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180년이 걸린 경제발전을 한국은 불과 60여년 만에 이루었다고 외국에서는 극찬인데 막상 이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6.25직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의 학자나 기자들은 한국이 발전하는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는 혹평으로 한국의 미래를 내다봤다.그러나 지금 어떤가?
최근의 반세기를 돌아보면 때때로 소스라치게 놀랄 때 가 있지 않은가? 60년 전의 청계천,당시의 한강의모습, 당시의 여의도 군용비행장과 대비되는 지금의 인천국제공항등. 옛날의 모습은 인터넷을 이용해 검색할 수도 있고 아쉬운 대로 필자의 블로그에도 상당 수의 옛날 사진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실감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천지개벽이란 말을 써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발전의 요인을 어슬프게 나마 짚어 보고자한다.
주지하다시피 한반도가 타의적으로 독립이 되었을 때, 분단의 고착화는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었다.
미국과 소련의 이념대결과 팽창주의 속에서 약소국의 운명이란 그들에 의해서 결정되어 질 수밖에.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은 이승만이 미국식의 자본주의 체제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해방공간에서 우리가 미국식의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동족상잔의 6.25를 겪으면서도 공산화가 되지 않은 것이 경제발전의 1차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그것은 바로 우리가 말하는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정치철학과 결단이었다.
그렇다면 2차적인 요인은 무었일까?
바로 다들 잘아는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의 군부세력이었다.
남로당원이었던 개인적인 문제와 쿠데타(혁명)라는 핸디캡을 갖고 출발한 박정희와 군사정권이 국민들의 마음을사고 정권의 안정을 도모하기위해서는 경제개발에 매진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보여진다.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이미 장면정부 때 수립되었던 것을 정책에 반영했다하더라도 너무 평가 절하할 필요는 없다.
좁은 땅에 가진 것이라고는 사람밖에 없는 상태에서의 경제개발이란 속된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요즘의 표현을 빌려써도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인다.(훗날 신군부로 지칭되는 전두환 군사정부도 경제개발에 매진하는데, 이 또한 군사쿠데타라는 컴플랙스가 작용하지 않았나 추정한다) 한강의 기적은 그저 생긴것이 아니다.
박정희의 빈손으로 시작한 경제개발은 곳곳에서 처절한 모습을 보여준다.
한일 국교 정상화로받은 보상금, 베트남파병(용병으로 봐도 크게 틀린말이 아니다)의댓가, 파독 광부와 간호원들의 봉급의 저당으로 받은 돈(회사원으로 치면 가불이되겠다)등을 온통 경제개발에 쏟아 붓는다.
그러면서 그는 동시에 [잘 살아보세]라는 동기를 부여한다.
한마디로 5000년 동안 보리밥과 가난을 숙명처럼 지니고 살아온 국민들에게 열심히 일하고 근검절약하면 분명 잘 사는 세월이 온다는 희망의 메세지를 전하고 국민들이 그 희망의 메세지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한다.
여기서도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박정희의 리더쉽에 동조하고 협력해서 따라준 국민들이 대다수 였다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구걸하다시피 한 돈을 경제개발에 투자하고, 국민들에게 잘살아보겠다는 마음을 가지도록 동기부여를한 지도자와, 그 지도자를 믿고 따르며 협력한 국민들이 이뤄낸 합작품이 바로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경제발전이다.
어디까지나 긍정적인면에서만 고찰해보았는데 이 경제개발 이면에는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해방공간에서와 자유당시절 그리고 3공, 4공, 5공을 거치면서 정치적으로 잘못되고 그리하여 본의아니게 피해를 본 사람들도 많았다.그래서 정치적인것은 접어두고 경제적인 문제만 다루어 보았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안주한다면 20c중반에 곧 선진국진입을 눈앞에두고 주저앉아버린 남미의 ABC국가의 전철을 밟을수 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조심하고 경계해야할 것은 이 정도면 돼, 이제 살만하잖아하는 자화자찬과 매너리즘에 빠지는것이다.
지금의 발전된 국가(정작 자신들은 발전에 따르는 열매를 제대로 맞보지도 못하고)를 물려주기 위해 고생한 우리선배들의 고마움을 잊지 말고 우리후손에게는 지금보다 더 낳은 조건의 환경과 삶의 터전을 물려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본다.우리 후손에게 자랑스런 선배 자랑스런 조상이 되는 길이 무었일까 한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추가해서
성숙한 민주주의를 하기위한 제1의 조건은 국민평균으로 식생활문제가 해결되어야지 아사자가 속출하거나 국민들이 먹을것을 찾아 국경을 넘어 떠도는 나라에서 민주주의란 환상의 세계일뿐이다.2차 대전이후 신생독립국들은 거의 대부분이 의식주 해결이 안되는 가난한 나라였고 이들중에 단번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나라가 없고 우리나라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1950~60년대에 이들 신생독립국 중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나라가 없다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란 먹는 문제의 해결다음에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5.16군사쿠데타의 발생시 대부분의 국민들이 묵시적으로 쿠데타를 인정한 것(대규모의 쿠데타 반대시위가 없었기에)은 당시의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줄 그 무었이 군부세력에게 있지 않나하는 기대감도 있었을것 이라고 추측된다.
박정희는 경제개발에 매진하기위해서는 강력한 정부주도의 정책이 필요하다고보고,이 강력한 정부주도의 정책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민주주의의 시행을 일부 유보시키는 방법을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정당한것은 아니었지만 경제개발과 민주주의를 병행시켰다면 경제개발의 속도는 한참 떨어졌을것이라는것도 생각해불 수있다.
이것(경제개발)이냐 저것(민주주의)이냐 아니면 둘 다(경제개발과민주주의)다냐의 문제에서 박정희는 이것(경제개발)을 선택했다. 결과는 그가 선택한 경제개발은 성공으로 평가할 수있지만 그가 유보시킨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한참후의 일이 되고 말았다.그리고 그 한참후의 일이란 위에서도 언급한바와 같이 먹는 문제가 해결된싯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18년 장기집권의 박정희 시대는 분명 공과(功過)가 공존한다.공만 강조한다든지 과만 강조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것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