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가정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러나 교훈을 주는 경우에는 사정은 달라진다. 지난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 기간에 당시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은폐 의혹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은 인터넷매체 오마이뉴스였다. 그리고 한겨레신문이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MBC, KBS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모든 사실이 대부분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이른바 ‘병풍(兵風)’으로 불린 이 사건 오보(誤報)와 관련해 오마이뉴스는 3000만원, 일요시사는 2000만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역사의 버스는 지나간 뒤였다.
네거티브는 계속 이어진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는 병풍 의혹만 아니라 부인 한인옥 씨의 10억 원 수수설(이른바 기양건설 사건), 이 후보 측근이던 윤여준 의원이 로비스트 최규선 씨로부터 20만 달러를 받았다는 설훈 민주당 의원의 주장 등에 연타를 맞았다. 이것도 사실과 달랐다. 기양건설 의혹을 제기한 두 사람은 각각 징역 1년 6개월을, 설 전 의원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지만 선거가 끝나고도 한참 뒤였다. 자욱한 먼지 뒤에서 설훈씨는 지난 총선에서 다시 민주당 공천을 받았다.
알다시피 '병풍 사건'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업씨가 이회창 총재 아들의 병역비리 은폐의혹을 제기한 사건이다. 당시 대선정국을 흔들었던 초미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기양건설 사건'은 대선 1개월전 김선용, 이교식씨에 의해 이회창 총재의 부인인 한인옥씨가 기양건설로부터 10억원의 검은 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다. 또 '20만불 수수사건'은 설훈 의원이 2002년 기자회견을 통해 "최규선씨가 이회창 총재에게 전달해 달라며 한나라당 윤여준 의원에게 20만달러를 줬다"고 주장한 사건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 라고 말했다. 진정한 미래학은 현재에서 미래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서 현재를 관찰하는 것이라는 말도 그 연장선에 있다. 과거의 가정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대한 가정은 과거를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현재의 의미를 관찰하기 위해 서 있는 것이다. “역사에 가정는 없다” 흔히 말하는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도 역사는 가정이 아닌 사실로 나타나고 또한 역사는 진실을 은폐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정원 사건, 대통령 바뀔 수도 있었다” “지난 대선은 거짓을 기본으로 깔고 선거가 치러졌다" 최근 민주당 설훈 의원이 한 말이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문 후보가 3.6%, 100만 표 차이로 졌다" "당시 수사가 제대로 돼 50만 표만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면 결과가 뒤집혔다" "1.8%만 넘어오면 (결과가) 바뀌는데 100명 중 2명을 의미한다" "100명 중 2명 정도는 국정원 사건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마디로 그 사건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지난 대선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지난 대선은 거짓을 기본으로 깔고 선거가 치러졌다" "지금 대통령은 거짓 위에 세워진 대통령이 아닐까"라고 말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소가 웃을 일이다. 백번 양보해서 국정원 여직원 인터넷 댓글로 선거의 당락이 결정됐을 것이라는 가정도 어불성설이다. 또한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선거의 당락이 바꿔졌을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 것도 견강부회다. 그러고 보면 최근 민주당이 국정원 여직원 댓글 문제를 조직적으로 문제화시키고 있는듯 하다.
문희상 당비대위원장의 말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상부 외압이 있었다고 단정짓고, 최근 광주에서 열린 시당 대의원대회에서 "권은희 과장이 양심선언을 하지 않았다면 이 엄청난 사실이 그냥 묻힐 수도 있었다" "그 용기 있는 말로써 그분은 광주의 딸이 되었다"며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주당은 당력을 총동원해서 광주의 딸, 권은희 과장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면 권은희씨를 양심있는 내부고발자로 추켜세우면서 이슈화시키겠다는 저렴한 노림수를 엿볼 수 있다.
인간은 착각과 망각현상이 있기 때문에 꿈과 기대속에서 세상을 살아간다. 사실 착각도 경우에 따라 나름대로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한다. 우리가 “만약에”라는 가정법을 자주 거론하는 것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지난날 네거티브 정치가 만들어 낸 우리시대의 일그러진 망령이 주는 교훈은 많다. 어쨌튼 정부 선택을 그르치게 만들어 나라 운명을 바꿔버린 주체가 '거짓 위에 세워진 대통령'이라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민주당의 착각은 자유다. 다만 네거티브 정당의 본색을 드러낸 '설훈의 추억' 때문에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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