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2월 18일 김항덕은 조선 국경을 넘는 군중 142명의 엑소더스를 안내했다. 문치정(文治政) 집안의 40명, 김하규(金河奎) 집안의 63명, 김약연(金躍淵, 1868∼1942) 집안의 31명, 남위언(南葦彦) 집안의 7명의 군중은 숨가쁘게 길을 재촉했다.
32살의 김약연은 가솔과 장인 등 6개 가족을 이끌고 있었고, 출애급 한 유대인을 광야로 인도하는 모세와 같았다. 김약연 일행은 여리고성을 넘듯 화룡현의 지신사 장재촌을 넘었고 장재촌을 명동촌으로 개명하여 터전을 건설했고 1905년경 일대의 개척이 완료 된다.
그들이 조선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견디다 못해 빈부귀천이 없는 나라를 건설하고자 조선을 탈출했다.
명동촌에 터 잡은 그들은 교육이 필요했다. 김약연은 ‘규암재를, 남위언은 오룡재를, 김하규는 소암재로 각 서재를 만들었다. 즉, 서당을 만들고 스스로 훈장이 되었다. 그들은 1908년 서재를 합하여 명동서숙(明東書塾)을 만든다. 명동서숙은 명동학교로 다시 명동중학으로 발전하였고, 1911년에는 명동여학교가 설립된다. 김약연은 자신이 만 번을 읽었다는 맹자를 가르쳤다. 맹자는 양반에게 필요한 통치철학에 불과할 뿐 대중 교육에 무용했다.
유생 김약연은 명동학교를 이끌어갈 인재가 필요했다. 정재면을 만났고 그를 청빙했다. 정재면의 조건은 간단했다.
"학생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김약연은 교장, 정재면은 교감이 되어 명동중학교가 세워졌고 근대교육을 시작했다. 이어 명동여자중학교를 설립하고 여자도 교육받게 했다. 한자식 이름이 금기 된 여자에게 남자와 동등하게 한자식 이름을 짓게 했다.
황무지를 개척하여 정착촌을 건설 한 그들은 이역만리 타국 이민족이었고, 생존수단은 농업과 상업에 한정 되었을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이 처음이고 다음이 교육이다.
그들은 불과 몇백명에 불과했음에도 관리가 수탈과 착취 하지 않는 이유 하나로 불리한 조건을 딛고 정착한지 10년만에 교육이라는 공공재를 스스로 공급할 수 있는 조직과 경제력을 갖추고 자립했고 자급했으며 근면했다.
김약연과 정재면은 용정교회를 세웠고, 정재면은 장로로 장립된 후 주일학교와 학무위원으로 활동하며 간도지방 전도사로 활약했다. 700여명 명동촌민이 모여 부흥회를 가질 정도로 교회는 성장했다.
김약연은 만주의 3.1만세운동을 주도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하였고, 1929년 평양장로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평생 그리스도의 종이 된다.
제국주의 팽창시대 만주는 질곡의 역사 중심에 서야 했고, 명동촌도 운명을 같이 하였다. 그러나 그곳에는 양반이 없었고, 자유와 풍요, 교육이 있었다.
관료의 수탈과 착취 때문에 출조선(出朝鮮)하여 명동촌으로 정착한 후 김약연은 조선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관리의 부정부패와 착취에 신음하고 있었다.
“조선사회에서 양반은 생산에 기생하는 잉여신분이다. 조선이 망해가는 근본 이유는 내재적 모순 때문이다. 관찰사는 5만 달러, 현감이 500달러에 거래되고 있는데 이런 나라에서 어찌 장래가 무사할 수 있을까? 관찰사와 현감은 매관매직에 쏟아부은 돈을 회수하기 위해 아전들을 풀어 백성들을 가혹하게 수탈했다. 왕실은 적극적으로 문명진보에 대처하려는 의지가 없고 조선의 지배계급은 성리학과 중화사상에 안주하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당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호머 헐버트 선교사)”
칼빈은 가르쳤다. 사유재산은 원죄를 짊어진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이 정한 질서이며, 재산의 불평등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했다.
“각 개인이 자기의 사유 재산을 소유하도록 허락하는 시민적 질서가 문란 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재산의 소유권이 인간들 사이에서 구별되고 개인적이 되는 것은 인간들 사이에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사유재산은 하나님이 개인에게 준 무한한 자유와 권리가 아니다. 소유에 대한 금욕주의적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가난한 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증오와 미움을 가지지 말아야 하며 부자의 사유재산을 빼앗지 말 것이며. 부자 또한 하나님이 맡긴 사유재산이며, 위탁 받은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쓰여져야 함을 강조한다.
“재물을 많이 준 것은 부유함 속에도 교만에 빠지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갖고 도와주는지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며,어떤 사람을 가난하게 한 것은 가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면서 살아가는지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다”
권력으로 빼앗는 것이 죄가 되지 않는 조선에 칼빈주의는 부자가 되고자 하나님께서 맡긴 사유재산을 빼앗으면 죄가 됨을, 빈자는 하나님께서 맡긴 사유재산이므로 그것을 지켜야 하는 저항정신(Protestantism)을 가져야 함을 선포했다.
노동을 하고 직업에 종사하며 재물을 모아도 국가와 관리의 착취에 굶주려야 했던 구한말 백성은 땀 흘려 노동을 하여 재물을 모을 이유가 없었다. 백성의 재물을 빼앗는 권력, 가졌으면 뺏겨야 하는 사회에 신성한 노동은 존재할 공간이 없었다.
조선은 죄악은 만연한데 죄인은 없는 사회, 빼앗는 자도 뺏기는 자도 죄가 없는 사회였다. 빼앗아 필요를 채우는 자는 노동을 할 필요가 없었고, 빼앗기는 자는 뺏겨서 노동을 하지 않는 그래서 게으름과 나태함이 일상이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온 지면의 씨맺는 모든 채소와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주셨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할 것을 명령하셨다. 땅에 충만을 위해 씨맺는 채소와 씨맺는 열매를 따는 노동을 할 것을 명하셨다. 그리고 선악과를 따먹은 원죄로 얼굴에 땀 흘리는 노동이 추가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노동관은 자못 비장하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명령한 노동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시대와 환경의 변천에 관계없이 노동은 인간이 가진 가장 근원적인 생활 무기이다”
칼빈은 노동을 하나님 은총에 대한 감사의 응답이고, 나태한 삶을 버리고 근면한 삶을 살 것과 일의 본질이란 노동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돕는 구체적 행위이며, 일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 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시간을 아껴 일할 것과 하나님 은총에 감격하여 하나님과 이웃에 봉사하는 신성한 노동을 할 것과 검소한 생활, 절제와 규율, 사치스런 생활을 버린 근검함 등의 금욕적인 삶과 노동을 통해 구원의 표징을 찾으라고 했다.
청교도는 미국에 청착하여 교회를 세우고 마을을 이루며 지역공동체를 이루고 살며, 근로능력이 있음에도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사람이 있으면 교회를 통해 벌금을 내게 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생육하고, 번성하며 다스려야 하는, 선악과를 따먹은 원죄의 얼굴에 땀흘릴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죄를 교회를 통해 정죄했다.
복음주의를 앞세워 칼빈주의 신학과 제도로 무장하고 조선에 건너온 선교사들은 사회에 만연한 죄악과 싸운다. 죄악을 불러온 유교와 정면으로 싸우며 타협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장 먼저 성리학적 질서의 상징 제사를 우상숭배로 간주하고 이를 금지하며 정면으로 유교문명과 충돌했다.
그들은 낮은 곳으로 갔다. 게으름과 나태, 미신과 싸워야 함을, 금욕적인 삶을, 근면, 절제, 청결한 생활을 요구하며 정신혁명을 일으켰다.
양반과 백정, 남녀노소가 한자리에서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듣고 찬송가를 부르게 했다. 하나님 앞에 모두가 평등함을 고백 하여야 했으며, 양반은 장로가 된 백정의 영적 지도와 감독을 받아야 했다.
구한말 이 땅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은 교회의 머리 된 예수님 아래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단 한권의 책 성경을 읽게 하며 교회 종탑을 통해 계급해방의 종소리가 퍼져나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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