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통치의 수단은 성리학이었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 그들은 신분제 질서 유지와 통치기반을 지키기 위해 백성이 문자를 가지는 것은 상상 조차 할 수 없었다.
일본 에도시대 마을마다 있는 불교사원을 통하여 글을 가르쳤다. 1700년대 중기 문자해독률이 70%에 이르렀고, 개항 후문자해독률이 90%에 이른다. 에도시대 사전이 만들어 졌고 만화책이 보급 되었다.
루신은 한자의 필연적 문맹에 대하여 “중국이냐 한자냐?”를 외쳤다,
“한문은 중국 대중의 몸에 있는 결핵이다. 한문 버리지 않으면 중국은 망 한다”
루신이 절규한 그 시대 조선의 문맹율을 따져본들 가슴만 아프다, 조선과 일본의 수준 차이는 문맹에 있었다.
신분제 질서에 도전하면 그 누구도 사문난적으로 처형하는 시대 백성이 글을 가진다 함은 대역죄와 같은 죄로 보았다. 그토록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한글이 그 지경으로 방치가 되었고 천대와 조롱을 받았다.
고작 3~4%에 불과한 양반들이 지식을 독점했다. 태어난 인간의 능력은 동등하다. 아무리 공자를 배우고 배워도 지능이 높아질 수 없다. 국가의 경쟁력은 가용 가능한 인력의 쓰임에 있다. 고작 3~4%의 인재풀로 운영된 조선이 식민지배를 당한 것은 필연이었다.
한글성경 보급과 복음화는 조선 백성이 문자를 가지게 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선교사들의 성경과 기독교 서적의 번역은 계속 되었고 한글 연구도 계속 되었다. 한글학자 주시경은 배재학당에서 공부하며 한글을 연구한 헐버트 선교사의 제자가 된다. 조선총독부는 여러차례 한글맞춤법 통일안과 교재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한글보급에 나섰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사랑하사 표적을 보이셨다. 500년간 잠자고 있는 한글을 들어 쓰신 것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종교개혁의 결과 개인 모두가 제사장이 되는 만인제사장 시대를 열었다. 그 소통의 창구는 성경이다. 대중은 하나님과 소통창구 성경을 읽게 됨으로, 경제성장 0%의 봉건시대를 마감하고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한다. 개인의 발전이 국가의 발전이 된 것이다.
존 로스 선교사는 조선 백성에게 한글 성경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글사전은 고사하고 한글로 쓰여진 단행권 한권 없는, 문장을 구성할 어휘 조차 빈약하여 성경의 말씀과 표현, 비유의 말씀을 번역하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쿠텐베르그의 금속활자는 종교개혁에 기름을 부었지만 그보다 앞선 세계 최초 금속활자와 무구정광다라니경을 천번 만번 외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금송아지 열 마리 뒷마당에 묻어 둔 것이 자랑인가 말이다.
한글 번역에 참여한 서상륜, 백홍준, 이응찬 등은 배움이 부족한 장사치에 불과한 천한 신분의 사람들이었다.
그 열악한 상황과 오역을 막기 위하여 존 로스 선교사는 성경 번역의 기준을 세웠고 정교한 검증절차를 마련했다.
첫째 한문성경을 서상륜 등의 조선인이 한글로 번역한다.
둘째 한글 성경을 그리스어 신약성경 및 영어성경과 대조하여 수정한다.
셋째 그리스어 성구사전과 주석을 참조하여 어휘를 통일한다.
넷째 성경의 의미를 보존하며 조선어 관용구를 살린다.
전 존 로스는 조선말부터 배우고자 과외 선생을 구하다 이응찬을 만난다. 이응찬은 장사를 하기 위하여 평안도 의주에서 물품을 싣고 배를 탔다가 배가 전복 되는 바람에 모든 재산을 잃고 허탈감에 항구를 거닐다 만났다.
이응찬은 돈을 벌기 위하여 존 로스의 과외선생이 되었고 그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개신교인이 된다. 이응찬으로부터 한글을 깨우친 존 로스 선교사는 1877년 한글문법책(Corea Primer)를 만든다.
이응찬은 개신교를 받아 들였음에도 생활은 무절제했다. 아편을 피웠고 식사 때에는 늘 술을 마셔 신앙심을 의심 받아 세례는 연기되었다. 고향에 돌아가게 된 이응창에 보며 매킨타이어 선교사는 돌아 오지 않을 것이라 했다. 낙향한 이응찬은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그는 1879년 여름 매킨타이어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성경을 소지만 하여도 목숨이 위태로운 조선에 이응찬은 한글성경을 보급에 나선다. 조선 국경을 넘는 것이 어렵자 한글성경을 한장 한장씩 뜯어서 새끼줄처럼 꼬아서 끈으로 만들어 국경을 넘는다. 그의 노력으로 의주에 한글성경이 보급 되었고 조선 최초 의주에 자생적 교회가 세워진다.
이응찬은 번역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만주 봉천에서 콜레라에 걸려 사망한다.
존 로스 선교사는 성경번역이 끝난 후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지원으로 일본 요코하마에서 35,563개의 음절별 한글 활자를 주조하여 만주로 들여온다. 서간도에 태어난 김청송은 약을 파는 약장사였다. 장사가 되지 않아 생계의 위협을 받다 조선인 식자공(활자 조판)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존로스를 만난다. 김청송은 중국인 인쇄공 2명과 같이 식자공으로 활자판을 완성한다.
김청송은 회심하고 존 로스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는다. 그는 성경 권서인(매서인)이 되어 한글성경을 보급하며 만주 서간도 일대에 복음을 전한다. 김청송의 활약으로 많은 조선인이 회심하였고 존 로스 선교사는 김청송이 전도한 조선인 마을을 찾아 75명에게 세례를 베푼다. 한인촌에 자생적으로 "이양자 교회"가 세워지고 임오군란으로 숨어 들어온 군인에게까지 존 로스가 세례를 주었고 한인촌은 개신교 부흥을 맞는다.
서상륜은 양반 출신 이었으나 조실부모하여 가문이 몰락하고, 만주를 넘나들며 홍삼행상을 한다. 서상륜은 그나마 한문을 읽을 줄 알았다. 31세에 만주에서 갑자기 장티푸스에 걸려 죽게 된 것을 맥켄타이어 선교사의 간호를 받고 의사를 소개 받아 치료를 받고 목숨을 건진다. 한문 성경을 읽된 그는 개신교인이 된다.
한자를 읽을줄 알았던 서상륜은 한글성경 번역에 참여하여 활약을 하였고, 성경번역이 끝나자 전도사가 되어 복음을 전했다. 한글성경을 국내에 반입하기 위하여 국경을 넘다 발각되어 투옥된다. 탈옥하여 목숨을 건지는 고난 속에 평안도 일대 성경보급에 발군의 기여를 한다.
서상륜은 서울과 경기도에 성경 보급을 결심하고 존 로스에게 한글성경을 보내 줄 것을 부탁한다. 존로스 선교사는 6천권의 성경을 수취인을 적지 않고 심양에서 제물포로 탁송 했다.
고종에게 발탁 되어 인천해관 책임자로 있는 묄렌도르프는 반기독교적인 인물이었다. 또한, 국경을 맞대고 독일을 위협하는 러시아의 이목을 돌리기 위하여, 부동항 확보에 사활을 걸은 러시아의 시선을 극동으로 돌리기 위한 간첩이었다.
“동북아 농장에 불곰을 풀어놓아라”.
역사적 기록에 묄렌도르프의 수상한 행적이 많이 남아 있다. 묄렌도르프는 즉시 수취인을 수색에 나섰다. 이소식을 들은 존로스는 기독교인이었던 묄렌도르프의 아내에게 편지를 써서 위기를 모면한다.
서상륜은 동생 서상조와 함께 1884년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에 조선 최초의 소래교회를 세웠다. 조선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입국하기 1년 전이었다. 1887년 언더우드 목사가 새문안교회를 세우고 14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세례인 모두 서상륜이 전도한 사람들이다. 서상륜은 1891년 게일(J.S Gale)과 마펫(S.A Moffett)등 선교사들이 서울을 떠나 의주, 강계, 함흥 등 오지로 선교여행을 떠날 때 길 안내자로 동행하며 북한지역 복음화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아버지가 준 한문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영접한 후 의주에서 만주로 존로스를 찾아간 백홍준은 한글성경 번역에 참여한다. 그는 언더우드가 설립한 새문안 교회 최초의 장로가 된다.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다.
백홍준은 언더우드를 도와 평안도에 복음을 전했다. 1889년 언더우드에게 부탁하여 자신이 전도한 33명의 교인을 압록강에서 세례를 받게 했다. 조선과 중국의 국경지대인 압록강에서 세례를 함으로서 양국에 금지 된 개신교 종교의식을 행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백홍준의 활발한 전도활동을 눈의 가시로 여긴 민씨척족 평안감사 민병석은 의주에서 체포 하여 금교를 전한다는 죄로 혹독한 고문을 하였고 2년간 옥중에서 믿음을 지키다 조선인 최초의 순교자가 된다.
성경번역에 백홍준의 동향인 김상기, 이성하 등과 같이 참여하였고 이익세 등도 참여한다. 저들은 배운 것이 없는 무지렁이 백성이었음에도 성경번역과 한글보급에 나선 영웅들이었다.
이북 사투리로 번역 된 조 로스의 “예수셩교젼셔”는 이 후 아펠젤러와 언더우드, 윌리엄 레이놀즈 선교사 등 많은 번역가를 통해 다듬어 지며 오늘에 이르게 된다.
존로스는 1881년 한글문답교리서를 발간한다. 1882년 최초로 성경번역본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가 발간 된다. 한글로 인쇄 된 51페이지의 작은 책이었지만 이 땅에 복음과 정신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한글을 자랑하기 전에 그 가치를 찾은 선교사에게 감사하는 마음부터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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