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해 계급 강등과 적화통일 진용재편
1. 인민군 차수에서 대장으로
김기남 노동당 비서는 이날 평양체육관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1주기 중앙추모대회에서 군을 대표하는 연설자로 최룡해를 소개하며 "노동당 중앙 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며 군 총정치국장인 인민군 대장"이라고 언급했다.
지난 4월7일 차수에 임명되고 나흘 뒤 군 총정치국장이 된 최룡해의 계급이 8개월 만에 대장이 된 것이다. 앞서 최룡해는 지난 2010년 9월 당시 후계자 신분이던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함께 대장 칭호를 받았다.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이틀 전인 이달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위성 발사 성공 평양시 군민경축대회까지만 해도 차수 계급장을 달고 나왔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김정은이 지난 4월 이후 '당→정→군' 순으로 주요 인물에 대해 검증(검열) 작업을 하고 있다"며 "최룡해의 계급 강등은 김정은 시대 북한 에서 이뤄지는 권력개편과 군의 조직·인사 개편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인민군의 당에 대한 충성을 보증하는 핵심연결고리일 뿐만 아니라 인민군의 정치사상을 총괄하면서 조선인민군을 적화통일 혁명무력부로 재건하는 책임을 담당하는 부서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현영철 총참모장과 더불어 조선인민군을 혁명군으로 재조직하고 있는 것이다. 후속으로 천안함 폭침 과 연평도 도발의 원흉 김격식의 인민무력부장 발탁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김정은 주도하에 선군정치 강성대국노선을 다그치면서 대남도발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2. 최룡해란 누구인가? (동아일보 탈북자 출신 주성하 기자)
원래 한국엔 최룡해가 1949년 생으로 알려졌는데 이번에 북한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룡해는 1950년 1월 15일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났다. 최룡해의 부친은 김일성의 절친한 빨치산 동료이자 인민무력부장(국방장관)을 지낸 최현이다. 최룡해의 모친인 김철호도 빨치산 출신이다. 최룡해는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최현은 1950년대까지도 김일성에게 사석에서 말을 놓는 유일한 인물이었 다고 한다. 목격자에 따르면 1950년 후퇴 때 최현이 후퇴하던 중 약속했던 기차가 역에 없자 전화통을 붙들고 “야, 일성이, 너 기차 왜 안 보내 줘”하고 호통쳤다고 한다. 최현은 김일성보다 빨치산에 먼저 투신한 사람이며 훗날 김일성 유일체제 구축에 기여한 공로도 누구보다 높다.
1956년 8월에 일어난 북한 최대의 권력투쟁이었던 이른바 ’8월 종파사건’ 때 최현이 회의장에 들어가 권총을 뽑아들고 친중파와 친소파로 대변되는 반대파들의 기를 꺾어놓았던 일화는 유명하다.
최현은 1970년대 초반에 후계문제가 부상할 때에도 김정일의 편에 서서 세습을 반대하는 인물들을 숙청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최현이 합세하는 바람에 힘을 얻은 김정일은 자신을 반대하던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와 처 김성애, 그리고 빨치산 선배인 최용건 등을 모두 숙청할 수 있었다. 김정일은 최현을 평생의 은인으로 간주했다. 이런 공로로 최현은 지금도 북한에서 충신의 본보기로 선전되고 있으며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도 여러 편이 제작됐다.
김정일과 최룡해의 인연은 이웃으로 살던 어려서부터 시작돼 오랫동안 끈끈히 이어졌다. 북한판 ‘태자당’ 멤버 중 가장 선두그룹에 서있던 최룡해는 김정일을 형처럼 따랐고 그와 똑같은 코스인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으며 거침없는 출세가도를 달렸다.
1980년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해외교양지도국장을 거쳐 37세밖에 안되던 1986년에 청년동맹의 수장 자리에 올랐다. 청년동맹은 노동당에 입당하지 않은 10대 후반~30대 중반 사이의 청년들을 망라하고 있는 조직이다. 김정일은 장차 자기가 권좌에 오르면 최룡해에게 노동당 조직부 제1부부장을 시키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내비쳤다고 한다.
김일성 부자의 절대적인 신임을 업은 최룡해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약 10년간 최대의 전성기를 이어갔다. 1989년 북한에서 개최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도 최룡해가 총책임을 맡았다. 1996년 1월에는 청년동맹의 명칭에 김일성의 이름을 붙여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으로 개명했다. 이 당시 청년동맹의 소속원은 800만 명에 달해 청년동맹은 노동당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권력조직이 됐다.
최룡해는 13차 축전을 준비하는 과정에 막대한 외화를 자신의 수중에 쏠릴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에 기초해 최룡해는 대규모 아사가 발생하고 있는 와중에서도 막대한 외화를 착복해 매일밤 향락의 파티를 일삼다가 1998년 군 보위사령부의 표적이 돼 숙청된다. 최룡해는 평양볼링장 지하실에 자신만의 특별 공간을 만들고 측근들을 끼고 성대한 연회를 열곤 했다. 다 김정일에게서 배운 짓이다. 물론 김정일이 이를 알면 가만두진 않는다. 버릇없이 자기 흉내를 내는 놈을 어떻게 용납할까.
최룡해는 예술선전대라는 명목으로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들을 뽑아 자기 옆에 둔다. 변태적 성행위(오럴섹스)를 하겠다고 이중 몇몇 여성에게는 프랑스 까지 데려가 32개의 이를 모두 뽑게 한 뒤 틀니를 만들어 준 사건은 북한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최룡해는 이 한 대를 뽑는 대가로 100달러씩 주었다고 한다. 1인당 3200달러를 준 셈이다. 일각에선 300달러씩 주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내가 알긴 100달러씩 주었다.
이 사건으로 숱한 사람들이 연루돼 처형되거나 수용소에 갔지만 정작 가장 큰 처벌을 받아야 할 최룡해는 김정일의 특명으로 평양 상하수도관리소 당비서로 좌천됐을 뿐 목숨은 구명한다.
이를 뽑히고 최룡해에게 농락당했던 여성들은 머리를 빡빡 깎여 수성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됐는데, 이들이 또 경비원들의 농락을 당했을 것은 분명한 일이다.
북한이란 이렇게 말로 설명이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회다. 죄를 저지른 놈은 버젓이 2003년 당 총무부 부부장(차관급)으로 재기한 뒤 2007년엔 황해북도 당비서로 발탁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북한을 방문할 때 분계선에서 웃음을 짓고 악수를 나눈 자가 바로 패륜아 최룡해이다.
3. 최룡해는 경제통? (한국일보 관련기사)
<주간한국>은 김정일 사망 직후인 4개월여 전, "'경제통' 최룡해 뜨고 장성택 막후로"라는 제하의 기사(1월9일 자, 2406호)에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과 '경제통'인 최룡해 당 비서가 김정은 체제의 기틀을 다지는 중심축이 될 것이며, 장성택 부위원장은 막후에서 전체를 조율하고 최룡해 비서가 전면에 나서 북한을 변화시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체적으로 장성택 부위원장이 당과 군에 자신의 사람들을 배치해 취약한 김정은 체제를 안정화시키면서 '먹고 사는' (경제) 문제를 중심으로 북한의 변화를 주도해 나갈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 당 대표자대회를 전후한 북한의 변신, 특히 김정은 체제로의 가속화는 <주간한국>의 예상대로 진행되고 있다. 즉 이른바 '장성택 사람들'이 대거 당과 군에 포진하면서 '경제'에 올인하기 위한 채비를 다지고 있다. 남한의 국가정보원장에 해당하는 국가안전보위부장에는 25년 만에 장성택 부위원장의 직계로 알려진 김원홍 전 인민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이 임명됐다. 우리의 경찰청장과 같은 인민보안부장에는 장 부위원장의 측근인 이명수 상장이 유임됐다. 이명수 상장은 당 정치국 위원과 중앙군사위 위원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들 외에 군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이영호 참모총장 역시 장 부위원장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 당과 군이 명실상부하게 장 부위원장의 영향권에 놓이게 됐다. 장 부위원장의 부인이자 김정은 1비서의 고모인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이 당 비서로 승진한 것 외에 박종주 전 내각 총리가 당 부장으로 승진한 것도 장 부위원장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경제통'인 최룡해 당 비서가 총정치국장에 임명된 것은 두 가지 의미로 읽힌다. 우선 최 총정치국장이 인사권을 가진 만큼 당과 군의 인사를 통해 북한 체제의 중심축을 '김정은-장성택-최룡해'의 틀로 바꾸고, 이어서 '경제'에 최우선 비중을 두는 정책을 펴나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장 부위원장과 최 총정치국장은 김일성대 경제학과를 나왔고, 특히 최 총정치국장은 30대 때 김일성 주석 앞에서 개혁ㆍ개방을 주장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화폐개혁의 폐해를 직언할 정도로 강단 있는 인물로 평이 나 있다.
김정은 제1비서는 자본주의적 방식을 과감하게 도입하는 경제개혁을 촉구했는가 하면, 15일 김일성 생일 100주년 열병식 연설에서는 "인민들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고, 사회주의 풍요와 부를 맘껏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게 당의 확고한 방침"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당 대표자회 이후 경제 회생에 전력할 것으로 보이는 징후들이다.
북한과 오랜 무역으로 그곳 내부 사정에 밝은 베이징의 한 무역상은 "김정일 위원장 사후 장성택을 중심으로 최룡해가 전면에 나서 '경제'에 주력할 것"이라며 "남한이 '경협'을 통해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대남 강공 태세가 걸림돌이라는 물음에는 "그것은 북한의 독특 한 대화방식일뿐이다"며 "정치가 개입되지 않은 '경협'에서 돌파구를 찾아 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고 보면 최근 MB 정부의 대북 강경 태도는 북한의 외견상 나타난 도발에 대응한 측면이 있다. 북한 전문가들 중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일 통일부 통일정책 최고위과정 특강에서 북한에 '농지개혁'을 촉구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 한다.
앞서 베이징의 북한 소식통은 "대통령이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북한에선 농지가 아니라 농지를 개간할 호미나 쟁기 등 장비가 필요하고, 너무 산성화된 농지를 바꿀 퇴비가 급선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이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는 발언이라는 지적도 덧붙였다.
북한의 체제 변화가 점차 뚜렷해지는 만큼 우리 정부의 현명한 대처와 해법 찾기 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주간한국>의 기사와 이를 기초로 한 위 기사는 최룡해가 김일성대 경제학부 출신임을 근거로 개혁개방의 선도자가 될 것으로 추정하고 무역관계 대북소식통 의 너절한 내용을 붙여 헛방의 기사를 쓰고 있다. 조선노동당 내란집단의 실체와 본색을 전혀 모르면서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4.
김정은 체제가 가는 길은 적화통일
김정일은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북한경제를 도맡아 처리하던 경제사령탑 계획재정 부장 박남기를 자본주의 경제 방식을 끌어들이려다 덜미를 잡혔다면서 북한에 장기 암약한 남조선의 간첩으로 몰아 처형한 사실은 개혁개방에 대한 북한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김정은 장성택 최룡해 라인업을 바탕으로 개혁개방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 아니라 현영철 김격식(천안함 포침과 연평도 도발의 원흉) 등 군부 호전광의 최근 라인 업과 통일전선부장 김양건, 조평통 위원장 안경호 등 대남전략 수뇌 전통 라인업 과 함께 역대 최강의 적화통일 진용을 구성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오늘 열린 김정일 1주기 중앙추모대회에서는 인민군 대표로 이 자리에서 연설한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인민군 대장’으로 소개돼, 기존 차수 계급에서 1계급 강등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주석단에는 김양건, 문경덕, 박도춘, 김영일, 김평 해 당 비서, 태종수 함경남도 당 책임비서, 주규창 당 부장, 현영철 군 총참모장, 김격식 인민무력부장, 김영춘, 리용무,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 김원홍 국가 안전 보위부장, 리명수 인민보안부장, 강석주, 로두철 내각 부총리 등 당-군-정의 지도부가 자리했다. 또 일각에서 북한 권부에서 밀려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던 현철해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과 김정각 전 인민무력부장도 주석단에 모습을 나타냈다.
한편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악몽의 5년은 절대로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원’의 글에서 “남조선에 잘못된 정권이 들어서면 인민 이 불행해지고 북남관계도 진통을 겪게 된다”며 “남조선에서 진정으로 평화와 통일을 원하고 민족의 번영을 바라는 민주정권이 선다면 기꺼이 함께 손잡고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노동당 내란집단에게 이명박 정부 5년이 악몽의 5년인 셈이다. 대한민국 에게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이 잃어버린 세월 10년이듯이 말이다. 조선노동당 내란집단의 반응을 미루어 짐작컨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대한민국 입장에 서는 매우 시의적절했음을 반증한다.
2012.12.16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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