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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북경을 가다.
중국생활 12년차 이지만 산동성 이남은 꼴방구리 쥐 드나들듯 했지만, 그 이북은 나와 각별한 인연이 없었던지 가 볼 기회가 없었다. 무슨 비즈니스라도 있어야 가겠지만 유람삼아 갈 시간도 경비도 아까운 거라. 뭐 하긴 12년간을 산동성 칭따오에 주재 하면서 칭따오 앞바다 모래사장구경을 딱 한번 했다면 나도 참 어지간히 게으르거나 여유가 없거나 낭만이 없는 놈이다. 그러구러 흐르는 세월 속에 내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마치 지난시절 우리네 시골양반이 살아생전 남대문구경 한 번 해보는 것처럼 어떤 이유를 붙여서라도 되국의 서울구경 한번 해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갈망(?)했던 되국 서울구경이 우연치 않게 이루어진 것은 친구 S사장의 비즈니스에 동참을 결심하고, 현지 거래선을 직접방문 상담을 나누기 위해 북경발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북경.
이런 생각은 가끔씩 했다. ‘언제고 시간이 나면 사랑하는 아내와 북경엘 가면 천안문과 자금성도 가보고 또 다른 관광지를 둘러보리라’하여, 이전부터 내 바람은 되국의 서울 땅을 밟아보는 것이었지 다른 의도는 없었다. 아내의 손을 다정히 잡지 않고 무슨 재미로 그런 호사를 누리리. 인천공항과 북경국제공항의 거리는 약1000km로 1시간 30-40분의 비행을 한다. 착륙 20분전의 기내방송이 있고, 고도를 낮추며 기수를 서서히 어느 방향인지는 모르되 비행기가 상공을 선회할 때 창밖을 내려다보니 약간의 스모그가 시계를 흐렸지만 그런대로 양호하다. 점점이 박힌 건물들, 획일적인 사회주의 표본인 붉은 색깔의 기와로 된 가옥들이 군데군데 군집한 모습들이 흐릿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언제나의 생각이지만 중국의 어느 도시를 가거나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은 그 붉은 지붕이 중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색깔로 내 머리에 각인되어있다. 가끔씩은 그 모습에 ‘아~! 이래서 빨갱이 종주국인가보다’라며 혼자 실소를 하는 경우가 있다.
아내를 배신(?)하기로 마음먹다.
사실 여객기가 정상 운항할 경우(이 대목에서는 조약돌 방장님께 누가 되겠지만...)시속 7-800km 이상으로 항진하다, 착륙 20분전 싸인이 떨어짐과 동시에 속도 또한 서서히 4-500km로 떨어진다. 아무리 속도가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4-500km의 속도를 20여분 간 상공을 날아간다고 생각하면 그 거리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만한 시간에 그만한 거리를 나르며 눈앞이 빙빙 돌 정도로 아래를 주시했지만 도대체 산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수천 피트의 상공에서 내려다 본 북경은 언덕하나 구릉하나 보이지 않는, 말 그대로 일망무제(一望無際)의 대평원이다. 순간 옆에 앉은 S사장을 툭 건드리며 ‘당신 만리장성 올라 봤어?’물으니 아니란다. 잘됐다 싶어 ‘여보! 우리 이번 참에 萬里長城 오릅시다.’라며 제안하니 S사장역시 불감청이나 고소원인양 ‘조~오~치!’라며 화끈한 확답을 한다. 언제고 시간이 나면 아내와 다정히 올라 보겠다던 철석같은 나의 맹세는 이렇게 발칙한 배신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북경과 만리장성.
상공에서 갑자기 아내를 배신하게 된 동기는, 순전히 끝없는 나의 호기심 발동이다. 일망무제의 대평원에 자리 잡은 북경을 내려다보며 예나 지금이나 중국의 오만(傲慢)함을 엿보는 것 같아 내심 씁쓸해 하며, ‘방어망(?) 하나 없는 저런 평원에 어찌 수도를 만들어 외적으로부터 보호를 받았을까?’였다. 북경은 원나라 이전까지는 계속 유연(幽燕), 연경(燕京)으로 불리었으며, 원대에 수도가 되었고, 이후 명대에 이르러 명나라 성조는 많은 노동력을 들여서 북경성(北京城)을 개조 건설하였으며, 원래 있던 원나라의 궁전을 모두 철거하여 궁성(宮城)즉, 현재의 자금성과 황성(皇城)을 지었단다. 이때의 궁성은 지금의 고궁의 형태로 남아있다고 한다. 다시 청대에 이르러 수도를 정한 후에 명나라 때 지어진 궁궐 및 성곽, 연못들을 모두 그대로 쓰며 오늘날까지 수도로 자리 잡았다니, 당시 중국대륙을 넘볼 외적이 있기나 했겠는가마는 그래도 그렇지 저런 허허벌판에 달랑 성채를 짓고 주변 국가를 호령한 자신감을 넘어 오만함이 엿 보이니 내 속이 아려왔던 것이다. 그런 상념에 잠겨 있을 때, 기수(機首)는 점진적으로 아래로 깔며, 아득히 멀리 험준한 산맥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솔직히 동서남북 어느 쪽인지 방향감각은 없다. 다만 혹시 ‘저 험준한 산맥 가운데 만리장성이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며 문득 만리장성을 오르고픈 충동이 든 것이다. ‘여보! 미안해! 다음엔 꼭 당신과 함께 오를께...^^*’하는 다짐을 속으로 하며.....
만리장성을 향하여 출발하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부터 북경시내를 구경하기 위해, 상담을 피해 일요일을 중간에 끼워 넣었었다. 시내 구경이 졸지에 만리장성으로 변한 것뿐이지 시간상의 하자는 없다. 토요일 저녁 만리장성을 가기위한 정보수집에 들어갔고, 택시를 대절하려고 마침 호텔 로비의 복무원들과 얘기를 나누는 도중, 택시는 자칫 바가지에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자신들이 알아보겠단다. 이곳저곳 전화를 하더니 내국인 단체관광객의 일원으로 참가하겠느냐는 의사를 물어온다. 다만 아침 새벽에 출발해야한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중국인과 함께 하는 것도 그리 나쁠 것도 없고 우선 생각 보다 너무 저렴한 가격제안에 마음이 당겼다. 소풍가는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나 싶었고, 한참을 이런저런 미몽에 시달리는데 귀청을 찢는 벨소리가 울린다. 모닝콜을 부탁도 하지 않았지만 장성(長城: 중국인들은 萬里는 생략하고 보통 장성으로 부른다)갈 차량이 대기했다고 운전기사가 직접 전화를 한 것이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쯤이다. 잠 많은 S사장은 그 요란스런 벨소리도 아랑곳 않고 아직도 코를 곤다. 장난기가 발동하여 그의 아랫도리를 꽉 잡으니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깬다. 차량은 7시에 출발 한다니 후딱 샤워하고 로비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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