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의 건국 절 제정 반대를 탄핵 한다.
전임 광복 회장 김원웅이 공금 횡령 비자금 조성 등에 대한 수사를 받게 되면서 자진 사퇴했다.
새로 부임한 이종찬 회장도 맛이 좀 가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의 발언 중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1948년 건국절 주장을 용납 못하겠다” 는 것이다.
그는 1919.3.1. 독립 만세 운동 이후 4.11 임시정부 수립 일을 건국절로 해야 한다. 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본인의 견해와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국가의 성립 조건은 일반 적으로 영토, 국민, 주권을 들고 있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다른 국가의 인정 (승인)여부, 국가 경영의 경제력, 국가를 지킬 수 있는 군사력까지도 국가의 성립 조건으로 삼아야 한다는 설도 있다. 상해 임시정부의 그 정신을 존중하자고 하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국가의 기본적 틀을 갖추지 않은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절로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신 상태가 아무리 굳건하고 나무랄 데 없다고 해도 그 정신 상태 만으로 국가가 존립 할 수 없다.
지난날의 역사가 이를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임시정부를 수립 했다. 고는 하나 그것은 하나의 선언적 의미와 정신적 무장에 불과할 뿐 현실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독립 운동가들의 헌신적인 독립 운동과는 별개로 객관적으로 그렇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훌륭한 설계도를 완성했다고 해서 집이나 물건이 훌륭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설계도는 논리이며 집이나 물건은 현상이다. 신체가 부실한데 아무리 훌륭한 정신을 이어 받는다고 해도 그것은 논리와 정신적
만족으로 끝이다. 마치 논리와 도덕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나라라고 해서 탐욕으로 가득 찬 이웃 나라가 침범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주장의 논리가 아닐까. 외 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군사력이 없는 국가가 허풍 떠는 것과 다르다고 할 수 없다. 국가의 성립 조건에 군사력은 필수라고 본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줘야 한다. 국가의 전 단계인 부민의 생명과 재산은 마찬가지로 부민의 공권력인 촌장, 경찰이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임시 정부가 비록 독립 운동을 했다. 고는 하지만 이 땅을 떠나서 간헐적으로 일본 군에 대항했을 뿐 사실상 이 땅의 백성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다. 사실 지켜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나라를 빼앗기지도 않았을 것이고 임시정부 따위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정신적 지주로서의 임시정부로 만족해야 한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의해 자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것이 바로 명실상부한 새로운 나라의 건국이다. 주사파 사상을 따르는 빨갱이 공산주의자는 자유 민주 국가의 건국을 방해하기 위해 해방 이 전부터 공산당을 조직하여 사회 혼란과 파업, 역적 질과 무장 투쟁을 해 온 터라 당연히 자유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건국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건국을 부정하는 것은 비록 본의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빨갱이 주사파 공산당에 부역하는 결과가 된다.
이승만은 상해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선언적 의미의 임시정부 수립 일을 근거해서 건국절로 정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을 넘어 세계적 웃음 거리가 된다.
그렇다면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날을 이 나라의 건국절로 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나라의 건국일은 국가의 성립 조건에 맞는 날을 정하여 기념해야 할 것이며 이종찬 회장이 주장하는 민족 정신의 고양이라는 것도 하나의 변명이요 주사파 빨갱이에 동조하려고 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비난에도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승만이 자유 대한민국을 건국 하지 않았다면 빨갱이 주사파 공산주의 전체주의가 인민을 노예로 부리는 암흑 사회에서 신음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비록 이승만이 3.15 부정 선거를 했다. 고는 하지만 건국의 공마저 부정하는 것은 북의 주사파 권력을 정당화하고 정통성을 수여하는 결과가 된다. 또 이승만은 비록 이기붕 부통령 일당이 저지른 부정 선거 이기는 했지만, 순순히 물러나 하야 망명했다.
이종찬 회장은 김대중 정권에서 국정 원장을 하면서 간첩 잡는 국정원을 간첩을 못 잡는, 안 잡는 것인지 국정원의 기능을 무력화한 전력이 있다. 1948년 건국 절 주장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것이 그 전력과 무관한 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1980년 민정당 창당 발기 인으로 참여하고도 그 후 "새 정치 국민 회의"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힘을 보탰다고 하는데, 그 일도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좌우를 넘나든 행보였지만 건국 절 제정에 힘을 보탠다면 과가 조금은 희석 되리라.
2023.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