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국제전이고 내전으로 규정할 조건이 성립되지 않았다는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만, "국제전 성격이 우세한 복합전"이라는 정도라면 그다지 반박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문제는 분단 요인까지 복합적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판단입니다.
분단에 대해 말하자면 이것은 확실하게 외부 요인에 의한 것으로 내부 요인은 존재하지 않았거나 의미가 없었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즉 남북이 1945년 8월 15일 분단이 된 것은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분할 관리하기 위해 3.8선을 그어놓은 것이 결정적이고 또 유일한 계기라는 것입니다.
당시의 상황을 돌이켜 보면 이같은 판단이 명확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1945년 8월 15일 이전까지 한국은 일본에 강제 합병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일본이 항복하고 한국이 해방된 8월 15일을 기준으로 9일 전인 8월 6일 미국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합니다.
원폭투하 직후 소련이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미국을 도와서 만주와 한반도에 주둔중인 일본군은 자신들이 처리하겠다면서 군 병력을 투입하게 됩니다.
미국이 원자폭탄까지 사용하면서 일본군을 최후의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말해 항복할 날짜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황에서 소련의 참전은 참으로 얄미운 조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민족의 입장에서는 천추의 한을 남긴 일이 됩니다.
그런데 소련의 참전은 미국의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미국이 소련의 참전을 요청한 것은 일본과의 전쟁을 가능한 빨리 끝내고 싶었고 소련의 참전이 일본의 항복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계산때문이었습니다.
원자폭탄까지 떨어뜨리기는 했지만 미국에서도 원폭의 효과에 대해 뚜렷한 예측을 하지 못했기때문에 일본이 곧 항복할 수 밖에 없지만 길면 그 해 12월까지 천황제 존속과 전쟁 지도부에 대한 사면 조치를 받아내기 위해 저항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던 것입니다.
어찌됐든 8월 7일 소련이 참전을 미국에 통보했고 8월 9일 나가사키에 두번째 원폭 투하가 이뤄지면서 일본 군부가 크게 흔들리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다시말해 일본이 며칠 안에 항복할 것이라는 징후가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갑자기 미 국무부에서는 예상치 않은 일거리가 하나 생기게 됐습니다.
만주와 한반도로 진격한 소련군이 일본이 항복한 뒤 만주와 한반도를 강제 점령하고 일본까지 진격할 가능성이 우려됐습니다.
이에따라 소련군의 한반도 전체 점령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미국은 한반도 주둔 일본군의 무장 해제 업무를 소련군과 공동으로 하되 서로의 관할 구역은 적절하게 분리한다는 방안을 정하고 해당 부서에 이에 대한 계획을 시급하게 작성할 것을 지시합니다.
지시를 받은 사람은 당시 국무부 직원으로 36세였던 딘 러스크와 찰스 본스틸이었는데 한반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던 이들 두 젊은이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를 가져다가 한반도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지도에 근거해서 38도선이 나라의 한 가운데에 있어서 소련도 불만을 갖지 않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수도인 서울이 남측에 있어서 미국으로서는 불리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38선에 줄을 그어버린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러스크와 본스틸은 한반도 관련 전문가의 자문을 받은 사실이 없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