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잖은 보수인사들이 문창극 후보를 자진 사퇴케 한 대통령에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며 신뢰를 깬 대통령과는 더 이상 같이 갈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대통령이 지명한 인사에 청문회 기회조차 주지 않고 물러나게 한 것은 신뢰의 화신 박근혜와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처사로 보이기 때문이다.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박대통령이 왜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배경과 이면을 찬찬히 살펴보자. (좀 길더라도 사안의 중요성에 비추어 인내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1. 우선, 문후보의 과거 발언으로 역사관과 위안부 문제 등 논란이 한창 시끄러워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감에도 당사자인 문후보는 적기에 명쾌한 해명에 실패함으로서 의혹과 논란이 증폭되었다. 결자해지 자세로 당사자가 조기에 적극적으로 충분한 해명에 나섬으로서 악화된 여론을 수습했어야 했다. “유감이다” “고소하겠다” “나중에 청문회서 밝히겠다”라는 미온적인 대응은 여론악화를 부추긴 면이 강하다. 이점에서 적기에 납득할 만한 적절 대응을 못한 문후보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2. “책임 총리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 질문에 “처음 듣는 얘기다”라는 답변은 총리후보로선 너무나 부적절한 대답이었다. ‘나라를 강력하게 개혁하라는 대통령의 강한 의지로 해석합니다’라고 왜 대답을 못할까. 또한, “어떤 총리가 되고 싶으십니까?”라는 질문에 답변을 피하는 모습에서 실망이 더해졌다. 국민 누구나 아는 책임총리제를 모른다는 이 사람이 과연 책임총리에 걸맞는 사명감과 결기가 있는 걸까 강한 의문이 필자에게도 들었는데 청와대라고 못 느꼈을까. 당초 기대와 달리 함량미달이라는 자체평가를 내릴 만도 했다.
3..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 역사인식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좌파처럼 일본이 자국에게 유리한 표현만을 부각시켜 친일파 총리 탄생이라는 선전공세에 박대통령은 적잖은 부담감을 느꼈을 법 하다.
4.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7.30 재보선 선거다. 세월호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데다 65%가 문후보의 지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여론 흐름에서 문후보를 그대로 밀고 간다면, 14석이 걸린 재보선의 패배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양당이 선거준비로 청문회는 선거가 끝난 후 열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선거 때까지 문후보를 그대로 안고 갈 수밖에 없으며 이는 선거표심에 악영향을 주어 선거를 망칠 수 있다. 청문회에서 낙마가 기정사실화된 문후보로 인해 아무 실익도 없이 선거만 망치는 결과를 가져오는 우를 범하게 된다. 결국 의석 과반수를 야당에 넘겨주게 되고 정국 주도권 상실로 야당에게 끌려가게 되는 여의도 참사가 발생하게 된다. 가뜩이나 국정에 발목을 잡는 야당의 행패로 노이로제에 시달리는 대통령으로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 아닐 수 없다.
집권여당의 맏형 격인 서청원 의원이 이러한 사태의 심각성을 보고하고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서 문후보 지명을 원점으로 돌린 게 아니냐는 추측이다. 그래서 서청원 의원이 제일 먼저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며 당을 살려야하는 서 의원 입장이기에 그를 일방 매도할 일이 아니다.
만일, 문후보가 명쾌하고 충분한 해명으로 불리한 여론을 반전시켰다면, 청문회도 없는 낙마는 없었을 것이다. 그게 안 되었기 때문에 선거를 포기할 수 없는 고충이 청와대에 있었던 것이다. 또한, 7.30 선거만 없었더라도 문창극 카드를 접지 않았을 것이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 영원한 진리는 없다. 내 말도 시대가 흐르고 상황이 바뀜에 따라 틀릴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한 제자가 “부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영원한 진리가 아닙니까?”고 질문을 하였다. 부처님은 “그것도 변한다. 지구의 자전축이 서서히 바뀌고 있어 언젠가는 해가 서쪽에서 뜨는 날이 올 것이다”고 답변하셨다.
이렇듯, 세상사에 영원불변한 절대성은 있을 수 없다.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절대 원칙도 절대 정의도 없다. 인간사 모든 게 가변적이라는 얘기다. 더구나 이상이 아닌 현실을 중시하는. 정치에서 영원불변의 절대적인 원칙과 정도가 어디 있겠는가? 끝까지 고수해야만 하는 것은 인간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러한 세상 이치를 알고 현 정국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문창극을 지키려면 선거를 망치게 되고 결국 야당에 질질 끌려 다니는 식물정권이 되는 판에 어느 위정자가 문창극 개인을 위해 국정운영을 담보로 할 것인가? 개인과의 신뢰를 지키려고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무책임 무기력하게 방치할 수 없는 것이 박대통령의 입장이다. 그렇다고 예수가 재림한 것도 아니고 뜨끈 미지근한 대응과 책임총리로서 강한 결기와 사명감을 보이지 못하는 미덥지 않은 인물에게선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원칙과 신뢰라는 잣대를 적용할 곳은 따로 있다. 전직 언론인과 교수 경력 외에는 그의 철학이나 능력, 역량 그 어는 것도 실증되지 않는 미지의 인물 한명을 나라와 국민보다 우선 시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안정적인 과반 확보로 정국의 안정을 기하고 국정 추진동력을 얻기 위해선 문창극 개인과의 신뢰를 유예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의 입장을 이해한다면, “민주주의가 죽었다” “박근혜가 우리를 속였다” “박근혜는 하야하고 문창극을 대통령으로 모시자”는 소리는 나올 수 없다.
비 온 후 땅이 더욱 굳어지듯, 이를 계기로 좌파 농간에 더는 흔들리지도 놀아나지도 않는 견고하고 건강한 보수 영역을 구축하여 7.30 선거를 대승으로 이끌고 애국 대통령에 힘을 실어드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