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논단
by 鳴鏑 2013-04-07 12:36 pm
얼마 전에 일부 종북학자들의 기고문을 비판적으로 소개한 적이 있다.
이들은 북한의 처지를 이스라엘 생존환경과 동일하다고 전제하고, 핵무장은 북한 생존의 유일한 수단이라며 정당화했다.
또한 한미가 북한에 제공하기로 한 각종 지원약속을 일일이 짚어가며, 그것들이 모두 파기되었으므로 북한이 한미를 불신하고 군사도발을 통해 적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또한 “힘 사용의 신뢰”라는 개념을 동원하여 북한의 핵 억지력의 성공을 높이 평가했다.
핵 억지력(抑止力)이란, 가공할 핵위협을 통해 상대의 핵위력을 상쇄-무력화시킴으로써 상대에게 자기 의지와 이익을 관철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데, 이 능력은 2가지 요소에 의해 달성된다고 했다: 핵무장능력과 “힘 사용의 신뢰”
북한은 그 동안 줄기찬 대남도발과 핵위협을 통해 핵공격 위협이 “빈말”이 아님을 상대로 하여금 믿게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그 누구도 북한의 핵위협을 무시할 수 없고 북한의 의지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이런 싸가지 없는 반역적 소리를 한국학자가 했다)
이 종북학자들의 논리에 의하면, 그동안 북한을 핍박한 한미와 국제사회가 이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은 북한의 핵 억지력을 인정하여 다음 3가지를 실천하는 길 뿐이다: 1. 석고대죄, 2.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3. 대북 식량 및 달러 무제한 제공.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게 되면 한반도는 평화지대가 되므로, 한미동맹의 해체와 주한미군의 철수 및 한국군의 대규모 군비축소가 필연적으로 뒤따라야 한다. 이로써 인류는 세계평화에 한 발짝 더 다가서고, 한반도는 애기수령의 솜털 같은 품속에서 지상낙원을 구가하게 될 것이다. 3인의 종북학자들에 의하면,,,
또한, 주권독립국의 정당한 핵무장 권리를 포기시키려면 반대급부의 보상이 있어야 하므로, 그 수익자인 한미는 식량과 달러 등 경제지원을 북한정권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 보상 규모와 포기하는 권리 사이에는 비례성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는 바, 핵무장이라는 권리의 크기를 생각할 때 경제지원의 규모는 실로 막대해야 한다. 그 규모에 대해서는 북한이 이미 암시한 적이 있다. 그로써 북한은 현재의 기아국을 벗어나 일거에 부국(富國)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보상과 별도로, 한미와 국제사회는 그간 북한에 가한 핍박에 대해 석고대죄해야 한다.
(이것은 통진당과 민통당의 오랜 지론이기도 하다.)
그런데 상황은 이들의 진단 및 희망사항과 정반대로 전개되고 있다.
북한의 즉각적인 핵공격을 통한 전면전 위협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콧방귀를 뀌고 있다. 이는 비단 한국사회의 현상만이 아니다. 서울과 더불어, 북한이 무자비한 핵무기 타격지점으로 공표한 워싱턴, 뉴욕 등에 거주하는 미국시민들도 태평천하다.
종북학자들이 그렇게 힘주어 강조한 “힘 사용의 신뢰”가 “힘 사용의 뻥” 취급을 받고있는 것이다.
“힘 사용의 신뢰”란, 그 종북학자가 묘사했듯이, 가공할 협박이 “빈말”이 아님을 상대로 하여금 믿게 만듦으로써 생겨나는 것인데, 북한의 핵공격 협박을 한미 양국 정부뿐만 아니라 국민들까지도 ‘개 풀 뜯어먹는 소리’로 치부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루 이틀 만에 이뤄진 일이 아니다.
북한이 한국에 가한 도발은 그 자체로 천인공노할 범죄행위지만, 그들이 한 표현의 극한성에 비추면 그저 泰山鳴動에 鼠一匹이다. 북한이 쏟아낸 협박발표문은 인류가 조어해낸 협박문구 중 단연 압권인데(읊조리는 표정과 몸짓까지 더해), 그 문구대로라면 서울은 이미 개미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했어야 했고 남한 전체는 죽음의 잿더미가 되어있어야 했다(제주도 한라산까지 포함해서). 어디 남한뿐인가? 지구 전체가 그러하다. 공화국 없는 지구란 차가운 우주 공간을 떠도는 한낱 암석행성에 불과하니까.
이런 어마어마한 협박문구 앞에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 따위는 그저 애들 장난수준이다. 이러니 영이 설 리가 있나?
그에 반해, 한미 수뇌부의 문학적, 감성적 수사 없는 무미건조한 대응발언에는 서릿발 같은 “영”이 서려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한미연합군의 첨단군사훈련을 바라보면서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온갖 최첨단 무기가 한반도에 집결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간 온갖 깨방정을 다 떨어대던 중국마저도 이례적으로 숨죽이고 있다. 북한이 남쪽으로 돌멩이 하나만 던져도 괴멸적 응징이 가해질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한 신뢰를 가장 실증적으로 받아들인 쪽은 바로 북한정권의 김정은이다. 김정은은 ‘남쪽에 공격 빌미를 제공할 어떤 경거망동도 하지 말라’는 엄명을 전군에 하달했다는 보도다. 말로는 3차 세계대전을 방불케 하면서도 군사적 도발은 못하고, 자존심 부린다는 것이 고작 개성공단의 출경금지다. 폐쇄도 못 되는,,, 이러니 대외적으로는 고사하고 북한내부에 대해선들 영이 서겠는가?
진정한 “힘 사용의 신뢰”를 남북 어느 쪽이 확보하고 있는지를 이 이상 명쾌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한국의 대통령과 군수뇌부 역시 “힘 사용의 신뢰”를 두고 끔찍한 곤욕을 치렀다.
평소 입에 달고 살던 ‘철통 안보’와 ‘단호한 응징’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앞에서 “뻥”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국가지휘부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작전’의 문제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전 친북 정권들이 만들어낸 군사도발대응 매뉴얼이 ‘단호한 응징’을 불가능하게 만든 사실이 드러났고, 이 ‘비겁한 매뉴얼’로 인해 ‘단호한 응징’의 의지가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에 전 국민이 분노했다. 국가지휘부의 책임은 의지와 매뉴얼 사이의 모순을 방치한 데 있었다. “뻥”은 뻥이로되, 의지박약으로 인한 것이 아니고 매뉴얼 장애로 인한 것이었다.
이것이 밝혀지자 ‘단호한 응징’을 실행할 수 있도록 군사도발대응 매뉴얼이 즉각 수정되었다. 대통령은 아예 매뉴얼을 先이행하고 대통령에게는 後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되자 김정은은 극한의 언어폭력을 하면서도 행동에 있어서는 ‘남쪽에 공격 빌미를 제공할 어떤 경거망동도 하지 말라‘는 군령을 전군에 하달해야 했다.
군사도발대응 매뉴얼의 공개적 개정 이후, 북한의 대남 도발이 순식간에 실종되었다. 전쟁의 위험과 수행은 김정은의 현란한 수사에만 존재하고, 행동에서는 한반도에 평화가 도래한 것이다.
한미동맹상의 문제가 없고 도발대응 매뉴얼상의 장해만 없으면, 개정된 매뉴얼 지침을 준수하겠다는 한국 지휘부의 발언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것임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특성이 담보한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특성인 법치주의가 그것을 정권에게 강제하고 있고, 더구나, 이 정권은 안보에 대한 신뢰에 힘입어 국민들로부터 표를 받았다. 그것을 저버리는 순간 정권은 국민의 지지를 잃고 그 정당은 차기 정권을 포기해야 한다. 이것은 정치집단에게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다시 그 종북학자의 ‘핵 억지력’으로 돌아가 살펴보면, 이 개념은 총체적으로 파탄 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핵은 지구상에서 단 1회만 사용되었고, 그것이 최초이자 최후일 것임은 핵의 특성에 의해 자가규정 된다.
미국이 핵무기를 쉽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지구상에서 오직 혼자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파멸적 핵 보복의 위협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와 더불어, 도덕적 우위 또한 크게 기여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인류의 공적이었고, 미국은 그 공적에 맞서는 백기사로서, 미증유의 핵무기 사용이 정당화될 여지가 있었다. 미국의 핵투하는 이처럼 재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특별한 상황의 산물이었다.
이후 강대국들이 다투어 핵무기를 보유하였고, 이들 핵강대국이 비핵국가들에게 핵우산을 제공함에 따라, 어떤 나라도 핵 보복의 위협을 감수하지 않고는 상대의 핵유무에 관계없이 핵공격을 감행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체제 하에서는 동반파멸을 가져오는 핵 선제공격이 불가능하다.
이처럼 핵무기가 핵 선제공격에 대한 방어적 억지력 기능만 있고 선제사용이 불가능하면, 그리고 이 조건이 모든 핵강대국들에게 보편적으로 유효하면, 핵 공격 도발의사가 없는 국가에게는 어떤 강력한 핵무기도 위협수단이 되지 못한다. 오직 타국에 대한 핵공격 도발의사를 갖고 있는 깡패국가만이(예컨대 북한) 핵 선제공격에 따른 핵 보복 위협 문제로 속을 끓이게 된다.
핵무기로 북한을 공격 또는 위협하여 무력통일 할 생각이 애초에 없는 한국으로서는 그로인한 핵반격을 염려하지도, 그 핵반격을 저지하기 위한 핵 억지력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범죄자만이 경찰을 사납다고 욕하는 법이다.
최근 한국에 핵 억지력 필요성이 거론되는 것은 북침통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북 핵위협과 그러한 북한을 편드는 뛔국놈의 잠재적 핵위협 때문에 생겨난 현상일 뿐이다. 그 두 가지가 없다면, 한국은 핵 억지력 따위로 고민하지 않는다. 오히려, 핵개발 의구심 때문에 핵연료 재처리에 제재를 받는 것이 한국의 진짜 골머리다. 북한으로 인한 핵논란만 없으면 세계적 순둥이 한국은 핵연료 재처리에 제재를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으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피해가 또 없다.
“비핵화 전략이 가장 효과적인 핵 억지력”이라는 것은 매우 탄탄한 논리로서, 전 세계는 이에 대한 상당한 신뢰를 갖고 있다. 즉, 핵우산 정책이 신뢰를 주는 한, 비핵전략 자체가 충분한 핵 억지력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핵우산 제공국들은 핵우산 정책의 신뢰를 저버리는 짓을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이유가 없다. 특히, 이번 북핵 위협 앞에서 보여준 미국의 핵우산 제공 의지는 이러한 신뢰를 더욱 강화시켜주었다.
따라서 비핵국가가 국제사회의 엄혹한 제재를 무릅쓰고 핵보유를 통해 핵 억지력을 확보한다는 것은 논리적 토대가 없다.
이로써, 북한이 핵무장을 통해 핵 억지력을 확보했다는 종북학자의 주장은 허구다. 그 허구성은 “힘 사용의 신뢰” 부분에서 더욱 선명하다. 미국의 히로시마-나가사키 핵공격을 가능하게 했던 전술한 2대 조건을 다시 보자: 1. 핵 보복의 위험이 전무한 유일한 핵보유국, 2. 인류 공적(公敵)에 대한 최후적 응징수단.
이것은 재현 불가능한 특수상황으로, 이제 어느 나라도 위와 같은 조건을 다시 누릴 수 없다(심지어 미국이나 러시아마저도).
다수의 핵강대국들이 존재하는 현실이고, 한국은 인류에 대한 공적은 고사하고 북한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도 아니다(오히려, 북한의 생존을 책임질 유일한 나라다).
북한과 일부 국제 골목 깡패 국가들이 한국의 동맹국 미국을 공적으로 규정하지만, 소수의 찌질이들이 자의적으로 규정한다고 해서 한국이든 미국이든 공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공적이란 2차 대전 당시의 독일이나 일본 정도가 될 때 가능하다. 핵무기 개발 직전에 항복하지 않았더라면, 독일 역시 미국의 핵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 두 국가 이후로 핵공격을 받아 마땅한 인류의 공적이 될 유일한 후보가 있다면 지금의 북한이다. 그러나 핵우산 공여국들로부터 핵공격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북한마저도, 1번 조건으로 인해, 스스로 핵 선제공격에 나서지 않는 한 일본처럼 핵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핵능력과 “힘 사용의 신뢰”라는 논리로 북한의 핵 억제력을 옹호한 종북학자는 학문적 자질과 현실인식능력 모두에서 치명적인 결함을 보여주고 있다.
북핵 정당화 논리가 타당할 수 있는 토대가 딱 하나 있다.
국력과 군사력이 쥐좀만한 북한이 [군사력으로 한반도 적화통일을 달성]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수단으로서의 핵무장!
만약 이 명제를 최고선, 절대선으로 규정한다면 그때는 북한의 핵무장이 정당화 될 수 있다.
그러나 전쟁과 폭력을 통해 선량한 상대에게 자신의 의지와 이익을 관철시키는 것은 그 자체가 범죄이므로 최고선이나 절대선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북핵 옹호 종북학자들은 북한의 무력 적화통일 옹호자일 뿐, 그것을 정당화할 어떤 논리적 토대도 없다.
그나마 북한정권이 “힘 사용의 지상최대 뻥쟁이”가 되어, 핵 억지력은 고사하고 한갓 웃음거리로 전락했으니, 학자로서 무색하게 되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힘 사용의 신뢰”는 북한정권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 그리고 서방국가들이 가지고 있다. 학자라면, 지금이라도 곡학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겪어보지 않고도 알 수 있어야 학자다. 내일이라도 북한이 군사도발을 하고 한미가 그에 대해 괴멸적 응징을 하는 것을 봐야 그때 가서, “아하, 내가 틑렸는가벼”하며 바로잡을 것인가? 그렇다면 학문의 예언적 기능은 죽고 사후 감상문 쪼가리로 전락하는데, 그래서야 어디 학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