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고려 공양왕 4년) 조선 개국 전 이방원이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해 하여가(何如歌)를 부른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리라‘ 진심을 떠보는 노림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몽주는 단심가(丹心歌)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런 절의는 끝내 이방원의 심복 조영규에게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하고 만다. 여기서 '임을 향한..'의 '님'은 단순한 임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념의 ‘님’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목마른 계절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른바 '5ㆍ18 민중항쟁 33주년 기념행사위원회'와 시민사회 단체 등은 광주 5ㆍ18 민주묘지 '민주의 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특정 정부기관(국가 보훈처)이 부르라 말라고 하는 것은 반역사적 행위"라며 기념곡 지정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여기에 기름을 붓고 말았다. 정부가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배제키로 한 것과 관련해 최근 "5ㆍ18 기념식 주제가로 선정해 유가족과 광주 시민이 원하는대로 해줘야 한다"고 말해 민감한 시기에 그 파장이 미묘하다.
김무성 의원은 "5ㆍ18 기념식에 오랫 동안 불려왔던 노래를 왜 중단시켜 국론을 분열시키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5ㆍ18 기념행사용의 별도 노래를 제정하기 위한 예산이 책정돼 있다는데 아까운 예산을 낭비하지 말라" "가사 어디에도 반국가적, 친북적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과거 민주화 투쟁 시절 자신도 하루에도 몇 번씩 부른 민주화 투쟁 주제가였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무슨 의미로 그렇게 말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튼 과거 친박에서 친이로 배를 갈아 탄 후 박근혜 현 대통령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고 충고까지 했던 전력으로 보면 대단한 민주투사인 모양이다.
하지만 돌맹이 좀 던지고 머리 띠 동여맺다고 모두 민주화 운동이 아니듯, 님이라고 모두 똑 같은 임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북한이 대남공작용으로 만든 5ㆍ18영화 “임을 위한 교향시‘의 주제곡이다. 어느 시대이든 노래와 그림에 나타난 '님'은 작사가, 작곡가의 ‘님’이며, 그리는 사람의 '님'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음악이나 미술 등에 나타난 '님'은 그 작자(作者)가 만들 때 시대적 상황, 도덕성, 특히 작자가 가지고 있는 이념성은 매우 중요하다. 그 의도에 따라 어떤 작품을 듣고 보는 사람들에 대한 행동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임을 향한 행진곡'도 그 연장선에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12월 작곡된 민중가요로 광주사태 주동자로 그 후 밀입북한 윤상원을 기린 노래다. 이 곡은 황석영이 노랫말을 쓰고, 윤이상이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또 북한이 대남공작용으로 만든 5ㆍ18영화 ’임을 위한 교향시‘의 주제곡이기도 하다. 황석영은 김일성의 귀염둥이로 알려진 종북성향의 소설가이며, 윤이상도 김일성이 송두률과 함께 각별히 아꼈던 재독(在獨) 거물간첩이다. 황석영은 시나리오를 써준 대가로 25만 달러를 받았는 설이 있고, 윤이상은 이 주제곡을 깔아준 댓가로 부귀영화를 누렸다는 설도 있다. 이런 두 사람의 풍향과 궤적은 '종북본색'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황석영, 그는 1989년 3월 문익환 임수경 서경원 등과 함께 밀입북한 전후 다섯 차례 걸쳐 북한을 왕래하며 일곱차례나 김일성을 친견한 인물이다. 북한의 지령에 따라 '범민련'을 결성했다. '고려연방제' 관철을 위해 해외에서 활동하다가 1993년 4월 귀국 체포 구속된 골수 친북분자로서 국가보안법위반 반역행위 전과가 있다. 범민련은 '조국통일 3대원칙과 전민족대단결 10대원칙 및 고려연방 수립'이라는 '조국통일 3대헌장'을 강령으로 삼아 이를 실천해 온 인사들이 참여한 대남 적화혁명 전위대다. 미군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해 불법 폭력투쟁을 일삼아 온 이적단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밀입북한 황석영씨에 대한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임수경도 그랬지만 얼추 15만명이 들어간다는 북한 5ㆍ1경기장 연단에 서서 열광하는 군중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김일성 만세"를 부르며 찬양하는 모습이다. 대한민국을 향해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모습도 쉽게 지울 수 없는 장면이다. 그 연장선에서 보면 그가 말한 '님'도 자신이 지향하고 있는 이념의 ‘님’에 비중을 둘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위험천만한 이유인 것이다. 이러함에도 북한이 대남공작용으로 만든 5ㆍ18영화 “임을 위한 교향시‘의 주제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광주 5ㆍ18기념식에서 없이 부르게 해달라고 조르고 있는 모습도 볼썽사납다.
산너머에 연기가 나는 것은 거기에 불이 나고 있기 때문이요, 담 너머에 뿔이 보이는 것은 거기에 뿔짐승이 있기 때문이다. 희미한 기억의 저편에서 머리를 짓누른다. 죄의식의 퇴색이 문명의 한 가닥 징후일 수 있는가? 죄의식의 성장은 그 퇴색을 품에 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땅에선 아무도 딱부러지게 말해주지 않는다. 일상을 나부껴온 깃발만이 그 궤적의 풍향을 암시할 뿐이다. 황석영이 만든 님은 황석영의 님이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했을 뿐인데 어찌하여 홍시맛이 나냐고 묻는 격이다. '임을 향한 행진곡'도 단순한 노래가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면 그 저의를 직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님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