중해님, 작년 박달재 모임에 불참하며 연락이 닿지 않더니 얼마 후에 슬픈 소식을 들어야 했다. 발명소년님은 수감 수절에 영상 면회를 몇 번인가 했는데 그때마다 발명소년님은 나가는 데로 세상을 뒤집겠다며 씩씩한 모습이었다.
수양산 고문님은 한때 제주에 자주 오셨다. 아들 빚을 정리해 주는 바람에 가세가 기울어 피난처를 만들듯 제주에 조그만 밀감밭 하나를 장만하여 자주 오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양산님과는 많은 추억이 있고, 그때의 밀감밭 농막에서 논객 단체를 만들어보라고 부탁하던 말씀이 오늘의 자유논객연합과 논객넷 태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수양산 필명은 황해도 수양산님의 고향에 있는 산 이름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수양산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자주 말했던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많은 논객들이 피와 땀을 흘리며 스러져 가고, 유명을 달리하여 저 멀리로 떠나갔건만 세상은 달진 것 없이 더욱 빨갱이들만 날뛰는 세상이 되었으니.
죽어서도 저 하늘에서 논객넷을 보우하시는 검은 간판의 논객님들이여. 아직 나는 살아남아서 세상을 바꿔 놓은 것 하나 없으니 부끄러울 뿐입니다. 자유논객연합이 출범할 때 같이 죽고 같이 살자는 그 약속은 허공에 흩어지고 아직도 나는 논객넷 게시판에서 헤매고 있으니 당신들을 만날 때에 그 무슨 말로 변명해야 할지 아득할 따름입니다.
비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