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언어폭력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5일
고(故) 백남기 씨를 애도하는 추모사를 발표했다.
박 시장은
1)흙의 정직함을 믿고 순박하게 살아온 한 농민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불의에 맞서서 싸우고 누구보다 먼저 행동했던 선량한 한 국민이었던
백남기 농민을 이렇게 처절하게 떠나보낸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2)물대포는 명백한 국가적 폭력으로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 범죄행위라며,
3)정부도 경찰도 책임자 그 어느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4)오히려 존엄한 당신의 몸에 부검의 칼날을 대려했다며
부도덕한 권력을 용서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날 집회에도 경찰이 소방수 사용을 요청해왔지만 이를 불허했다며
5)어떤 경우에도 경찰의 진압 목적으로 소방수를 사용하는 것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시장은 "최근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명명된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사실로 밝혀지고 있어
참으로 분노스럽고 절망스럽다"며
6)당신을 위하여, 당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나서겠다고 말했다.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위 박원순의 말을 解剖, 아니 剖檢을 해본다.
1)백남기가 흙의 정직함을 믿고 순박하게 살아온 한 농민이라고?
웃기는 소리 그만 작작해라!
백남기의 학창시절은 反抗의 계절이었다.
3번의 제적(除籍)은 그에게 훈장이다.
그것은 주체사상 운동권의 경력으로 충분하다.
그는 수도원에 들어가 피신하던 중
천주교인이 되고 한 때 수도사로 종교일을 하다가
박정희가 죽자 들불처럼 번진
"민주와의 봄"에 혼신(渾身)을 불사른다.
5.17계엄으로 퇴학을 당하고
고향에 내려가 잠시 농삿일을 하게 된다.
여기서 그는 "카톨릭 농민회"에 몸을 의탁하고
본격적으로 농민운동을 시작한다.
카톨릭 농민회 하면 우리는 서경원(徐敬元)을 기억한다.
密入北하여 金日成을 만나고 처벌되었으나
김대중 정권에서 그는 국회의원이 된다.
백남기도 그의 뒤를 이으려 했으나
그에게는 그런 행운이 뒤따르지 않았다.
그는 민주화투사를 열망(熱望)한 흔적이 여기 있다.
자녀들의 이름이다.
아들 백두산, 큰딸 백도라지, 작은딸 백민주화 등이다.
여러 설명의 필요가 없이 운동권 냄새가 짙게 난다.
그에게서 농민의 이미지는 별로 없다.
그가 살수차의 물을 맞고
장시간 死境을 헤메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그는 생전의 꿈을 접고 죽어서 그의 꿈을 이룩했다.
그가 바라던 것은 사회혼란이요,
조국을 적으로 삼고 반역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운동권 주사파 농민운동가"가 그에게 合當한 이름이다.
2)물대포는 명백한 국가적 폭력으로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 범죄행위라?
살수차(물대포)가 국가적 폭력이면 이것은 무엇인가?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의 사망사고는
박원순이 저지른 살인사건이 된다.
그러니까 박원순은 살인범으로 체포되어야 마땅하다.
3)정부도 경찰도 책임자 그 어느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연평해전에서순직(殉職)한 해군장병의 영결식장에
당시의 대통령 김대중이나 총리는 왜 오지 않았나?
아! 일본에서 열린
한일월드컵 결승경기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구요?
그러면 순직한 해군장병은 개죽음이고
백남기의 죽음은 존엄사(尊嚴死)입니까?
4)오히려 존엄한 당신의 몸에 부검의 칼날을 대려했다?
剖檢은 사망원인을 정확하게 밝히는 수단이다.
그가 살수차의 물에 맞아 죽었다고 치자.
떳떳하게 부검을 통하여 그 원인을 밝히고
국가를 상대로 그 책임을 물으면 된다.
그렇게 하라고 현대의학이 있는 것이다.
떳떳한 길을 놔두고 왜 음습(陰濕)한 길을 고집하는가?
5)어떤 경우에도 경찰의 진압 목적으로 소방수를 사용하는 것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
서울시장은 언제부터 경찰의 업무까지 통제하는 권한을 가졌는가?
憲裁에 권한쟁의 심판을 받을 용의는 있는가?
그러니까 대통령병 환자라는 말을 듣지 않느냐?
6)당신을 위하여, 당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나서겠다?
백남기의 꿈은 무엇인가?
그가 진정으로 농민이라면 豊年이 드는 것이 꿈이 아니더냐?
풍년은 토질과 기상조건이 좋아야 드는 것이다.
박원순은 능력이 많아서
토질과 기상까지 제어하는 능력이 있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