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에서 서쪽으로 한림을 지나 일주도로를 달리다보면 낯선 풍경과 마주치게 된다. 그 풍경은 길가를 따라 노란 밀감밭이 펼쳐진다거나 널따란 목장지대의 푸른 초원이 펼쳐진다거나 하는, 우리가 익히 보아오던 제주의 풍경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여기는 한림읍 월령리, 한림읍의 서쪽 끝에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월령리의 일주도로변을 따라 울퉁불퉁한 돌밭들이 어지럽게 널려진 것이나 도로 옆으로 파란 바다가 펼쳐진 것은 제주의 풍경이었지만 월령리 도로변의 밭에는 낯설고 거친 선인장들이 가득했다. 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해 놓은 밭에 선인장들이 무단으로 들어서서 잡초처럼 자라난 것일까. 선인장이 들어찬 밭이 두어 군데, 아니면 대여섯 군데만 되었더라도 농부들이 선인장 농사를 지었을 것이라고 짐작했겠지만, 월령리에는 흡사 시위라도 하듯, 아니면 마을을 차지한 점령군처럼 밭마다 집집마다 선인장들이 들어서 있었다.
월령리가 선인장 천국이 되어버린 것에는 사연이 있다. 월령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선인장 군락지가 있다. 천연기념물 제429호 선인장 군락지는 월령리 마을 바닷가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월령리에 자생하는 선인장은 형태가 손바닥처럼 생겼다하여 마을 사람들은 '손바닥선인장'으로 부른다.
월령리 손바닥선인장의 고향은 저 멀리 멕시코다. 아주 옛날 옛날에 멕시코의 어느 바닷가에 살았던 선인장 씨앗 하나가 망망대해의 태평양을 떠돌다가 구좌읍 하도리 토끼섬의 문주란처럼,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바위투성이 뿐인 월령리 해안가에 도착했다. 황폐한 사막에서도 잘 자라는 선인장에게 월령리 갯바위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고운 모래가 펼쳐진 월령리 옆의 금능 해수욕장이나 흙이 많은 판포 바닷가는 선인장의 체질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멕시코산 선인장은 월령리 바닷가 투박한 바위틈에 둥지를 틀었고 자손들을 번식시키며 자신들의 영토를 넓혀 나갔다. 마을사람이 보기에도 거친 곳에서도 말라죽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주는 선인장이 기특했다. 그러고 보니 쓸모도 있었다. 혹시나 집에 들어오는 쥐나 뱀을 막아줄까 하여 집 둘레의 돌담에 심었더니 역시나 쥐나 뱀이 침입하는 것이 줄어들었다. 선인장 열매는 주로 소담제나 해열제 등에 효과를 보여 민간약으로도 쓸모가 있었다.
그러자 마을사람들은 집집마다 선인장을 옮겨 심었고, 본격적으로 선인장을 재배하는 농가들이 늘어났다. 그리하여 월령리는 사람보다 선인장이 더 많이 사는 선인장의 나라가 되어갔던 것이다. 바야흐로 인구 400여 명(2007년 기준)이 채 안 되는 월령리에는 수십만, 아니 수백만의 선인장이 살고 있다.
월령리 선인장 군락지는 국내 유일의 선인장 야생 군락지이다. 야생 군락지에는 목제 산책로와 정자가 만들어져 있고, 이곳으로 올레길 14코스가 지나간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일품이다. 선인장 군락지 산책로 끝으로 정자가 보이고 그 너머로 새파란 바다가 펼쳐지고 하얀 풍차가 배경으로 서있다. 그리고 그 너머로 비양도의 비양봉 봉우리가 솟아있다. 월령리 마을에는 선인장 식당이 있고, 식당의 메뉴에는 선인장 국수와 선인장 해물짬봉이 있다. 선인장 군락지 옆에 있는 찻집에는 선인장 쥬스도 팔고 있다. 월령리는 선인장으로 시작해서 선인장으로 끝난다고 과언이 아니다. 제주도 토박이도 이국적인 정취에 젖을 수 있는 곳, 그곳이 월령리다. 봐도봐도 볼거리가 너무 많은 게 제주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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