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은 왜 광주사태를 북한군 개입이라 밝히지 못했는가?
역사라는 것은 흐름이 있다. 또한 과거의 왕권이 지배하던 시대에도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이 있었다. 왕이니까 억누르면 되겠지하고 생각하겠지만, 실상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억누르는 것 조차도 국민이 지지할 수 있어야 아무런 탈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민이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데 전쟁이 일어나면, 과거 동양과 같은 환경 특히 중국을 배경으로 한다면, 국민이 오히려 쳐들어온 적을 환영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광주사태가 북한군 개입이 맞다면, 왜 전두환은 그 사실을 밝히지 못했을까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청년들은 더더욱 그런 생각이 짙을 것으로 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비하인드의 상황까지 알아야 파악이 가능하다. 아주 먼 과거에 대해서는 우리가 증명할 수 없으므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두환때는 아직도 많은 증인들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만약 전두환이가 당시에 "광주사태는 북한군 개입이 있었다"라고 발표를 해도 믿을 사람이 많지 않았다. 바야흐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강하게 표출되던 때가 그 당시였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 전두환 독재라는 공식에 매우 익숙해있었고, 북한군의 간첩사건 자체를 못믿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데모에 상당부분이 정부가 북한의 개입을 핑계되고 있고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더구나 광주사태에 대해, 훗날까지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것은 사실상 거의 없었다. 광주에서 많은 유혈사태가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카더라 통신을 통해 전해지는 것이 거의다였고, 특별히 정치에 관심이 있지 않는 사람은 아예 모르는 금시초문이었으며,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조차도 그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할수 있다. 오히려 전두환에 대한 반감만 더 커져 있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만약 전두환이 "광주사태는 북한군 개입이 있었다"라고 밝혔다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차라리 좌파정권이 지속된 노무현 때 광주사태 의혹이 우파들 사이에 완전 자리잡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이 그나마 별 거부반응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전두환 때는 오히려 그러한 발표를 할 경우 자신의 독재를 정당화한다는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86년에 벌어진 거대한 데모들은 군부독재 물러가라는 것이었다.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것이었으며, 처음에 광주에서 일어나서 나중에는 부산경남에까지 그 데모의 물결이 번졌었다. 부산경남은 거의 모든 데모에서 항상 제일 늦게 일어났다. 그리고 부산경남에서까지 데모가 일어나면 그 데모는 거의 성공적이었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419도 그러했다.
당장 당시 일반인들은 김대중이가 빨갱이라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또 운동권들이 북한사상을 가지고 배운다는 것조차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단지 대학가 내에서 그런 것 같다는 느낌만 강하게 받았을 뿐이지, 운동권 이외에는 아무도 운동권이 북한사상을 주입받는다는 것을 아는 이가 없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당시 전두환 정권이 북한정권 다음으로 독재라는 말이 떠돌았다. 그것이 사실여부를 확인할 바 없이, 사람들 인식에 전두환 정권의 최루탄가스에 대한 인식의 선입견에 아마 그럴 것이라고 수긍했었다. 필리핀의 독재가 아키노가 한국최루탄을 수입하려다가 이것은 우마살상용이라고 수입을 거부했던 일화는 유명한 것인 만큼, 전두환이 자신의 집권을 위해 우마살상용 최루탄까지 쓰는인간이라고 인식했다. 그런 가운데 광주사태 얘기가 하나하나 흘려나왔고 전두환이 자신의 정권을 위해 우마살상용 최루탄을 쓰는 인간인 만큼 자신의 정권을 위해 광주집압을 했다고 믿었었다. 그런 흐름 속에서는 광주사태의 북한군 개입을 얘기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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